다른 시점으로 가는 방법도 영화마다 다양하다. 타임머신을 타는 경우가 많고, 달리기를 할 수도 있고 캄캄한 벽장 속에 숨을 수도 있다. 자고 일어나면 똑같은 시작을 하는 경우도 있고, 죽었다 깨어나면 다시 그 상황일 때도 있다.
이번 영화는 이중에 타임 루프를 다룬 영화이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했던 콜터 대위는 하반신을 잃는 중상을 입고 튜브 안에서 뇌의 일부만 살아있는 상태가 된다. 정보국은 양자역학을 이용한 평행우주 프로그램인 ‘소스 코드’를 개발하고 대위의 뇌를 여기에 접속한다. 이곳에 들어간 주인공은 다른 인물이 되어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되지만 이는 시간 여행이 아니라 시간 재배치일 뿐이고 현실과 연결되지 않고 미래에 영향을 줄 뿐이다.
얼마 전 시카고행 열차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해서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문제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 연쇄 테러의 시작이고 더 큰 사고가 예견되어서 테러범을 찾는 일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보국은 콜터 대위의 뇌를 소스 코드에 접속해서 기차에 투입한다.
그를 션이라는 열차 승객의 뇌와 동기화시키는데, 그 원리는 전등의 스위치를 꺼도 잠시 불빛이 사라지지 않고 잔광이 남는 것처럼, 사람이 죽어도 뇌는 8분 동안은 단기 기억 부분이 활성화 상태라는 사실이다.
기차에서 깨어난 콜터 대위는 자신이 크리스티나라는 여자 앞 좌석에 앉아있고 그녀가 통근 열차에서 자주 보는 여자이고 자신을 션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깨닫는다. 8분 후에 기차는 폭파되고 모두 죽는다. 캡슐에서 본부의 담당자 굿윈과 통신한 콜터는 자신의 임무가 테러범과 폭탄을 찾는 것임을 알고 반복해서 죽으면서 계속 기차에 투입된다.
그 과정에서 폭탄의 위치가 화장실 환기장치 안이라는 것과 기폭장치가 휴대폰이라는 것도 알아내고, 호감을 느낀 앞자리에 앉은 크리스티나를 데리고 중간역에 내려보기도 하지만 그것은 평행세계에서 일어난 일일 뿐 이미 죽은 사람들을 살릴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러 번 관찰한 결과, 일부러 신분증이 든 지갑을 계속 떨어트리는 사람을 추적하여 그가 테러범임을 알게 되고, 그가 근처에 세워놓은 밴에 방사능 폭탄을 가득 싣고 시카고에서 폭파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듣고 그의 정체와 밴의 위치를 정보국에 알려서 그를 체포하게 하여 연쇄 테러를 막는다.
또 자신이 부상당하기 얼마 전 아버지와 불편한 관계에 있었던 것을 후회하고 있었는데, 자기가 아들과 함께 참전했던 친구라고 꾸며서 아버지와 통화하고, 그가 죽기 전 친구에게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며 아버지를 위로한다.
작전이 성공하면 콜터를 죽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던 개발자는, 성공한 소스코드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기 위해 그를 계속 이용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콜터와 내내 통화했던 여군 장교인 굿윈은 그가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소스코드로 돌아가 크리스티나를 구하면 자신의 생명 장치를 꺼달라는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기차 안으로 돌아간 콜터는 코미디언에게 지갑에 남은 돈을 전부 주며 승객을 웃겨 달라고 부탁하고, 크리스티나와 키스한다. 장치를 끄자, 모든 사람들이 코미디를 들으며 웃고 있고, 그가 그녀와 키스하고 있는 순간이 정지된 화면으로 영원히 남는다.
평행세계에 온 콜터와 크리스티나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시카고 거리를 걸으며 데이트한다.
시간을 다룬 영화의 방식들 중에 타임 루프 방식은 철학이나 예술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까지 현대의 과학으로는 시간을 실제로 여행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고 해 본 사람도 없으니, 이 방식은 사고 실험일 수밖에 없다. 결국 마음에 걸리는 과거의 어떤 순간으로 끝없이 돌아가서 계속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통찰을 얻는다는 뜻일 것이다.
글을 쓰는 행위도 어떤 주제로 돌아가서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쓰는 작업이다. 그러면서 의미를 찾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도 어떤 순간의 대상을 여러 번, 오랫동안 보고 생각해서 그린다. 그래서 그림에서는 사진에서 볼 수 없는 대상의 본질을 볼 수 있다.
한번 얼핏 보면 찾을 수 없었던 의미들도 다시 가서 계속 보면 보인다. 그것을 영화적 표현으로는 매일 똑같은 일상을 보내거나, 똑같은 전쟁터에서 반복해서 싸우거나, 기차 안으로 반복투입돼서 폭탄이나 테러범을 찾는 작업으로 비유한다.
또한 이 영화에서는 8분이라는 제한 시간을 주지만 이는 사실 80년의 인생이라고 보아도 다르지 않다. 폭탄이 터지지 않아도 인간은 일정 시간을 살고 죽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또는 유한한 인생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 하는 질문을 한다.
주인공은 아버지와 화해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한다.
또 잠시 뒤 폭탄이 터져 자신들이 죽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마지막 순간에 코미디언의 농담을 듣고 환하게 웃을 수 있다면 행복한 인생이라는 것이다. 마치 영화 ‘프라하의 봄’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들이 잠시 뒤 자동차 사고로 죽기 직전, 즐겁게 환호하는 장면에서 정지화면으로 영화가 끝나는 것처럼, 인생은 언젠가는 죽더라도 사는 동안 사랑하고 웃을수 있으면 행복한 것이다. 죽을 때의 고통스럽고 무력한 상태가 아니라 살아있을 때의 기쁨과 웃음과 우리의 인생을 정의한다.
영화 속의 미션을 통해 주인공은 테러범만 찾은 것이 아니라 인생의 의미도 찾는다.
그렇게 찾은 의미를 평행우주에서 보여준다.
평행우주는 자신이 실제로는 살지 못했던 삶의 대안을 의미한다. 만약에 그가 다시 한번 기회가 있다면 이렇게 살았을 거라는 소망을 보여준다.
이번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더라도 깨달음을 얻고 웃으며 죽을 수 있다면 좋은 인생이 아닌가. 정지화면 속 주인공의 행복한 표정이 그것을 말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