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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Feb 12. 2024

영화<남아있는 나날>-품위란 무엇인가?

옷을 벗지 못하는 남자

    

스티븐스는 영국 귀족 달링턴 경이 소유한 대저택의 집사이다.

스티븐스의 모든 행동은 그가 뼛속까지 ‘집사’라는 것을 보여준다. 

집주인에 대한 존경심, 업무에 대한 성실성, 옷차림, 말투, 표정까지 그는 집사로서 완벽하다. 

그의 아버지 윌리엄도 평생 집사를 했고 그는 완벽했던 아버지를 존경했다. 

세월이 흘러 그도 나이가 들고 저택의 주인도 바뀐다. 그가 스티븐스에게 처음으로 휴가를 주어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인생의 후반기에 떠난 여행길에서 그는 자신의 인생을 찬찬히 톺아본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달링턴 경이 소유한 저택에서 집사로 일하는 스티븐스는 완벽하게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유능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주인을 존경하고, 집사 업무를 한 치의 실수도 없이 해내는 인물이다. 근무하던 부집사와 시녀장이 서로 좋아하고 결혼하게 되어 저택을 떠나게 되자 새로운 직원들을 뽑아야 되는데, 연애는 업무에 지장을 준다고 생각하는 스티븐스는 은퇴한 늙은 아버지와 성실해 보이는 켄턴 양을 그 자리에 앉힌다. 

1930년대에 주인 달링턴 경은 저택에 정치인들을 초대해서 식사하며 정치적 회의를 하고는 했는데 그는 독일을 지지하는 성향이다. 나중에는 성실한 하인들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해고하기도 한다. 

어느날 중요한 인사들이 모이는 파티를 진행하던 중 노쇠한 아버지가 쓰러지게 되고 위험한 지경에 이르지만 스티븐스는 파티에 차질을 줄까 봐 손님의 시중을 드느라 아버지의 임종에도 자리를 함께 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아버지 옆에 있어 주는 것보다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을 아버지가 더 원하실 거라고 자위한다.

켄턴은 스티븐스에게 매일 정원에서 꽃을 꺾어서 가져다주고, 둘은 직무을 의논하는 것을 빙자하여 사무실에서 밤에 대화를 나누며 즐거워하지만, 그는 감정 표현을 하지 않으려 극도로 조심한다. 그러다가 어느날은 연애소설을 읽는 것을 그녀에게 들키고 몹시 부끄러워기도 한다. 그에게 마음이 끌리는 켄턴은 그가 먼저 고백을 하기 바라고 기다리지만 그러지 않자, 알고 지내던 남자가 자신에게 청혼한 사실을 알리는데 스티븐스는 축하한다는 말만 하고 돌아선다. 이때도 그는 솔직히 마음은 아프지만, 자신이 감정을 억제할 수 있었던 것을 자랑스러워 한다.

결국 그녀는 상처받고 그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저택을 떠나 결혼한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시대가 달라지자 친 나치였던 달링턴 경은 세상의 비판을 받고 재판에도 져서 쓸쓸하게 죽게 되고, 저택은 과거 파티에 참석해서 반대 의견을 말했던 미국인 하원의원이었던 패러데이에게 팔린다. 새 주인은 집의 관리를 잘해온 집사 스티븐스에게 계속 일을 맡긴다.

그러나 여전히 성실히 업무를 수행하지만 나이가 든 스티븐스의 실수도 잦아지고 새 주인은 그에게 휴가를 떠나기를 권한다. 가고 싶은 곳도 없었던 그는 마침 켄턴에게서 결혼에 실패하고 불행하다며 다시 일하고 싶다는 편지를 받고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온다. 그녀가 보고싶다는 진심 대신 그녀가 달링턴 가에 다시 올 수 있나 알아보겠다는 핑계를 대고 그녀를 만나러 떠난다.

몇십 년 만에 만난 둘은 대화를 나누는데 그녀는 이제는 아기를 낳을 딸을 돌보아야 하고 남편과 재결합을 하게 돼서 먼곳에서 일을 할 수는 없다고 한다. 그녀는 과거에 화가 나서 그에게 상처주려고 결혼을 했으며 어쩌면 스티븐스와 함께 했을지도 모를 삶을 상상하며 긴 세월 불행했었다고 말하는데 이를 듣는 스티븐스의 마음은 찢어진다.

그녀와 헤어지고 쓸쓸하게 해변의 벤치에 앉아있을 때 해가 지며 아름다운 저녁노을이 물들고, 과거에 집사였다는 노인이 다가와서는 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은 저녁이라며 이 시간을 충분히 즐기라고 말한다.

그는 저택으로 돌아가서 계속 집사 일을 할 때 앞으로는 새 주인에게 자주 농담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집사인 스티븐스는 직업을 위해 개인의 생각과 감정은 철저히 억압한다. 누가 보아도 켄턴을 사랑하지만 집사 일에 방해가 될까 봐 감정은 무시했고 심지어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또한 저택의 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달링턴경이 하는 생각과 결정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자신의 생각을 가지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이 집사의 ‘품위’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평생을 일만 하며 혼자 외롭게 살다가 이제 노인이 된 스티븐스는 뒤늦게 떠난 여행에서 과거를 회상하는데 영화에서는 6일간의 여정 중간중간에 과거를 플래시백으로 넣어서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스티븐스는 자신이 일만 하느라 떨어뜨리고 잃어버린 귀한 보석이 무엇이었나 성찰한다. 

“어쩌면 둘이 함께 했을 수도 있었던 삶 때문에 내내 불행했다.”는 말은 켄턴의 대사로 나오지만 사실은 스티븐스의 무의식에서 나오는 독백이다.

또 정치적인 모임에 온 귀족들의 허영과 지적인 과시와 주인의 친독일 성향에 대해 자신의 비판적 견해를 갖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나중에 그들을 모른다고 부정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심리학적으로 직업, 말투, 옷차림등은 사람의 본질이 아니라 페르소나일 뿐이다. 스티븐스는 그것들이 품위라고 생각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그것은 껍질일 뿐이고 그런 면에서 스티븐스는 가치를 껍데기로 환원시키는 속물이다. 

그는 자아와 페르소나의 구분이 없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라면 직업적 실존과 인간적 실존을 구분할 수 있어서 페르소나를 썼다 벗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스티븐스는 가면이 얼굴에 철썩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는 젊은 날에 사랑에 대한 감정이나 삶의 가치관 등은 철저히 억압해서 의식으로 절대로 나오지 못하게 했다. 그는 혼자 있어도 옷을 벗을 수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또한 자신의 중심에 자기(self)가 없다. 보통 문학작품에서 집주인은 ‘자기’의 은유인데, 그의 경우 주인의 생각을 듣고싶지 않거나 나중에 심지어 집이 팔리어 주인이 바뀌어 버리기까지 한다. 악당들조차 부정적이기는 하지만 중심에는 변치 않는 자기가 있는데, 그는 중심은 비어있고 흔들린다. 자신이 주인공이 아닌 삶을 사는 것이다. 여행 중에 달링턴이 나치라며 사람들이 비난하자 자신은 그를 모르는 척하며  부정하기까지 한다.

다행히 자기를 찾는 여행에서 그가 인생에서 잃어버린 보석이 사랑(아니마)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또 자신이 어떤 주제에 대해 스스로 아무 견해도 갖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도 깨닫는다. 그러나 이제는 너무 늦어서 자신에게는 이제 남은 것이 없다고 절망할 때, 어떤 노인으로 비유되는 진정한 자기를 만나서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노년)이고, 지금을 즐기라”는 말을 듣는다.

그가 돌아가서 자주 하겠다고 마음먹는 ‘농담’은 그가 앞으로 감정을 억압하지 않고 표현하고 살겠다는 의지로 들려서 다행이다. 마지막에 집 안으로 들어와서 갇힌 비둘기를 주인과 함께 노력해서 밖으로 내보내는 장면은 그가 페르소나를 뚫고 자신의 억압된 감정을 표출하는 아름다운 은유로 보인다.

     

이 영화는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부커상을 받은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제목 ‘The Remains of The Day’를 ‘남아있는 나날’로 번역했는데 오역이라는 논란이 있었다. 나도 처음에 한글 제목만 보았을 때는 day를 인생 전체의 비유로 보고 남아있는 나날은 노인이 된 스티븐스의 남은 생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작가의 노트에서 이 제목은 프로이트의 ‘Day Residue(낮의 잔재)’ 개념을 변형해서 썼다고 하는 것을 읽었다. 

그러니까 오히려 day는 night와 대가 되는 단어여서 이 제목은 남은 생이 아니라 스티븐스가  젊은 시절에 억압했던 감정의 앙금을 의미하며, 소설은 그것이 노인이 된 스티븐스의 현재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을 묘사한다고 볼 수 있다.

day가 인생 전체가 아니라, 젊은 날이라고 보는 게 맞다면, 제목은 직역하면 ‘낮의 잔재’, 의역하면 ‘젊은 날의 회한’쯤이 되겠다. 


프로이트는 낮에 표출되지 못한 사소한 감정의 잔재들이 밤에 꿈의 형태로, 바라는 소원을 일깨운다고 하였다. 즉, 젊은 날 억압했던 부분이 나이가 들었을 때 드러나면서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한다고 했다. 

이 작품은 스티븐스가 젊은 시절 충실한 집사로서 주인의 생각을 무비판적으로 따를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견해를 가지고 살았어야 했고, 일만 하느라 사랑의 감정을 억압하지 말고 켄턴과 함께 하는 인생을 살았어야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책도 너무 훌륭해서 추천한다.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왜 받았는지 금방 수긍이 될 정도로 분위기 묘사가 탁월하고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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