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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Oct 02. 2023

영화<메멘토>-기억 대신 기록을 하는 남자

살아갈 이유 만들기

흔히 플롯의 마술사라고 불리는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이 있다.

그의 작품은 서정성도 있고, 복잡한 플롯을 따라 그가 안내하는 과정대로 이야기를 따라가는 재미도 있다. 이 영화는 그의 초기 작품인데 저예산이지만 단순해서 오히려 감독의 매력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처음에는 아내의 살인범이 누구인가와, 과연 범인을 찾아서 복수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며 보다가 영화가 흘러감에 따라 주인공이 왜 저런 삶을 사는가로 관점이 바뀌며 주인공에 연민을 느끼게 되는 흥미로운 영화이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레너드라는 사람은 보험 조사관이었고 아내를 사랑하는 남자였다.

그러나 어느 날, 강도가 침입하여 아내를 죽이고 자신의 머리를 때려서 선행성 기억장애를 가지게 된다. 사고 이전의 기억과 정체성은 가지고 있으나 사고 이후에는 10분 정도만 기억이 유지되고 잊어버려서 계속 처음으로 리셋된다. 그가 가진 마지막 기억은 아내가 죽는 장면이었고 따라서 아내를 죽인 범인을 잡아 복수하는 것이 생의 유일한 목표이다. 문제는 범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여도 계속 잊어버리므로 이것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로 쪽지와 폴라로이드로 찍은 사진에 적은 메모를 이용하는데 진짜 중요한 정보는 없어지지 않게 자신의 몸에 문신으로 남긴다.

그의 몸의 문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가슴에 새긴 “존 G가 내 아내를 강간하고 살해했다. 그를 찾아 죽여라.”이다.

또 하나는 가장 잘 보이는 손등에 적은 “새미 젠킨스를 기억하라.”이다. 새미는 자신이 보험 조사관으로 일할 때 선행성 기억장애를 주장하며 보험금을 청구한 남자인데 그가 새미의 증상은 병이 아니라 심리적인 이유라고 하는 바람에 보험금은 지불되지 않았다. 그의 가정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고 그의 아내는 당뇨병을 앓고 있었는데 남편의 진심을 의심하여 남편을 시험한다. 그는 조금 전 투여한 주사를 잊어버리고 아내가 부탁할 때마다 인슐린 주사를 중복 투여하여 그의 아내는 쇼크로 죽게 된다. 그 사실도 잊어버리고 새미는 요양원에 입원하여 살고 있다.

그의 온몸은 문신으로 뒤덮였지만 왼쪽 가슴 심장 자리만 비어있다. 그 자리는 그가 복수를 마친 후 기록하려고 남겨둔 자리이다. 그의 삶은 과거의 정체성과 범인을 찾기 위한 기록들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레너드의 증상을 이용해서 이익을 보려는 사람들이 있다.

우선 아내 폭행범을 찾는 담당이었던 테디(본명은 존 갬멀) 형사이다. 그는 레너드가 범인에게 집착하는 것을 이용하여 마약 사범들을 처치하게 하자신은 돈을 챙기는 데 이용한다. 그 마약 딜러의 이름은 제임스 그랜츠이다. 이름의 약자가 J. G. 인 것을 이용하여 그가 범인이라고 말해서 레너드를 도발한다. 결국 레너드는 그를 죽이고 사진을 찍은후 그의 옷과 차를 빼앗는다.

또 다른 사람은 제임스의 애인인 나탈리이다. 테디가 제임스를 유인하고 돈을 가로챘는데 마약상 도드는 제임스가 사라지자 나탈리가 돈을 빼돌렸다고 생각하고 그녀를 추궁하고 있었다. 그녀도 역으로 레너드를 이용한다. 레너드가 자기 애인의 옷과 차를 가지고 다니자 그가 애인을 죽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녀는 그를 구슬려서 도드를 혼내주고, 테디의 본명 이니셜이 J. G.이니 테디가 아내의 살해범이라고 알려준다. 레너드는 이런 내용을 테디의 폴라로이드 사진에 적는다. “그가 범인이니 죽여라.” 결국 다시 테디를 만난 레너드는 그를 보자 기억하지 못하고 사진 아래 기록에 따라 그를 죽인다.

     



이러한 스토리를 감독은 친절하게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가장 최근에 일어난 테디를 죽이는 순간부터 역순으로 보여준다. 수십 번의 순간으로 거꾸로 돌아가 어떤 일이 있었고 잊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에 관객들은 주인공을 따라 계속 과거로 돌아가야 이야기를 완결할 수 있다. 이때는 칼라 화면으로 보여준다.

또한 중간중간 흑백 화면으로 진행되는 다른 선의 이야기가 있는데, 이는 사고 이전에 겪은 경험과 레너드가 자신의 정체성에 관해 설명하는 이야기이다. 그는 흑백 장면에서 새미 젠킨스의 이야기를 형사에게 계속 전화로 설명한다. 이것은 무의식 속 그림자가 현실의 자아를 정당화해주는 과정이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테디가 진실을 알려준다. 사실 레너드의 아내가 강도에게 폭행을 당한 것은 맞지만 죽지는 않았었다. 그 뒤 형사가 범인을 찾아주자 레너드가 범인을 죽였고 그때 기뻐하는 사진을 찍어 테디가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잊고, 또 다른 J. G. 를 계속 찾은 것이다. 세상에 그런 이니셜을 가진 사람이 너무도  많으니 그의 추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형사 테디의 본명 이니셜도 J. G.이다)

또 하나, 새미는 결혼한 적도 없고 거짓말로 보험금을 타려는 진짜 사기꾼이었다. 결국, 레너드가 자신과 동일시하는 마음속의 새미는 그가 창조한 인물인 것이다. 실제 당뇨병을 앓은 사람은 레너드의 아내였고, 사고 후 레너드가 직장을 잃자 경제적으로 힘들어지고, 아내는 그가 진짜 기억장애를 가지고 있는지 시험하다가 쇼크로 죽은 것이다. 그가 계속해서 새미를 기억해야 한다며 다른 사람에게 새미가 행성 기억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다니는 것은, 자신이 아내를 죽인 것이 병 때문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새미가 요양원에 가 있는 것도 그의 환상일 뿐이다.(새미는 사기꾼이어서 감옥에 갔을 것이다.) 결국 그와 상상속 새미는 동일인이다.


실수이든 고의이든 아내를 죽인 것에 대한 무의식 속 죄책감은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아내를 죽인 살인범을 만들어 놓고 그를 죽이는 것이 그가 사는 명분이다. 이미 범인이 죽었다고 인정하면 그는 견딜 수 없기 때문에 그는 지나간 기록을 오히려 없앤다. 그는 자신이 범인을 죽이고 기뻐하던 사진과, 나탈리의 애인인 제임스 그랜츠를 죽인 사진을 태워 버린다. 그는 기억은 해석이어서 정확하지 않고 기록은 정확하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그는 자의적으로 기록을 누락하거나 선택해서 기억을 조작한다. 기록은 맥락이 없는 정보이기 때문에 거짓에 이용될 여지가 있다.  '범인은 없다'는 믿고싶지 않은 진실을 말해주는 테디의 폴라로이드 사진에는 "그는 거짓말쟁이"라고 쓴다. 범인이 있을 거라는 증거만을 남기는 것이다.

그가 범인의 문신을 새겨놓으려고 비워둔 심장 자리는 결코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범인은 계속 생길 것이고, 또 그 심장의 주인이 범인이기 때문이다.

기억이 너무 끔찍할 때 마음은 기억을 조작한다. 괴로우면 진실을 원하지 않고 오히려 퍼즐이 풀리지 않기를 바란다. 그 퍼즐에 로맨스를 한 스푼 넣어서 러브 스토리를 만들어 자신을 지탱하는 것이다. 레너드는 ‘자신은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복수를 하는 사람이다. 자신은 의미 있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라는 내러티브를 창조한

         

레너드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전지적 시점을 가진 사람테디이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그는 레너드의 자기이다. 그는 자아인 레너드를 이해하고 동정하고 약점까지 모두 알고 있다. 테드는 레너드의 그림자(영화의 흑백파트)가 진실을 외면하려고 할 때마다(전화수신을 거절) 끊임없이 그의 자아를 깨우다가 결국 죽임을 당한다. 테드가 레너드에게 시체를 숨겨둔 지하실, 즉 무의식에 가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살펴보라고 경고하지만, 폭주하는 자아인 레너드는 그를 죽인다. 마음의 중심인 자기를 잃은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살지를 상상해 보면 섬뜩하다. 그는 무의식의 그림자에게 조종당하며 계속 희생자를 찾을 것이고, 번번이 자신의 행동을 잊어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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