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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Jul 17. 2023

영화<당신과 함께한 순간들>-희미한 복사본의 그림자

사람은 가고 기억만 남는다

     

가까운 사람이 죽고 나서 남겨진 사람들은 떠난 사람에 대한 기억과 함께 살아간다.

그 기억들을 다 모아 놓으면 과연 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영생의 방법으로 자신의 데이터를 모두 컴퓨터에 업로드하면 그 사람이 계속 존재하는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많지만, 이영화는 그쪽 방향보다는 과연 남겨진 기억조차 온전한가에 대한 기억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까운 미래 시대, 마조리는 80대가 되어 치매기도 있는 노인 여성이다. 그녀를 보살피러 온 딸 부부가 있지만 딸 테스와는 약간 껄끄러운 관계이고 사위 존은 그녀가 누군가와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어떤 사람의 데이터를 입력하면 생전의 그 사람을 홀로그램으로 구현하고 그 사람의 목소리로 대화할 수 있는 AI 프로그램인 ‘프라임’을 구입하여 작동시킨다. 딸인 테스는 엄마가 사람이 아닌 존재와 대화하는 것도 못마땅하고 그녀가 아버지를 젊은 모습으로 구현한 것도 못마땅하다.

     

마조리는 남편 월터의 AI인 ‘월터 프라임’의 모습을 결혼할 무렵인 40대로 만든다. 자신과 나이 차가 나는 남편이 노년에 힘든 모습을 보여서 그때의 모습으로 불러오고 싶지 않은 것이다. 마조리가 프로그램을 불러오면 월터 프라임은 홀로그램 형태로 즉시로 나타나서 마조리 앞에 앉아서 그녀와 마주하고 대화한다. 프라임의 의식은 주변 사람들이 그 사람에 대하여 이야기한 것을 바탕으로 형성되었고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다시 정정하고 발전시킨다. 그에 대한 정보는 기억이 뒤죽박죽인 마조리와 사위인 존이 같이 제공한다. 그녀는 자신이 듣고 싶어 하는 과거의 이야기를 월터 프라임을 통해 반복해서 듣고 위로받는다.

     

시간이 흘러 마조리도 세상을 뜨고, 딸 테스는 엄마의 노년 모습을 한 ‘마조리 프라임’을 만든다. 그들의 대화를 통해 마조리가 딸에게 따뜻한 정을 주는 엄마는 아니었음이 드러난다. 그녀는 프라임이 미소를  짓자 실제의 마조리는 잘 웃지 않았다고 정정한다. 테스도 자신의 딸인 레이나와 사이가 좋지 않고 수년째 연락도 없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녀는 AI와 실제 엄마가 같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과 대화하고 위로받으면서 그 사실에 어이없어 한다. 엄마의 사랑을 받지못해 내내 불행했던 테스는 결국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자살한다.

     

혼자 남은 존은 사랑하던 아내를 보내고 괴로워하다가 결국 ‘테스 프라임’을 작동시킨다. 다른 프라임에게 정보를 입력했을 때처럼 이번에도 프라임에게 테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이렇게 형성된 테스 프라임의 의식은 존이 말해준 대로 만들어진다. 연락이 없던 딸이 입양한 손녀를 데려와 테스 프라임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손녀의 이름은 외할머니의 이름을 딴 마조리이다.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든 존은 요양원에서 손녀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비어있는 집에서는 세 개의 프라임들이 남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공통된 내용도 있지만 몰랐던 주제도 있고 잘못된 정보도 들어있다. 그들은 정보를 나누고 보완하고 수정하면서 그들에게 정보를 주었던 사람들이 방문하기를 기다린다.

     



모든 내용을 입력하고 그것이 다 정확하더라도 그것들을 모아놓은 컴퓨터 프로그램이 그 사람이라고 하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런 문제뿐 아니라 대화상대로서의 프로그램조차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기초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조리는 남편의 프라임에게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또 정확하게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가족들과 해변을 함께 산책하던 개, 토니에 대해서도 데려올 때 딸인 테스가 선택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자살한 아들 데미안이 골랐던 개였다. 그녀는 아들을 잃고 너무 힘들어서 그 사실을 다시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의 상처는 남아있는 딸에게도 전해져서 딸을 제대로 사랑할 수 없었고 항상 공허한 시선을 보냈다. 딸인 테스는 어린 시절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괴로웠고, 엄마의 마음을 가지고 떠나버린 형제인 데미안을 미워했고, 우울증에 걸려서 자신도 딸인 레이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졌다. 그녀 역시 그 기억을 억압하고 남편 이외의 사람들에게나 프라임에게는 이야기하지 못한다.

     

모든 과거를 통합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마조리의 사위인 존이다. 월터 프라임에게 죽은 아들 데미안의 존재를 알려준 것도, 마조리를 기분 좋게 하기 위해 결혼 전 그를 따라다녔던 남자 테니스 선수의 경력을 부풀렸던 것도 존이다. 그러나 존도 늙어서 곧 세상을 떠날 것이고 프로그램에 저장된 기억의 누락과 오류에 대해 수정을 해줄 사람들은 더이상 지구상에 없다.

그는 마지막에 만든 아내의 프라임에 정보를 입력하면서 결국 프로그램인 프라임은 실제와는 다른, 자신이 좋아하는 정보로만 구성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인간들은 세상을 뜨고 남은 프라임들은 제각기 알고 있는 사람들의 기억을 불러온다. 월터 프라임은 마조리에게 청혼하는 장면을 실제인 호텔방에서 영화 ‘내 남자 친구의 결혼식’을 보며 침대에서 했던 것 대신에, 극장에서 영화 ‘카사블랑카’를 보고 나와서 길거리에서 반지를 준 것으로 대치한다. 인간 마조리는 죽기 전 실제 프러포즈 장면을 떠올렸지만, 프로그램인 마조리 프라임은 월터 프라임이 말한 허구에  맞장구친다.

그들은 서로 대화하며 토니라는 개가 두 마리가 있었다는 것과, 테스 이외에 데미안이라는 아들도 있었다는 것을 새로 듣고 기억을 수정한다. 그들에게는 내용을 바꿀 수 있는 영원의 시간이 있다.

     

모든 사람은 결국 죽어서 떠나고 프로그램만 남아 기억들은 영원히 둥둥 떠다닌다.

원본은 사라지고 마지막 순간의 기억들만 남아 계속 그들은 서로 복사하면서 희미해진다.

결국 기억이란 우물이나 서랍장 속에 넣어둔 확실한 어떤 것이 아니어서, 우리가 강렬하다고 생각하는 기억도 완전히 믿을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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