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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Mar 14. 2024

영화<고스트 스토리>-기억해야 존재한다

이별 이야기

     

서로 사랑하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다.

둘은 정들었던 보금자리에서 떠나기로 결정하는데 이사 전날 교통사고로 남자가 죽는다.

슬픔에 잠긴 여자와 유령이 된 남자가 함께 그 집에 머물게 된다.

이 영화는 피 흘리는 유령이 나오는 영화가 아니라 꼬마 유령 ‘캐스퍼’처럼 죽은 남자가 병원의 침대 시트를 뒤집어쓰고 눈구멍만 뚫은 모습으로 나와서 고스트의 시점에서 사랑을 바라보는 사색적인 내용의 영화이다. 따라서 공포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도 걱정 없이 볼 수 있다는 점을 알려드린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남자 C와 여자 M은 서로 사랑하는 부부이다.

남자는 지금 살고 있는 교외의 작은 주택을 너무 사랑하지만 여자는 그 집을 떠나고 싶어 한다. 이사에 관해 서로 의견이 달라서 둘은 자주 다툰다. 그녀는 그것을 집착이라고 하고 그는 그것을 추억이라고 한다. 둘은 결국 이사하기로 결정하고 밤에 둘이 누워 있는데, 쿵 소리가 들려서 거실로 나와보니 아무것도 없고 그녀는 이 집에서는 항상 이상한 소리와 빛의 형상이 보인다고 한다. M은 이사할 때마다 떠나는 집 틈에 다시 돌아왔을 때 기다리는 것이 있기를 바라고 시구절이나 그 집에서 좋았던 점을 적은 쪽지를 끼워 넣었다고 남자에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사 전날, 집 앞에서 교통사고가 나고, 남편은 죽는다.

병원 영안실에 가서 남편의 죽음을 확인한 여자가 집에 돌아오고, 죽은 남편은 유령이 되어 시트를 뒤집어쓰고 일어나서 아내를 따라 집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너무 슬퍼서 침대 모서리에서 쪼그리고 울면서 자고, 공허한 눈빛으로 창밖을 내다보고, 이웃이 가져다준 초콜릿 파이를 마룻바닥에 앉아 마구 퍼먹다가 토하기도 한다. 아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고스트는 집안에서 오랫동안 지켜본다. 아내가 출근한 동안 그는 소파에 앉아 혼자 빈집을 지킨다. 옆집 창문을 보니 그 집에도 다른 고스트가 창 옆에 서 있고 그는 “누구를 기다리는지조차 기억이 안 난다”라고 한다.

점점 아내의 퇴근 시간이 늦어지고 어느 날은 어떤 남자가 아내를 데려다주러 와서 현관에서 그녀와 키스한다. 이때 집의 전구가 번쩍하며 나가고 책장에 있던 책들이 르르 쏟아진다. 펼쳐진 버지니아 울프의 책 '유령의 집' 페이지에는 “우리가 자던 곳이야. 이 집의 맥박이 뛰고 있어. 그는 그곳과 그녀를 떠났지. 그 보물은 네 것이야.”라는 내용이 있었다. C는 사고가 나기 전날도 아내와 말다툼을 하고 그가 작업하던 노래를 헤드폰으로 아내에게 들려주었는데, 가사는 “그녀가 날 두고 떠났어.”였다.


아내는 이사를 하기로 하고 남편의 물건들을 정리한다. 남편이 작업했던 음악을 듣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작은 쪽지를 문틀 사이에 끼운 다음 빈집을 둘러본 후 떠난다.

다시 이 집으로 새로운 멕시칸 가족이 이사를 오지만 C는 그들의 외국어를 알아들을 수 없고, 고스트는 아이를 놀라게 하고 피아노 액자를 떨어트리고 벽장문을 열고 접시를 던지며 이 이방인 가족을 쫓아낸다. 다시 그녀가 두고 간 쪽지를 꺼내 보려 하지만 틈이 좁아 잘 나오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고 이 집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파티를 하게 되는데, 한 똑똑한 남자가 “우리가 죽어도 우리의 유산을 책이나 음악이나 후손의 형태로 사람들이 기억해 주면 세상에 남을 수 있지만, 세월이 아주 많이 흐르면 소수만 기억할 것이고 그것도 영원하지는 않다. 결국은 아무것도 남지 않고 모든 것은 사라진다.”라고 말한다. 이들도 떠나고 빈집에 부서진 피아노만 남았을 때 쪽지를 꺼내려는 순간, 포클레인이 이 집을 부순다. 집이 부서진 폐허 위에 두 고스트만이  서 있는데, 옆집 고스트가 “이제는 그들이 돌아올 것 같지 않아요.”라고 말하고 폭삭 주저앉으며 사라진다.

 

그 자리에는 고층 빌딩이 들어서고 고스트는 홀로 그 빌딩 안을 배회하다가 높은 곳에서 추락하여 과거의 서부 시대로 간다. 그 집이 있던 자리에서 머물던, 서부로 가는 가족 중 어린 소녀가 무언가를 적은 쪽지를 돌 밑에 숨긴다. 얼마 뒤 그 가족은 인디언의 화살을 맞아서 죽어 백골이 되었고, 세월이 계속 흘러 고스트가 죽기 전 시간이 된다.

그들 부부가 이 집을 보러 온다. 고스트는 그들이 이 집에 이사하고, 사랑하고, 싸우는 과정을 다시 지켜본다. 그녀가 이 집을 떠나자고 말할 때 고스트는 피아노를 두드려 쿵 소리를 낸다. 다시 그녀가 쪽지를 끼우고 집을 떠나는 순간이 온다. 고스트가 이번에는 쪽지를 꺼내는 데 성공한다. 그것을 읽은 고스트가 폭삭 주저앉으며 사라진다.

     



남자에게는 그들이 함께 살고, 모든 추억이 서려있는, 집 자체가 사랑이다. 그런데 그녀는 그 집에서 떠나자고 말하고 그는 그것을 이별로 받아들인다. 교통사고로 인한 그의 죽음은 실연의 은유이다. 그녀도 과거에 그를 사랑했으니 이별은 뼈아픈 경험이다. 영화는 그 ‘상실’의 과정을 리얼하게 보여준다.

그 뒤는 사랑을 ‘기억’하는 과정이다. 둘이 함께했던 생활과 추억이 서린 가구와 물건들과 책과 그가 남긴 음악을 복기하면서 떠난 이를 기억한다. 아직도 그녀는 그 집에 머문다. 집은 바로 그이기 때문에 아직도 그를 기억한다는 의미이다.

그녀가 마침내 집을 떠난다는 것은 ‘망각’을 의미한다. 그러나 둘의 망각에는 시간차가 있고 그의 망각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래서 유령은 빈 집을 지킨다. 그녀가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옆집 유령은 연인이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확신했을 때 소멸되었다. 그러나 C는 아직도 기다린다. 심지어 집이 사라졌어도 그 땅에서 기다린다.

 

이런 과정은 오랜 옛날부터 있었을 것이다. 그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전지적 시점으로 본 서부시대 소녀도 돌 밑에 무엇을 남기고 싶어 했으나 결국 시간이 그것을 다 앗아간다는 진실을 그는 깨닫는다.

그는 자신의 사랑을 처음부터 다시 톺아본다. 그녀와의 갈등과 이별의 징조와 홀로 사는 외로움까지 다시 겪어본다. 두 번째 맞이한 이별에서 그는 그녀가 끼워둔 쪽지를 꺼내어 읽고,  소멸한다. 쪽지의 내용은 영화에 나오지 않지만 돌아오지 않겠다는, 잊겠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영화 속 현자의 말처럼 사람은 자신이 죽어도 나중에 무언가 기억되기를 바라며 사랑을 하고, 자식도 낳고, 글도 쓰고, 음악도 만들고, 집도 짓는다. 어느 정도의 시간 속에서라면 훌륭한 작품들은 살아남을 것이다. 그래서 베토벤은 죽었어도 아직 우리는 그의 작품을 듣고 있는 것이고 오래전에 만들어진 로마의 유적을 아직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더 긴 시간이라면 가령 태양과 지구가 존재하지 않는 우주의 시간 속이라면 어떤 것도 부질없으며 모든 것은 사라질 것이다.

결국 연인 C와 M의 사랑은 그토록 열렬했고 이별은 아팠고 추억은 아련했으나, 시간 앞에서 잊히고 스러져간다. 두 번의 회귀 끝에 고스트는 사라지고 남자는 이별을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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