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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Sep 02. 2024

영화<가재가 노래하는 곳>-습지가 된 여자

자연이 인도하는 대로~

     

가족이 모두 떠나고 습지에 남겨진 소녀 카야는 문명과 떨어진 곳에서 자연에 순응하며 겨우 살아남는다. 외부자인 그녀를 모두 마녀 취급하며 배척하지만 오빠의 친구인 테이트가 그녀를 좋아하고, 이후에는 체이스라는 마을 청년이 그녀에게 관심을 갖는다.

그러던 중 체이스가 화재 감시탑에서 추락하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그녀는 재판을 받게 된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카야도 어릴 때는 가족이 있었다. 그러나 가정폭력이 심한 아빠를 피해 엄마가 가출하고, 이어 언니 둘과 큰 오빠와 가장 친한 작은 오빠까지 집을 나간 후 아빠와 단둘이 남겨지지만, 얼마 후 아빠까지 나가면서 어린 카야는 홀로 집에 남겨진다.

식량이 떨어지고 그동안 아빠가 하는 일을 보면서 배운 카야도 근처에서 홍합을 채취해서 잡화상에 가서 팔고 그 돈으로 생필품을 사는데, 가게 주인인 점핑 부부가 그녀를 불쌍히 생각하며 틈틈이 챙겨준다. 돌보는 어른이 없는 그녀는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신발도 없는 채 마을 사람들에게 동물 취급을 받지만 오빠 친구인 테이트가 그녀가 좋아하는 새의 깃털을 근처에 가져다 놓기도 하고  문맹인 그녀에게 글을 읽고 쓰도록 가르치고 책도 같이 읽는다. 엄마를 닮아 그림도 잘 그리는 그녀는 습지를 관찰하며 스케치도 하고 테이트에게 배운 글로 설명도 달아 놓는다. 테이트는 카야가 살고 있는 땅의 세금을 해결하기 위해 그녀의 그림과 글을 출판해 보라고 격려한다.


시간이 지나고 테이트도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다른 도시로 가게 되어 둘은 이별하게 되고, 몇 달 후 독립기념일에 그녀를 보러 오겠다고 약속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카야는 다시 혼자만의 생활을 하게 된다.

외로운 카야에게 잘생긴 동네 청년 체이스가 접근한다. 그는 문명에 길들여지지 않고 독특한 야생의 카야에게 매력을 느끼고 그녀의 남자친구가 된다. 그가 선물한 특별한 얼룩 가리비 조개비로 그녀는 목걸이를 만들어 그에게 준다. 그는 그녀만이 아무도 모르는 자신의 내면을 이해한다며 카야에게 자신이 혼자 잘 가는 장소인 화재 감시탑도 구경시켜 준다.

출판을 위해 도시에 나갔던 카야는 체이스와 그의 약혼녀를 마주치게 되고 그가 자신을 욕망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만났다는 것을 알게 되고 절망한다. 그와 헤어지려고 하지만 체이스는 그녀를 때리며 놓아주지 않는다. 그녀는 엄마가 자신을 때리는 아빠를 두려워하며 결국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을 비로소 이해한다. 혼자인 것은 힘들 뿐이지만 위험을 안고 사는 것은 생존을 위협하는 일이었다.


대학에 다니느라 마을을 떠났던 테이트가 돌아오고 그녀가 위험에 빠진 것을 알고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그녀를 선택하지 못했던 비겁함에 대해 사과하고 후회하며 그녀에게 꼭 책을 출판하라고 한다. 카야는 며칠간 출판업자와의 회의를 위해 습지를 떠나서 도시로 가고 그 사이에 체이스가 추락하여 죽게 되는 일이 발생한다.  

   

카야는 체이스의 살인 용의자가 되어 재판을 받는다. 확실한 증거도 없고 알리바이도 있는데도 마을 사람들은 그녀가 살인자라고 생각한다. 그녀를 편견 없이 바라보는 몇 안 되는 성숙한 어른인 퇴직한 변호사 톰 밀튼이 변호를 자원한다.

검사는 현장에 지문과 발자국이 없는 것을 보고, 오히려 그녀가 사악하게 증거를 인멸했다고 한다. 그가 죽었던 시간에 그녀가 도시의 호텔에 있었는데, 그녀가 몰래 밤중에 나와서 범행을 하고 다시 돌아갔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물론 목격자도 없다. 체이스의 부모는 아들이 그날 저녁 식사 때도 차고 있었던 조개 목걸이가 없어졌다며 카야를 의심한다.

변호사는 재판에서 온 마을이 차별하는 외부자인, 버려진 소녀를 편견 없이 증거로 판단해  달라고 호소하고 카야는 무죄판결을 받는다.


그녀는 책이 출판되어 받은 돈으로 세금을 내어 집과 습지의 소유권을 인정받고,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테이트와 평생을 자신의 집에서 살며 습지를 관찰하고 책을 만들며 행복하게 살다가, 조용히 죽어 습지와 하나가 된다.

테이트는 그녀의 물건을 정리하다가 그림이 곁들여진 일기장을 찾아서 읽는데, 거기에 “자연에는 도덕이 없다. 때로 먹잇감이 살아남으려면 포식자가 죽어야 한다.”라는 문장이 있었고, 그 안에 체이스가 하고 있었던 목걸이가 들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우리나라에도 순천만이 있고 습지가 멋있지만, 영화 속 미국 남부 캐롤라이나 바클리 코브의 습지도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답다. 카야가 내레이션에서 습지와 늪지는 다르다고 말했던  것처럼 습지는 빛이 들어오고 물과 숲이 어우러지는 넓고 아름다운 공간이다.

그곳에서 혼자 남겨져서 살아가는 습지 소녀인 카야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그녀는 자체로 자연의 은유라고 볼 수 있다. 그냥 늑대 소녀로 살 수도 있었을 카야를 교육한 테이트는 인간 문명의 상징이다. 그녀가 본질은 남긴 채 그 아름다움을 세상에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은 테이트가 가르쳐준 문자 덕분이다.


마지막 반전을 보며 카야를 살인자이고 재판에서 거짓 증언을 해서 살아남은 자라고 할 수도 있다. 문명화된 인간의 입장으로 보면 이것은 범죄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에서 ‘생존’은 인간의 도덕을 뛰어넘는 가장 높은 단계의 명령이라고 볼 수 있다. 카야는 자신이 살아가는 습지와 집을 침범하고 그녀의 안위를 끝까지 위협하는 포식자와 함께 공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생물은 살아남기 위해 행동한다. 암컷 사마귀는 번식과 포식의 두 목적으로 수컷 사마귀를 유인해서 짝짓기하고 잡아먹는다. 이것은 비극도 아니고 죄도 아닌 것이다. 그저 자연이 인도하는 대로 일어난 일일 뿐이다.

영화에서 자세한 정황은 나오지 않지만 그녀는 자신이 사는 서식지에 침범하는 포식자인 체이스가 평소에 혼자 화재탑에 자주 간다는 것과 그곳의 바닥 철조망이 허술하다는 정보를 가진 상태에서 찾아서 죽였을 것이다. 결코 자신을 놓아주지 않을 사람을 근처에 두고 계속 유린당하며 먹잇감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포식자를 죽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한다. 테이트가 그녀에게 청혼했을 때 카야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니 이미 결혼한 것이라고 한다. 그저 평생 한 배우자와 해로하는 기러기 같이 살면 되지 않냐고 한다. 인간의 약속이나 의식이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습지에서 살며 기러기처럼 사랑하고 그곳의 생물들을 소개하는 책을 쓰고 그녀는 늙어 조용히 스러져간다. 그녀는 습지 자체이므로 죽은 후에도 새들의 깃털, 조개껍데기, 반딧불 속에 존재한다.

반딧불이 습지에서 반짝일 때 그녀도 여전히 거기에 있다.

아무도 없는 그곳, 가재가 노래하는 그곳에 그녀가 영원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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