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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Feb 19. 2024

영화<다우트>-의심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

원칙 vs 자율

1964년 뉴욕 브롱크스의 성 니콜라스 학교에 자유로운 분위기의 새 신부 플린이 부임한다. 그는 학생들과 스스럼없이 대화하고 농구도 같이 하며 교육과 종교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온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학교는 수녀인 알로이시스가 오랫동안 교장으로 재직하며 수업 시간이나 외부활동에서 규칙을 위반하면 교장실에 데려가 벌을 주는 등 엄격한 분위기를 유지해 왔다.

젊은 수녀 제임스는 학교에서 사랑과 열정으로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이기도 한데,

그녀는 자유로운 신부와 엄격한 수녀 교장 사이에서 어떤 쪽이 학교와 학생을 위하는 길일까 고민하게 된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러 명의 수녀가 함께 식사를 하는데 그들은 조용히 엄숙하게 소박한 음식을 먹고, 심지어는 음식의 질긴 부분이 나와도 뱉지 못하고 삼킨다. 알로이시스는 그날 미사 때 신부의 강론 중 확신을 잃고 신앙을 ‘의심’하게 된 사람들이 많으니 혼자만 그렇다고 괴로워하지 말라고 말한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아냐고 제임스에게 묻는다. 그러면서 그날 코피가 나서 조퇴를 허락한 윌리엄이 집에 일찍 가려고 일부러 코피를 냈다고 하지만 제임스가 믿지 않자 그녀를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사람이라고 한심해한다. 그러면서 신부의 행동을 잘 살피고 자기에게 보고하라고 한다.

한편 신부들의 식사는 농담과 핏기가 가시지 않은 스테이크와 와인잔이 오가는 화기애애한 시간이다. 신부 플린은 학생들과 농구를 함께 하기도 하고 다과회를 열고 이성 친구에 대한 고민 같은 솔직한 대화를 하며 조언도 해준다.


어느 날 학생들이 줄을 서서 이동하고 있을 때 중간에 윌리엄이 말썽을 부리자 신부가 그의 손을 잡고 놀리고 그는 짜증을 내며 손을 뿌리친다. 이 장면을 2층 교장실에 있던 알로이시스 수녀가 우연히 내려다본다.

제임스 수녀가 수업을 하는 도중, 신부가 이 학교의 유일한 흑인 남학생 도널드 밀러를 호출한다. 다시 교실로 돌아온 도널드는 혼란스러워하며 조퇴를 하겠다고 신청하는데 이때 아이한테서 술 냄새가 난다. 또 그날 제임스는 신부가 도널드의 사물함에 무엇을 넣는 것을 보았는데, 확인해 보니 도널드의 속옷이었다. 결국 제임스 수녀는 알로이시스를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교장 수녀는 그럴 줄 알았다며 그들이 신부를 막아야 한다고 한다. 그날 밤 제임스는 번민으로 잠을 못 이룬다.

다음날 크리스마스 행사를 빙자해서 교장실로 신부를 부른 교장과 제임스는 처음에는 차를 마시며 행사 이야기를 하는데 홍차만 마시는 수녀와 달리 신부는 긴 손톱의 손으로 찻잔을 들고 차에 설탕을 3개나 넣고 마신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도널드를 왜 독대했는지를 해명하라고 하자 신부는 불쾌해하며 처음에는 답변을 거절하며 쪽지에 ‘편견’이라는 단어를 볼펜으로 메모한다. 그냥 지나가자고 하는 신부를 아이에게 왜 술을 먹였냐고 다그치자 그는 하는 수 없이 성당의 복사로 일하는 도널드가 미사주를 몰래 마시는 것을 일꾼이 보고 신부에게 알렸고, 사실을 알아보기 위해서 부른 것이라고 한다. 그 아이는 신부에게 복사를 그만두고 싶지 않다고 사정했고 자신은 이 일을 밖으로 문제 삼지 않고 한 번 더 기회를 주려 했으나, 이렇게 알려졌으니 도널드가 더 이상 복사 일은 못하게 되었다고 안타까워한다.

제임스는 신부의 해명을 듣자 마음이 후련해지며 표정이 환해졌지만, 교장 수녀는 그 말을 믿지 않고 자신의 경험상 그는 유죄라며 그를 무너뜨리겠다고 한다. 순종적이던 제임스 수녀는 처음으로 교장에게 대들그녀가 그냥 신부를 싫어하는 것뿐이고, 자신도 교장이 추구하는 감옥 같은 학교는 싫다고 한다.


여기서 나아가 교장 수녀는 도널드의 엄마를 학교로 부른다.       

그의 엄마가 아들이 신부를 존경한다고 하자, 교장은 그가 아이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했을 거라고 한다. 증거가 있냐고 하자 그냥 안다고 한다. 도널드의 엄마는 아들이 성소수자이며 그 정체성 때문에 지난번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맞아서 죽을 뻔해서 전학했으며 그의 아빠도 아들을 미워하며 때린다고 고백한다. 아들이 아무도 의지할 수 없고 절망했을 때 그를 감싸준 유일한 인물이 신부였고, 그가 성장할 때까지 인도해 주고 보살펴줄 아빠 같은 사람이 필요했는데 신부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한다. 그녀는 수녀에게 원칙만 따르지 말고 받아들일 현실은 받아들이고 모든 것의 시비를 따지지 말라고 하지만, 수녀는 신부를 끝까지 내쫓겠다고 한다.

도널드의 엄마까지 소환했다는 것을 안 신부는 분노하며 그녀와 충돌한다. 그녀는 신부에게 아이를 유혹했으니 고백하고 사임하라고 하고, 신부는 그녀의 음해라며 진보적 교육과 친근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 신부가 된 자신을 근거 없이 의심한다며 맞선다. 그녀는 신부의 전직 교구에 있는 수녀들에게 그의 과거 행동을 알아봤다고 하고, 그는 교구장에게 의문을 제기해야 하는 절차를 무시하고 그녀가 직접 뒤로 그의 행동을 캐고 다닐 권리는 없다고 반박한다.

 

결국 신부는 학교를 떠난다. 미사에서 그는 “뒤에서 갑자기 바람이 불어서 사람들은 이리저리 밀려가게 되지만 사람들은 그것의 의미도 모르고 조절할 능력도 없다”는 강론을 하며 작별 인사를 한다.

눈이 온 마당 벤치에 앉은 알로이시스에게 제임스가 다가와, 그녀는 신부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교장 수녀는 그를 쫓아내서 좋겠지만 자신은 이제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한다.

그때 알로이시스가 눈물을 흘리며 자신도 이제 스스로를 의심한다고 한다.

     



미사의 강론에서 플린 신부는 한 우화를 소개한다.

“한 여자가 잘 모르는 남자에 대해 소문을 말하고 다닌다. 그날 밤 꿈에서 큰 손이 나타나 그녀를 가리킨다. 죄책감에 신부를 찾아가서 고해를 하며 소문을 말하는 것도 죄가 되냐며 그 손이 하느님 손이냐고 하자, 신부는 그렇다며 무식한 여인이 그의 명예를 더럽혔다며 부끄러운 행동에 대한 보속으로 지붕에 올라가 깃털베개를 찢은 뒤 깃털을 날리라고 하였다. 그런 다음 돌아다니며 날아간 깃털들을 남김없이 찾아오라고 하였다. 퍼져나간 깃털들이 바로 소문과도 같다.”


여기서 무식한 여인에 해당되는 수녀 알로이시스는 원래 자신과 다른 종류의 인간인 신부를 싫어한다. 신앙인이라면 원칙을 지켜야 하고 금욕적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그녀는, 신부가 단것을 좋아하고 손톱을 짧게 자르지 않으며 펜이 아닌 간편한 볼펜을 쓰는 것부터가 못마땅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앞뒤 맥락도 없이 보게 된 소년이 신부의 손을 뿌리치는 장면을, 그가 소년들을 성적으로 좋아한다는 믿음과 결부시켰다. 그러다가 제임스 수녀가 도널드라는 흑인학생과 신부가 단독면담을 했다고 이야기하자 이것이 신부의 성향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반증을 해도 알로이시스의 확신을 바꿀 수는 없다. 물론 이것을 단순하게 매도할 수 없는 것은, 실제 교회 사회의 여러 사례들로 볼 수 있듯이 성직자의 성범죄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신부 플린은 교회가 중세의 원칙을 고수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그는 자신의 임무 중 제일 중요한 것은 미숙한 신도들을 자비심으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사사건건 교장 수녀와 부딪칠 수밖에 없다. 이 영화만으로는 그가 성적으로 어떤 성향인지, 실제 부적절한 행동을 했는지, 과거에 어떤 과오를 저질렀는지를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 그가 지향하는 바는 상처받고 기댈 곳 없는 학생을 감싸서 살아갈 수 있게 돕겠다는 것이다.     

젊은 수녀 제임스는 가운데에서 편견 없이 양쪽을 바라보는 관객의 대표 같은 존재이다.

그녀는 자신의 의심이 신부를 위기로 몰아서 떠나게 만들었다는 괴로움으로 잠도 못 이루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의 문제 제기는 합리적이다. 그녀가 관찰한 사실은 누구라도 이상하게 여길만 했기 때문이다. 만일 그녀가 이 사실을 눈감았다면 그것도 정직하지 못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합당한 해명과 증거가 나오면 결론을 바꾸는 이성적인 사람이다.

오히려 그녀의 순수한 문제 제기를 자신의 확증편향에 이용한 사람이 잘못이라고 볼 수 있다.

    

한 가톨릭 학교에서 벌어지는 갈등이 사회의 축소판 같이 보인다.

서로 완전히 다른 진보와 보수 진영이 서로 싫어하고 의심하고 순수한 문제 제기를 자신들이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하는 것과 똑같다.

영화는 어느 쪽이 옳다고 편들어주지 않는다.

확신에 찬 알로이시스 수녀가 도널드 엄마와 면담을 마치고 들어올 때 카메라가 높은 곳에서  그녀를 비추는 장면과 건물 안에 들어왔을 때 그녀가 있는 복도를 비스듬한 각도로 비추는 것으로, 그녀의 의견이 신과는 다를 수도 있다는 것과 그녀가 편견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수녀가 전직 교구에서 신부의 행적을 알아보았다고 협박하자 신부가 순순히 다른 교구로 전직하는 것으로 볼 때 그가 과거에 큰 과오를 저질렀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가 교장 수녀와의 대화에서 “우리는 둘 다 대죄를 저지르고 고백하고 회개한, 같은 종류의 사람”이라는 말을 하는데, 인간이란 다 죄인이지만 진심으로 반성하면 달라질 수 있는 존재라는 의미가 읽힌다.

중도를 보여주는 제임스의 자세와 입장이 보통사람들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녀는 의심이 들면 문제를 제기하고 편견 없이 증거로 판단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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