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병옥 Feb 22. 2024

나만을 위한 식탁을 차렸다

스스로를 대접하기

    

결혼 전에는 제대로 음식을 만들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저 학교 다니고 직장 다니면서 엄마가 차려주시는 밥상을 생각 없이 받았었다.

결혼을 하니 내가 어떻게든 요리를 해야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엉터리여서 남편이 아무 불평 없이 먹은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엄마가 되고는 아이들에게는 영양가 있고 맛있는 음식을 먹이려고 노력했다. 요리책도 보면서 음식을 배웠고 이제는 가족 입맛에 맞을 정도의 음식을 하기는 한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다. 평소에는 가족의 입맛에만 맞추게 되고, 생일이나 손님을 초대했을 때도 오시는 분들의 취향을 고려하게 되니, 내가 요리는 하지만 나의 취향이나 입맛은 언제나 뒷전이었다. 심지어 손님 많을 때는 할 일이 많으니 오시기 전에 아무거나 컵라면 같은 것을 먼저 먹고 일을 하기도 했다.

양가 노부모님 계실 때는 더했다. 시어머니가 오시면 어머니 좋아하시는 음식을 봐두었다가 고민해서 해드렸고, 친정에 갈 때도 부모님 좋아하시는 음식을 만들어가거나 사서 가져갔다. 연세가 많아지시면서 맵거나 단단하거나 질긴 음식은 피해야 했다.

어른들을 모시고 외식을 해도 갈 수 있는 음식점은 한계가 있었고, 어쩌다가 뷔페식당에 가게 되면 그분들께 음식을 가져다 드리느라 나는 거의 먹지도 못하고 올 때도 많았다.(유교적인 어른들은 스스로 음식을 가지러 가는 것을 창피하게 여기셨다.) 나중에는 지쳐서 어른들 모시고는 뷔페식당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어릴 때 친정엄마는 음식도 잘하시고 도시락도 정성껏 싸주셨다. 또 가끔씩은 막내인 나만 좋아하는 음식을 둘만 있을 때 해주시기도 하셨었다. 또 내가 어린 아들들 먹이느라 바빠서 밥도 잘 못 먹을 때 안타까워하시며 너부터 먹으라고 말씀하시던 유일한 분이었다. 그러나 엄마가 연세가 아주 많아지시니 부모님 댁에 가서 식사할 때 엄마 아버지 시중드느라 나중에야 겨우 수저를 들었는데도 엄마가 계속 이것저것 심부름을 시키셔서 앉아서 식사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세월이 유일한 마지막 내 편을 빼앗아 간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채소를 좋아한다. 물론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그러나 지방이 적은 좋은 고기를 채소와 곁들여 조금만 먹는 걸 좋아한다. 돼지고기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남편과 아들들은 고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찌개와 나물과 밑반찬만 식탁에 올려져 있으면 메인 고기 요리가 나오겠지 생각하면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할 수 없이 고기 요리를 자주 한다.

요리를 하는 것은 재미있기도 하고 보람된 일이지만 지겹고 힘들기도 하다. 그래서 가끔 식구들이 저녁을 먹고 오게 돼서 나 혼자만 밥을 먹게 될 경우 아무 요리도 하고 싶지 않다. 그런 날은 거의 라면을 먹거나, 있는 반찬에 밥을 비벼서 대충 먹을 때가 많았다. 그럴때는 탄수화물만 많이 먹게 되어서 컨디션이 안 좋을 때가 많다. 또 내가 스스로를 너무 하찮게 대접한다는 생각도 들어 씁쓸하기도 하다.

     

얼마 전 아들도 회사에서 늦게 오고 남편도 친구를 만나서 저녁을 먹고 온다고 했다.

갑자기 내 취향에 맞는 나만의 저녁을 제대로 만들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 샐러드 야채와 토마토, 오이, 파프리카, 단감, 사과를 손질해서 고 올리브유와 발사믹 비네거를 듬뿍 뿌렸다. 단백질도 빠지면 안 되니 고기 대신 두부를 노릇하게 부쳐서 나만을 위한 저녁상을 차렸다.

항상 다른 누군가를 위한 음식만 만들다가 오랜만에 나를 위한 밥상을 차린 것에 의미를 두었다. 차려놓고 천천히 먹으니 너무 맛있다. 내가 나를 위하지 않으면 누가 대신 나를 챙길 것인가. 돌아가신 시어머니도 젊을 때 가족들 좋아하는 음식은 늘 양보하시고 남은 음식은 아까워서 드시면서 사셨는데, 연세가 많아지고 솔직해지시니 밥상에서 좋아하시는 음식만 편식하셨었다. 노년이 되어서 역할에 충실한 페르소나를 벗으니 나타난 무의식의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가족을 위한 요리는 계속하겠지만 이제는 거기에 숟가락 하나 더 얹어서 그냥 먹지는 않으려고 한다. 내 취향의 음식도 같이 만들어서 먹어야겠다.

혼자 먹는 저녁, 그까짓 샐러드 하나 만들어서 먹으면서 이렇게 의미 부여하며 감동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이 디어 에너미(My Dear Enem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