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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May 02. 2024

영화<칠드런 액트>-처진 어깨에 손을 얹어준 사람

그녀는 왜 소년에게 관심을 가졌을까?

     

피오나는 영국 런던에서 아동에 관련된 재판을 담당하는 판사이다.

그녀는 아동의 생명과 이익에 부합하는 판결을 내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다.

매일 재판 관련 서류 더미를 살펴보느라 집에 와서도 일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그러던 중 여호와의 증인 가정의 소년이 백혈병에 걸려서 수혈이 필요한데 거부하고, 이에 병원은 법정에 치료할 권리를 요청한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피오나는 집에서 재판 관련 서류를 들여다보고, 남편 잭이 주말에 테니스를 같이 치자고 하는 말을 흘려듣는다. 샴쌍둥이를 그냥 두면 둘 다 죽고 수술을 하면 한 아이는 살릴 수 있는 문제에 대해 판결을 내려야 해서 온정신을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랜 고민 끝에 그녀는 수술을 해서 한 명이라도 살리는 쪽으로 판결을 내린다. 부모는 법정이 살인을 허가했다고 비난하고 매스컴에서도 찬반 논쟁이 불붙는다.

    

한편 남편은 20년에 가까운 결혼생활에서 그녀를 이해하고 바쁜 아내를 위해 자녀를 갖지도 않았는데 아내는 바쁘다는 이유로 그에게 관심이 없자, 결국 그는 같은 대학에 근무하는 나이 어린 여교수와 바람을 피우겠다고 경고한다. 그는 부부란 남매가 아니라며 관심이 없는 그녀를 비난한다. 피오나는 예상치 못한 남편의 선언에 결혼은 신뢰의 문제라며 집을 나가라고 하고, 그는 떠나지만 이틀 뒤 그녀를 사랑한다며 다시 돌아온다.

     

같은 시기에 여호와의 증인 가정의 17세 소년인 애덤이 백혈병에 걸렸는데 수혈을 거부해서 죽어가는 일이 생기고 병원이 재판을 의뢰한다. 부모는 종교적으로 피는 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이도 똑같이 생각한다는 것이다. 급성 질환이라 며칠 이내에 결정을 해야 하는 사안이어서 양쪽의 의견을 듣던 피오나는 직접 병원에 가서 소년의 이야기를 듣고 결정하기로 한다.

애덤은 판사를 보고 그녀가 올 줄 알았다며 기뻐하지만, 수혈을 받아서 오염되고 싶지는 않다며 그냥 죽겠다고 한다. 그녀는 애덤에게 빨리 죽을 수도 있지만 시력을 상실하거나 뇌손상이 되거나 신장이 망가진 상태로 오래 생명을 유지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그런 일을 예상하지 못했던 소년은 당황하며 그런 상태를 원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피오나가 병실을 떠나기 전 그곳에 있던 애덤의 기타를 주며 연주해 보라고 하고 그가 아일랜드 민요를 연주하자 그녀는 기타 반주에 맞추어 예이츠의 시 ‘샐리 가든’을 노래한다. 그는 노래를 듣고 감동한다.

법정으로 돌아온 피오나는 법정은 아동법에 따라 아동의 복지를 제일 먼저 고려해야 한다며, 소년에게 다가올 삶과 사랑을 위해 그는 종교와 미숙한 자아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므로 수혈을 포함한 병원이 하는 모든 치료는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린다.

    

수혈을 받은 애덤은 회복하고 피오나에게 계속 음성 메시지를 보내지만 그녀는 소년을 부추기고 싶지 않아서 답장하지 않는다. 그러자 그는 출근길의 피오나를 따라와서 자신이 쓴 시와 편지를 전하며 함께 배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하며 그녀와 대화하고 싶은 게 자신의 꿈이라고 한다. 피오나는 그 사건은 이미 끝났다며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고 선을 긋는다.

다른 도시로 순회재판을 가는 행사가 있어서 피오나는 기차를 타고 가방에 있던 애덤의 편지를 읽어본다. 그는 그녀의 영향으로 예이츠의 시를 좋아하게 되었고 벌써 18세 성인이 되어서 이제는 자유를 얻었다고 썼다. 그곳에서 만찬을 하는 도중 애덤이 찾아와서 그녀와 함께 살고 싶다며 집안일을 돕고 집세도 내겠다고 한다. 곤란해진 피오나가 택시를 불러 그를 보내려고 하자, 애덤은 그냥 아동법에 따라 판결만 하지 왜 자신을 찾아와서 이야기하고 노래를 불러주었냐며 왜 그의 인생에 끼어들어서 자신을 변화시키고 도로 버리냐며 울며 떠난다. 얼마 후 애덤의 병은 재발되고 성인이 된 그는 수혈을 거부해서 다시 위독해진다.

연락을 받고 피오나가 호스피스 병원으로 달려가 설득하지만, 애덤은 그것이 자신의 선택이라고 하고 세상을 뜬다.

언제나 차분하던 피오나가 무너진다. 자신의 도움을 원하던 아직 어린아이를 모질게 대해서 그를 죽게 했다며 그의 인생이 너무 아깝다며 흐느낀다.

남편 잭은 옆에서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며 위로하고 그녀도 그의 손을 잡는다.

     



먼저 영화에서는 일차적으로 판사로서 피오나가 맡은 아동에 대한 이슈들이 나온다.

사회에서도 논란이 될만한 샴쌍둥이 분리 문제나, 여호와의 증인의 수혈 거부 문제 등이 나온다. 영화는 그녀가 얼마나 사심 없이 아동의 복지를 우선해서 고민하고 판결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아직은 미성년인 애덤이 종교나 부모의 영향 아래에 있지만, 그녀는 아동법을 적용해서 소년의 생명을 지킨다. 물론 법정은 도덕이나 원칙이 아니라 법을 적용하는 곳이다. 성인이 된 후에는 개인의 원칙이나 도덕대로 선택할 수 있다.

    

다음은 타인의 삶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가 있다. 애덤이 종교에 확신이 있었을 수도 있고, 또는 사춘기 소년으로서 자신이 주목받는 것을 원해서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는 수혈을 거부했었다. 피오나는 아동법에 의거해서 병원에 가지 않고도 수혈이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릴 수도 있었는데, 굳이 애덤을 만나러 갔다. 애덤이 믿던 신이나 부모가 한순간에 판사로 대치되며, 그는 피오나에게 집착한다. 그러나 공적으로 수행한 일과 사생활이 얽히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피오나가 선을 긋고 애덤을 밀어내자 그는 절망한다. 다시 백혈병이 재발할 가능성이 높았고 다시 수혈을 받아야 치료 가능성이 있지만 절망한 그는 그것을 거부한다. 성인이 된 그는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생긴 것이다. 그는 더이상 살고 싶지 않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 걸어 들어와 놓고 자신을 버린 피오나를 원망하며 세상을 뜬다.

    

마지막으로 판사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피오나가 있다. 현재 그녀의 인생에는 일만 있다. 이해심 많은 남편과 결혼했고 한때는 그의 사랑과 관심에 감동하고 행복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남편은  같은 집에서 살 뿐 부부관계도 하지 않고 관심도 없는 동거인일 뿐이다. 집에서도 재판 서류를 들여다보느라 남편이 말을 해도 잘 듣지 못한다. 그녀는 이렇게 마음이 떠난 결혼생활을 되돌릴 방법을 찾지 못한다. 남편은 가끔씩 조카들을 돌보며 행복해하는데, 이는 남편도 자녀를 갖기를 바랐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똑똑한 아내의 커리어를 위해 자녀를 포기했고 아내의 사랑을 기다리지만 달라지지 않자 다른 여자를 만나게 되고 그제야 피오나도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때 마침 만나게 된 소년 애덤은 그녀의 마음속 순수한 충동을 나타내는 이드의 상징이다. 그는 거침없이 감정을 표현하고 같이 있고 싶어 하고 끝없이 그녀와의 대화를 원한다. 소년을 그토록 밀어낸 것은 그로 인해 그녀 마음에 숨어있던 순수한 감정이 불쑥 밀고 나오자 당황했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소년을 살리려고 그를 찾아가서 그와 함께 배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하자고 까지 말하며 살아달라고 설득한다. 그가 죽자 피오나는 그녀가 억압해서 죽인 아직 어린 그의 인생이 너무 아까워서 오열한다. 소년으로 상징되는 지금까지 자신이 억압한 순수한 감성이 경계를 뚫고 터져 나온다. 

겉으로 보면 판사 피오나가 소년의 삶을 참견하고 개입한 것 같지만 사실은 소년의 존재도 피오나의 피폐한 마음을 파헤쳐서 그녀의 순수했던 감성을 끌어내서 변화시킨다. 자신에게 무엇이 결핍되었는지를 들여다보게 해 준 소년 덕분에 그녀는 남편을 다시 보게 된다. 그의 사랑을 느끼고 자신도 사랑을 주고싶다는 마음을 되찾는다.

애덤은 피오나가 자신의 인생에 찾아와 자신의 처진 어깨에 손을 올리며 그를 구원해 주었다고 했지만, 사실은 애덤도 피오나의 처진 어깨에 손을 올려서 그녀를 구원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강가 들판에 내 사랑과 내가 서 있었네

그때 나의 처진 어깨 위에 그녀는 눈처럼 흰 손을 얹고

풀포기가 둑에서 자라듯, 쉽게 살라고 말했네

허나 나 젊고 어리석었고, 지금은 눈물이 넘치네”

     -예이츠의 시 ‘Down by the Salley Gardens’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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