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흑인으로, 돈도 아빠도 없는 가정에서 심약한 엄마와 함께, 덩치까지 작아서 괴롭힘을 당하는 어린 남자아이가 자라서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어 사랑을 찾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흑인 소년이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자기다운 모습을 발견해 가는 성장 이야기가 묵직한 감동을 준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리틀
샤이론은 지친 싱글맘과 사는 아이인데, 유난히 몸집이 작아 또래 아이들에게 늘 괴롭힘을 당한다. 방과 후 정신없이 쫓겨서 마약 거리까지 도망온 샤이론은 아무 집이나 빈집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숨는다. 아이들은 기다리다 가고 그 집에 마약을 저장해 놓았던 후안이 와서 소년을 발견하고 여자친구 테레사의 집에 데려와 저녁도 먹이고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하지만 그는 가지 않겠다고 하고 그 집에서 잔다. 집에 가봐야 엄마는 자신에게 관심도 없으니 그 뒤로도 계속 후안에게 찾아간다. 그 아이에게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본 후안은 샤이론에게 잘해주며 거의 아빠의 역할을 한다.
학교 체육시간에 미식축구를 할 때도 샤이론은 운동에 관심이 없고 놀림만 받는데 유일하게 케빈만이 그를 ‘리틀’이라고 부르고 잘 대해주며 “당하지만 말고 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놀림받지 않아”라고 충고한다.
방과 후 후안이 바다에서 수영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해가 지자 집에 데려가 저녁을 먹는다. 자신이 어릴 때 쿠바에 살았는데 거기 어떤 할머니가 장난이 심한 자신을 보며 달빛 아래서는 흑인 아이들도 파랗게 보인다며 자기를 ‘블루’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흑인인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라며 나중에 스스로 뭐가 될지 결정해야 할 때가 올 거라며 그 결정을 남에게 맡기면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이때 샤이론은 친구들이 자신을 호모라고 부른다며 호모가 뭐냐고 묻는다. 후안이 그 말은 나쁜 말이고 게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한다. 자신이 게이인지는 때가 되면 알게 된다고 한다.
샤이론이 엄마가 마약을 하는 것 같다며 아저씨가 마약을 파냐고 묻고 후안은 그렇다고 한다.
2. 샤이론
청소년이 되면서 샤이론은 키가 훌쩍 크지만 비쩍 마르고 여전히 친구들의 놀림을 받고 있다. 방과 후 벌을 받던 케빈이 다가와 ‘샤이론’이라고 부르며 인사를 한다.
후안은 이미 죽었고 테레사는 그를 계속 보살핀다. 엄마는 약에 취해 상태가 더 나빠지고 남자친구가 오는 날이면 아들에게 자고 들어오라고 한다. 갈 데가 없어서 기차를 타고 돌아다니다가 역에서 자려고 하지만 결국 근처 바닷가 모래사장에 와서 밤바다를 바라본다. 이때 케빈이 대마초를 피우려 해변에 왔다가 그를 ‘블랙’이라고 부르며 대마초를 나누어 피우고 대화를 한다. 둘 다 바닷바람을 좋아한다고 하고 서로 장난을 치다가 전기가 통하며 키스를 하고 서로를 만진다.
다음날 학교에 온 샤이론에게 늘 그를 괴롭혔던 불량한 학생이 케빈을 부추겨서 게임을 하자며 샤이론을 때리게 만든다. 다수에게 둘러싸여 또래의 압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그를 때리게 된 케빈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그 뒤 여러 명에게 폭행을 당한 샤이론은 신체적인 상처뿐 아니라 심한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집에 돌아와 다음날 아침 얼음물에 상처 난 얼굴을 담그고 정신을 차린 샤이론은 학교에 가서 자신을 폭행하도록 사주한 불량한 학생을 의자로 내리친다. 결국 샤이론은 이 일로 소년원 감옥에 가게 된다.
3. 블랙
샤이론은 성인이 되었고 감옥에서 알고 지내던 마약상이 한 구역을 주어서 출소 후 마약을 팔게 된다. 그는 열심히 운동을 하여 근육질의 거대한 몸을 갖게 되었고, 멋진 차와 번쩍이는 장신구를 하고 있어서 누구도 그를 얕보지 못한다.
여전히 엄마의 악몽을 꾸며 잠을 잘 자지 못하지만 얼음물에 얼굴을 담그고 정신을 차린다. 엄마는 마약 재활 병원에 입소해 있고 그에게 자주 전화한다. 그가 병원을 방문했을 때 엄마는 자신은 실패했지만 아들에게는 그렇게 살지 말라고, 그를 사랑한다고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그는 엄마의 사과를 받아들인다.
어느 날 케빈에게서도 그때 그를 때린 일을 사과한다고, 자신이 요리사가 되었으니 한번 들르라는 전화가 오고 샤이론은 케빈을 찾아간다. 그가 자신을 잊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샤이론의 가슴이 뛴다. 그도 감옥에 갔다 왔고 이제는 결혼해서 아들도 있다며 사진을 보여준다.
케빈은 집에 함께 간 샤이론에게 “너는 누구냐?”라고 묻는다. 샤이론은 “나는 나야. 나는 나답게 살고 있어”라고 대답한다. 케빈은 자신은 남들 말만 듣고 살았다고, 후회한다고 한다.
샤이론은 용기를 내어 그때 이후에 케빈 이외에 다른 사람은 만난 적 없다고 고백하고, 둘은 바라보다가 나란히 앉아 어깨를 감싸고 서로에게 기댄다.
돌이켜 보면 소년이 살아남아 성인이 된 것이 기적이라고 여겨질 만큼 샤이론의 물리적 심리적 환경은 열악하다.
아이는 흑인이고, 아버지도 없고 엄마는 마약 중독자여서 자기 한 몸 건사하기도 어려운 사람이었다. 엄마가 제대로 돈을 벌지도 못하니 돈도 없다.
또래에 비해 지나치게 작아서 친구들의 괴롭힘을 받고, 거기에다 아이들은 어린 그에게 걸음걸이를 문제 삼으며 동성애자 딱지를 붙인다. 물론 태어날 때부터 성적인 정체성은 정해졌을 수도 있지만, 자신도 아직 깨닫지 못한 영역에 그 시대에 금기시되던 딱지를 붙여서 그를 힘들게 한다.
젊은 나이에 남편이 떠나고 아들을 키우게 된 엄마도 힘들었겠지만, 그녀는 엄마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아들을 보살피지도 못하고 자신은 마약에 중독되어 망가진다.
천만다행인 것은 후안이라는 남자와 여자친구가 샤이론의 유사 부모 역할을 해준 것이다. 후안은 샤이론의 인생에 롤모델이 되고 그가 살아남을 수 있게 해 준 인물이다. 그는 샤이론이 수치심을 갖지 않고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찾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그가 좋은 인물인 것만은 아닌 것이, 그는 결과적으로 엄마에게 마약을 팔아 엄마를 망친 인간이기도 하다. 결국 위험한 마약세계에서 일을 하다가 일찍 죽는데, 이는 그가 샤이론의 청소년기까지 보호해주지는 못한다는 의미이다. 그때부터 샤이론은 세상에 혼자 맞서다가 결국 감옥에 가게 된다.
감옥에서 나온 샤이론은 약해 보이면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당한다는 교훈을 어릴 때부터 얻었기 때문에 기를 쓰고 몸을 키운다. 또 자신의 성적인 정체성을 절대 외부에 밝히지 않고 오히려 센 캐릭터를 고수한다. 그리고 원치는 않았지만 결국 후안과 같은 마약 판매상이 된다.
이처럼 외부에는 단단한 보호막을 씌웠지만 내면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엄마의 악몽을 꾸며 과거 불량한 학생에게 복수했을 때처럼 아침마다 얼음물에 얼굴을 담가 정신을 차린다.
그가 잊지 못하는 단 한 사람은 어릴 적 친구 케빈이다. 영화가 3부로 나뉘고 거기에 나오는 소제목은 다 케빈이 그 시절 그를 불러주었던 이름이나 별명이다. 그 정도로 케빈이 그를 어떻게 보는가가 주인공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와 첫 키스를 했을 때가 샤이론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게 되는 중요한 시점이다.
물론 케빈도 여자와 연애를 하고 결혼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게이일 것이다. 그 시절 게이에 대한 안 좋은 시선 때문에 마음을 억압하고 결혼도 했겠지만 결국 그도 나중에는 게이임을 인정하게 된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고 돌고 돌아 그들은 다시 만나고 스스로를 인정하고 사랑을 받아들이고 서로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사회에서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단 하나의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면서 살기로 결정한다.
흑인이든 게이이든 마약상이든 다 인간이다. 영화에서는 그 말을 돌려서 “달빛 아래서는 누구나 파랗게 보인다.”라는 문장으로 표현한다. 모두를 감싸는 달빛 아래에서는 사람들의 차이가 사라지고 모두 아름답다. 달빛 아래서 바다를 보고 서 있던 파란 ‘리틀’이 고개를 돌려 우리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