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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Jun 13. 2024

영화<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새로운 형태의 종말

정보가 없어진 세계

     

종말에 관한 수많은 영화가 있다.

그 원인도 다양한데 주로 소행성의 충돌, 외계인의 침공, 자연재해, 핵을 이용한 전쟁 등이 주를 이룬다. 여기에 요즘은 AI가 인간의 지능을 추월해서 벌어지는 일이 추가되었다.

이번 영화는 결을 조금 달리해서 흥미롭다. 첨단 기기로 늘 정보를 접해야만 사는 현대인이 그것을 빼앗겼을 때 어떤 심리적 공황 상태와 무질서로 인한 혼란이 벌어질지를 나름 실감 나게 보여준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빠는 문학 교수이고, 엄마는 기업에서 고객을 파악하는 부서에서 일을 하고, 아들과 딸을 하나씩 둔 가정이 있다. 그들은 대도시 뉴욕에 살고 있는데 엄마가 너무 예민해지고 지쳐서 가족과 함께 교외의 해변에 있는 주택을 며칠 빌려서 쉬기로 하고 그 집으로 떠난다.

 

1.하우스-집은 건축적으로도 멋지고 풀장도 갖추고 있고 비싼 그림들도 많아서 예술적 취향을 가진 엄마 아만다는 만족한다. 짐을 푼 그들은 해변가에 가서 쉬기로 하는데 커다란 유조선이 점차 해변으로 다가온다. 처음에는 비켜갈 것으로 생각했지만 결국 해변을 덮치고 그들은 황급히 피신한다. 항법 시스템 오류로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집으로 돌아왔으나 TV는 먹통이 되고 전화 통화도 되지 않는다. 딸 로지는 좋아하는 시트콤 ‘프렌즈’의 결말을 앞두고 스트리밍이 중단되어 보지 못하자 계속 불평을 한다.

그날 밤 집주인 조지가 딸과 함께 찾아와서 뉴욕의 아파트로 가는 중 도시에 정전이 일어나 할 수 없이 교외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고 말하며 같이 지내자고 한다. 모르는 사람과 지내는 것이 불편한 아만다는 내키지는 않지만 렌트비의 반을 돌려받고 그들에게 지하공간을 내어준다.


2.그래프- 로즈가 풀장에 있을 때 사슴 떼가 뒷마당 주변에 몰려오고 티브이에는 잠깐 미 동부 해안지대에 정전이 발생했다는 긴급뉴스가 떴다가 사라진다. 남편 클레이는 무슨 일인지 차를 타고 나가서 알아보겠다고 하고 나가는데 내비게이션이 작동하지 않아 길을 잃는다.

조지도 이웃에 가보지만 집은 비어있고 근처 해변에 비행기들이 추락한 잔해가 보이고 그때 한 비행기가 바로 그의 눈앞에서 추락한다. 그가 하는 일은 그래프의 패턴을 읽는 일로, 그 일을 통해 미래를 예측해 왔다. 그는 뭔가 불길한 일이 진행되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로지와 오빠와 사슴을 찾아보겠다며 숲으로 들어갔다가 오빠가 진드기에 물린다.


3.굉음-초음속 비행기가 음속을 돌파할 때 나는 소리 같은 알 수 없는 굉음이 들리고, 모두 귀를 막고 괴로워한다. 위험을 감지한 엄마 아만다는 뉴저지에 있는 언니네로 가겠다고 하고, 주인 조지가 말리지만 그들은 차를 타고 떠난다. 고속도로를 타기 위해 교차로에 접근했을 때 수많은 차들이 밀려 엉켜있는 것이 보인다. 무인 자동차들이 모두 교차로에 몰려와 계속 추돌해서 진입로를 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 뒤로도 계속 무인 자동차들이 몰려오자 그들은 황급히 차를 돌려 다시 그 집으로 돌아온다.


4.홍수-조지를 경계하던 사만다가 그에게 사과하고 대화를 나눈다. 조지는 자신이 관리하는 유력 정치인이나 사업가가 많은데 그들이 전날 거금을 빼갔다며, 위기를 느껴서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과거의 위기는 독재자나 지도자가 그것을 조종해서 일어난 것이지만 지금의 위기는 누구도 이 모든 것을 조종할 수가 없고 권력자도 다만 정보를 빨리 접할 뿐이라는 것이다. 즉, 밀려오는 위기를 막을 길은 없다는 것이다.

‘프렌즈’의 결말에 집착하는 동생 로즈는 오빠에게 세상에 희망이 없다 해도 드라마가 그녀를 행복하게 한다며 자신에게는 그것이 꼭 필요하다고 한다. 로지는 홍수가 났을 때 구원을 무조건 기다리고 기도해 봐야 소용없다며, 구명보트를 타는 등 각자가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고 한다.

진드기에 물렸던 오빠는 열이 나며 입에서 피가 나고 이가 빠지기 시작한다. 약이 필요해진 아빠 클레이와 조지는 종말을 대비해 온 이웃 인테리어 업자에게 찾아가지만 그는 차갑게 거절하는데 아빠가 아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돌려받은 거액의 렌트비를 건네자 그가 겨우 항생제를 준다.

숲으로 사라진 로지를 찾으러 아만다는 조지의 딸 루스와 함께 간다. 그동안 루스에게 쌀쌀맞게 대하던 그녀는 엄마를 잃은 루스가 슬퍼하자 그녀를 위로하며 사슴 떼가 공격할 때 그녀를 보호하며 감싼다. 그때 저 멀리 보이는 뉴욕에서 폭탄이 터지며 불이 나고 그들은 함께 멍하니 그것을 바라본다.

조지는 자신이 제일 두려워하던 일이 일어났다며 한 나라를 무너뜨리는 작전이 있는데 첫 번째 단계가 고립 작전으로 통신과 교통을 마비시키는 일이라고 한다. 그 뒤는 자동으로 대중에게 공포가 생기고 내란과 쿠데타가 일어나며 그 사회는 저절로 붕괴된다고 한다.

     

숲으로 들어간 로지는 숲 속에서 큰 집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지하 벙커를 찾는다. 그 안에는 발전기를 비롯해서 수년간 먹을 수 있는 통조림과 식용 채소를 키울 수 있는 실내 정원과 과거 방식으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LP, 비디오테이프등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녀는 거기서 그토록 찾던 ‘프렌즈’의 마지막 회 비디오테이프를 찾아 플레이어에 꽂는다. 익숙한 OST “I’ll be there for you”가 흘러나오며 로지가 비로소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이 영화는 단순하게 보면 과학이 발달하여 생긴 AI가 인간을 지배하는 영화와 비슷하게 보일 수 있지만, 인공지능이 인간을 직접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가 차단되고 교란된 환경에서 인간 스스로가 혼란에 빠져 멸망하는 새로운 플롯의 스토리라고 볼 수 있다.

자동 운행 장치는 사람이 조작하지 않아도 움직이게 하는 극도의 편리함이 있지만 영화에서는 그것이 통제 불능이 될 때 어떤 사태가 생기는지  섬뜩하게 보여준다. 자동항법장치를 장착한 유조선도, 비행기도, 자동차도 신호를 교란하면 아무 데나, 혹은 나쁜 사람이 의도하는 곳으로 가서 처박히게 되는 것이다.

내비가 작동하지 않자 아빠는 길을 잃고, 개인이 저장장치를 소장하지 않아도 언제나 편리하게 스트리밍을 통해 모든 콘텐츠에 접속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통신이 마비되자 졸지에 아무것도 즐길 수 없는 상태가 된다.

통신과 교통이 마비되자 사회는 카오스 상태에 빠지고 폭동이 일어나서 내분상황이 되며 무너진다. 대도시의 고층 아파트는 정전 사태나 통신 불능상태가 되었을 때 생활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집주인 조지는 현명하게도 교외의 주택으로 돌아온 것이다.

     

아만다가 하는일은 고객의 심리를 파악해서 그들을 교묘하게 속여서 기만하는 일이다. 이런 일을 하는데 질려서 그녀는 사람을 기피한다. 그러다가 위기상황이 오자 타인인 조지의 딸을 품으며 사람들과의 연대만이 세상을 살만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는다.

선지자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딸 로지의 행동과 말이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일 것이다. 세상이 끝나고 더 이상 희망이 없다 해도 사람들은 이야기를 듣고 싶고 작품 속의 캐릭터들을 소중하게 생각할 것이라는 말이다.

편리한 기기들이 없을 때도 사람들은 잘 살아왔고 그들의 이야기를 말로, 또는 글로, 영상으로 남겨왔다. 만일 스트리밍이 없어진다면 그전 세대들처럼 비디오 테이프이나 LP나 카세트 테이프가 그 역할을 할 것이고, 그런 기기도 쓸 수 없게 된다면 책으로 된 글이나 만화가 사람들을 위로할 것이며, 그마저 없더라도 사람들은 모여서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듣거나 가정에서 할머니가 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살 것이다.

로지는 '프렌즈' 마지막 회에서 로스와 레이첼이 다시 재결합하는 장면을 보면서 행복했을 것이다.

세상 또는 편리함의 종말이 왔을 때 과연 사람들에게 무엇이 남을까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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