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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May 07. 2022

영화<하울의 움직이는 성>-할머니가 된 소녀

너무 일찍 철든 소녀  

    

어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재혼한 아버지마저 일찍 돌아가신 소녀가 있다.

새어머니는 아름답고 이복 자매들도 예쁘고 자유롭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다른 가족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러 떠났지만 그녀는 아버지의 구닥다리 모자가게를 이어받고 묵묵히 그 일을 수행한다. 그녀는 자신이 예쁘지 않고 매력도 없다고 생각한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모자가게에서 하루 종일 일하던 소피는 직원들이 퇴근하며 놀러 나가자고 해도 거절하고 계속 일을 한다. 일이 끝난 후 그녀는 도심의 과자가게에서 일하는 동생을 만나기 위해 외출한다. 화려한 퍼레이드가 펼쳐지는 도시의 대로를 피해 후미진 골목길로 가던 중 불량스러운 군인들이 나타나 소피를 희롱한다. 이때 마법사 하울이 나타나 그들을 혼내주고 그녀를 구출하여 하늘로 올라가 손잡고 왈츠 음악에 맞추어 춤추듯 공중에서 걸어서 동생의 가게까지 데려다준다.

늘 남자들에게 둘러싸이고 이성에게 인기가 많은 아름다운 여동생은 소피에게 자유롭게 언니의 삶을 살라고 충고한다.

   

동생을 만나고 모자가게로 돌아온 후 마음이 뒤숭숭한 소피가 문을 잠그고 뒷정리를 하고 있을 때, 늙었지만 매우 화려하고 뚱뚱한 황야의 마녀가 등장한다. 어떻게 들어왔는지 의아해하고 있을 때 마녀는 소피네 가게의 모자가 초라하고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혹평한다. 화가 난 소피가 당장 나가라고 소리치자 마녀는 소피에게 저주를 내리고 나간다.

소피가 받은 저주는 18세의 소녀가 90세의 노파가 되는 것이었다. 자고 일어난 다음날 아침에도 자신이 여전히 노파의 모습을 지닌 것을 확인한 소피는 가게에 더 이상 머물 수 없음을 깨닫고 먼 길을 떠난다.

      

한참을 걸은 후 쉴 곳을 찾던 소피는 하울이 산다는 움직이는 성을 발견하고 들어간다. 그곳에는 주인 하울, 성을 움직이는 동력이 되는 마법의 불꽃 캘시퍼, 하울의 제자 꼬마 마르클이 살고 있었고 거기서 소피는 집을 청소하면서 함께 지내기로 한다.

그 집은 세팅에 따라 공간의 순간 이동이 가능한 마법의 성이고 주인인 하울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막기 위해 나갔다가 지치고 흉측한 모습이 되어 돌아오고는 한다. 하울의 아름다운 금발 머리는 소피가 하울의 방을 청소하고 염색약을 치운 후에 흑발로 변해 하울의 짜증을 유발한다.

     

왕국의 마법사 설리먼의 호출을 받은 하울은 소피에게 엄마인 척하고 대신 가달라고 부탁하고 이를 수락한 소피는 설리먼과 대면한다. 설리먼은 마녀와 하울 모두 자신의 제자였으나 욕망과 자기 중심성 때문에 악의 세력으로 빠졌다고 비난하지만, 소피는 하울을 강하게 변호한다. 함께 호출된 황야의 마녀는 이 과정에서 마법을 상실하여 힘을 잃고 소피를 따라 움직이는 성으로 들어온다.


약해진 하울을 구하기 위해 소피는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게 되고, 어릴 때 별똥별에서 나온 악마의 불꽃 캘시퍼가 하울에게 들어와 심장 역할을 하며 하울을 특별하게 만들었고, 과거부터 하울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소피를 사랑하는 하울이 자신에게만 집중되었던 에너지를 소피를 위해 쓰게 된 후 저주가 풀리게 되고 설리먼은 하울이 벌이던 전쟁을 끝낸다.

동시에 저주가 풀린 소피도 자기의 나이로 돌아와 아름답고 당당한 숙녀로 우뚝 선다.



자신감을 잃어 스스로에게 솔직할 수 없고, 장녀로서의 의무감에만 사로잡힌 소녀는 그야말로 ‘애늙은이’이다. 겉모습과 상관없이 90대의 마음을 가진 여성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나이의 소녀가 가질 수 있는 화려한 치장, 이성에의 호기심 등의 욕망을 과도하게 억압한 나머지, 화려한 동생 레티나와 과도한 욕망과 힘을 가진 황야의 마녀로 비유되는 ‘그림자’를 가지게 된다. 더 이상 책임감 있는 장녀라는 ‘페르소나’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지점에서 그녀는 90대의 노파가 되어 마음의 탐색을 떠난다.

     

소피와 하울의 로맨스 영화라 불릴 정도로 달콤한 겉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하울은 심리학적으로 그녀의 마음에서 남성성을 의미하는 ‘아니무스’이다. 설리만의 휘하에 있는 수많은 똑같은 소년에 불과했던 하울이 강렬한 불꽃 캘시퍼의 에너지로 특별해진다. 그러나 그 에너지는 소피와 연결되지 못하고 독립적이며 어둡고 자기중심적이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전지적 시점의 설리먼은 심리적으로 보자면 소피의 ‘자기’이다. 그녀는 하울의 막강한 힘이 혼자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소피와 하울에게 많은 시련과 과제를 주어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도록 만드는 존재이다. 설리먼은 소피를 만났을 때 그녀와 하울이 서로 사랑하는 것을 확인한다. 즉, 소피와 하울이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한다. 그러면서 드디어 하울이 치르는 전쟁을 끝내준다. 난관을 하나씩 헤쳐 나갈 때마다 소피도 점점 자신다워지면서 나이가 젊어지기도 다시 늙어지기도 한다.     

소피가 자신의 욕망을 인정하게 되면서 황야의 마녀의 힘은 상대적으로 약해진다. 심지어 둘이 같이 살며 소피가 마녀를 보살피기까지 한다. 이것은 소피가 자신의 욕망을 더 이상 억압하지 않고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캘시퍼의 힘도 길들여지며 필요한 곳의 동력으로 적절히 쓰이게 된다.

하울은 염색을 벗고 본래의 머리색을 찾게 되고 자신이 아닌 소피를 위해 그의 에너지를 쓰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보이는 소피의 젊어진 얼굴과 당당한 자세는 그녀가 자신을 찾았음을, 여전히 하얀 머리는 그녀가 순례의 길에서 지혜를 얻었음을 상징한다.

이제 여러 캐릭터들이 각자 제자리에서 역할을 찾게 되어 재정비된 움직이는 성을 고 소피는 여전히 계속 여행을 한다.  

   

소피와 하울이 처음 만나 하늘에서 손을 잡고 왈츠에 맞추어 걸어가는 장면은 여성성과 남성성이 화합할 때 얼마나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영화 최고의 명장면이다. 물론 이때 흐르는 영화 음악 '인생의 회전목마'도 한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애늙은이 소녀가 자신의 나이를 되찾고 진실한 인생을 살게 되는 손꼽을 만한 멋진 성장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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