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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Mar 07. 2022

영화<500일의 썸머>-썸머는 왜 떠났을까

성인이 되기위한 통과의례

이영화는 시작하는 장면에서 특정 대상을 염두에 두고 만들지 않았다는 조크로 운을 뗀다.

여기서 하는 이야기와 그 아무개 나쁜년과는 아무 상관 없다고...

영화를 보면서 자신의 과거 젊은 시절 연애에서 특정한 사람을 떠올리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이 작품은 풋풋한 시절의 실패할 수밖에 없는 첫사랑의 보편적인 패턴과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톰은 순수하고 재주는 많지만 꿈을 이루려는 의지나 뒷심은 좀 부족한 마음이 여린 청년이다.

원하는 건축회사에는 들어가지 못했고 돈은 벌어야 해서, 내용이 미리 쓰여진 축하 카드를 만드는 회사에 들어가서 카드 작가로 밥벌이를 하는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당차고 아름다운 여성 써머가 회사 대표의 조수로 들어온다. 보는 순간 첫눈에 반했지만 도도해 보이는 그녀에게 접근할 마음도 못 먹다가 전 직원이 다 참석하는 파티에서 이야기하며 친해지고 친구로 지내기로 한다. 알고 보니 그와 음악적 취향도 비슷하고 모든 점이 매력적이어서 톰은 그녀를 더 좋아하게 되고, 써머가 복사실에서 적극적으로 그에게 다가와 키스한 이후 둘은 사귀게 된다. 다른 보통의 커플들처럼 이케아 가구점에 가서 신혼부부 놀이를 하며 즐거워하고 레코드샵에 가서 비틀즈 멤버인 링고스타 이야기도 하고 극장에서 팝콘을 먹고 웃으며 데이트를 한다.

톰이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전망을 볼 수 있는 장소에 써머를 데려갔을 때, 톰이 지금의 카드회사에 만족하지 못하며 그의 원래 꿈이 건축가인 것을 아는 써머는 톰이 그 장소를 왜 좋아하는지, 그가 그곳을 어떻게 만들고 싶은지 계속 구체적인 질문을 한다.

써머와 만난 이후 톰의 기분은 끝없이 고양되어서 모든 일에 긍정적이고 행복하다. 서머가 드디어 그녀의 집으로 톰을 데려가서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주었을 때 그의 감정은 최고의 정점을 찍어서 마치 둘 사이의 경계선이 없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점차 써머는 스스로를 특별한 남자 친구로 생각하는 톰이 부담스러워지면서 그저 친한 친구로 톰을 자리매김하려고 하고 이에 둘의 사이는 전환점을 맞는다.

과거와 똑같은 장소에서 데이트를 해도 써머는 심드렁하고 영화를 보고 울기도 하더니 급기야는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고한다.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톰의 일상은 엉망이 되고, 친구들이 걱정이 되어 주선한 소개팅도 망친다. 그러다가 직장 동료의 결혼식에서 써머를 우연히 만나게 되어 좋은 시간을 갖게 되는데 톰은 일방적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지만, 써머는 이미 다른 사람과 사귀고 있었고 얼마 뒤 그와 결혼한다.

이후 톰의 생활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되어 술로 밤낮을 보내고 직장에서도 난동을 부리다가 사표를 쓴다. 오랫동안 폐인으로 지내다가 일어난 톰은 다시 건축 공부를 하고 취업 준비를 하여 건축회사 면접 장소로 간다. 그곳에서 면접을 보러온 아름다운 여성에게 호감을 느끼고 데이트 신청을 한다. 그녀의 이름은 ‘가을’이었다. 마침내 긴 여름이 끝난 것이다.



영화는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지 않고 톰의 시점에서 왔다 갔다 하며 사이가 좋았을 때와 나빴을 때를 대조하며 보여준다.

또한 친절하게도 써머를 만나고 며칠째에 어떤 일이 일어났나를 숫자로 표시해준다.

날짜를 보면서 확실한 것은 톰이 써머를 만나고 마음에서 그녀를 정리하기까지 500일이 걸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잘 보면 둘이 좋았던 시절은 불과 200일 정도이다. 그리고 250여일 정도에 술집에서 톰이 오버해서 자신이 그녀의 남자친구를 자처하며 취객과 싸운 이후 둘의 관계는 수직 하강을 한다. 그리고는 300일 조금 넘어서 써머가 이별을 통고하니까 나머지 200일 정도는 톰이 그녀를 못잊어서 괴로워했던 시간인 셈이다. 그만큼 순수한 청년 톰은 실연을 극복하기가 어려웠다.


주변에서 톰에게 감정 이입을 하는 사람들이 자연히 써머를 비난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진지하게 사귈 생각도 없이 원하는 사람을 찾을 때 까지 순진한 남자를 가지고 놀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소개팅녀의 말을 빌어서 이야기하자면, 써머는 톰과 만나면서 바람피운 적도 없고, 그를 이용한 적도 없고, 심각한 관계의 남자친구가 필요하다고 한 적도 없다. 톰이 순수한 사람이어서 편안하게 사귀어 보자고 한 것 뿐이다.

또한 그때 그녀도 톰을 진심으로 좋아했으며 여러 번 톰에게 진지한 질문을 한다. 네가 진짜 원하는 꿈은 뭐냐고. 저 땅에 어떤 건물을 짓고 싶냐고.

동료 결혼식에서 재회했을 때도 써머는 톰에게 아직도 카드회사에서 일하냐고 묻는다.

그러나 미성숙한 톰은 그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직장에 계속 다니며 그저 써머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 했을 뿐이다. 이쯤 되면 톰을 인생의 동반자로 선택할 여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 썸머는 꿈을 실현하려는 의지가 없는 남자와 미래를 함께 하고싶지 않다. 사랑에는 서로 좋아한다는 것 이상이 필요한 것이다. 옛이야기에서처럼 배우자로 낙점되려면 여러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데 톰은 여기에서 실패하는 것이다. 그녀가 말로는 결혼도 싫고 진지한 것도 싫다고 했지만 사실은 톰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한 것뿐이다. 써머는 나중에 만난 남자에게서는 톰이 갖지 못한 마지막 조각을 보았고 결국 그를 남편으로 선택한다.      

써머는 혹독하지만 미성숙한 남자에게 꼭 필요한 레슨을 준 셈이다. 써머와 같이 갔던 좋아하는 장소의 벤치에 앉아서 톰은 그녀와 상상속 대화를 하며(그시간 그장소에 그녀가 나타난 것은 그의 상상이다.) 그녀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진심으로 이별을 받아들인다. 둘이 잘 맞지 않았을 뿐이다.(톰이 아직 철들지 않았을 뿐이다.)

써머와 헤어진 후 억지로 다니던 카드 회사를 때려치운 톰은 진짜 하고 싶었던 건축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그 분야의 회사에 지원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연히 마음에 드는 여성을 만났을 때, 써머 때와는 달리 자기가 먼저 대시해서 데이트 신청을 한다.

     

사랑을 할 때는 이사람 아니면 다시는 새로운 사람을 못 만날 것 같지만 반드시 다음번 사랑은 온다. 똑똑한 톰의 여동생의 말처럼 취미가 비슷하다고 해서 운명의 짝은 아니며, 그녀와의 관계를 되짚어보면 좋은 기억뿐 아니라 나쁜 기억도 있는 것으로 보아 써머도 완벽한 여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현실에서 여성에 대해 미숙한 톰의 내면에는 동생이나 소개팅녀로 은유되는 현명한 여성성이 들어있다. 따라서 이번에 실수해도 다음 기회에 잘 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길었던 풋풋한 여름이 끝나고 성숙의 계절 가을이 오고 이제는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좋은 영화는 특별한 에피소드를 통해서 보편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스토리는 톰과 써머 대신에 다른 이름을 넣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젊은 남자의 연애 이야기이자 성장 이야기이다.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 남자의 감정 그래프의 상승 하강 곡선의 형태와, 변곡점에서의 원인이 많은 사람의 경우 비슷할 것이다. 둘의 사이가 좋을 때 주변 풍경이 화려한 칼라였다가 사이가 소원해짐에 따라 점점 흑백으로 바뀌고 완전히 헤어졌을 때 형체조차 흐려지는 것도 비슷할 것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기간은 500일보다 길 수도 짧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인생에서 진정한 운명의 짝을 만나기 위해 그 정도의 성숙의 시간은 필요한 것이 아닐까. 나이가 들었다고 저절로 성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과제를 통과하여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써머라는 단어가 여성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계절이기도 한 것은 계절은 반드시 지나간다는 의미이다. 길고 뜨겁고 괴로웠던 그 계절은 미숙한 남자가 성숙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하는 통과의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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