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뇌과학자의 시선
어떤 예술을 감상했을 때 구태여 감동을 주는 이유를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좋았다고 말하면 끝이었다. 좋은 예술을 감상하면 행복하니까 많이 감상하려고 했을 뿐이다.
그러나 학자들은 이런 당연한 경험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이런 경험은 어떤 특징을 가지는지를 논증하거나 과학적으로 증명하려고 한다.
나도 그냥 좋다고 말하는 사람 중에 하나지만, 어느 날 나의 오랜 친구인 주동률 교수가 유튜브 ‘미학 talk talk’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좋은 예술 작품이 주는 경험의 특징과 규범성-흄과 칸트의 취미론의 교훈>이라는 강연을 한다고 해서 보게 되었다. 장장 5시간에 걸친 긴 강연이었다. 모르는 철학자의 방송이었다면 절대 보지 않았겠지만 눈을 빛내며 친구의 강연을 열심히 들었다. 나 같은 문외한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대중강연은 아니었지만, 철학이라는 분야가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를 수년간 붙잡고 고민하며 그것을 논증하려는 작업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평소 과묵하고 느렸던 친구가 정확한 학문적 어휘를 사용하며 열정적으로 강연하는 것을 보고 그 친구가 진정한 철학자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메모하며 본 내용을 소화하기 위해 시간이 꽤 필요했는데, 마침 우연히 비슷한 주제를 뇌과학의 관점에서 본 다큐를 EBS에서 보게 되었다. 정재승 교수가 진행하는 <뇌로 보는 인간-예술>이라는 회차였다. 만일 그 프로그램을 먼저 보았다면 크게 기억에 남지 않았을 텐데 내가 친구의 강연에서 받은 문제를 붙잡고 씨름하고 있는 상태에서 보았기 때문에 그 연결지점을 쉽게 찾은 것 같다.
먼저, 나의 철학자 친구는 기악음악과 그림을 매우 사랑하고 조예가 깊은 사람이다. 그는 10년 전쯤 안식년으로 런던에 머물렀을 때 지인으로부터 “왜 기술적으로 완벽한 CD를 듣지 않고 구태여 비싼 음악회에 와서 음악을 듣는가? 클래식 음악을 배우고 감상하려면 많은 시간과 돈이 드는데 그럴 가치가 있는가?”하는 질문을 들었다고 한다. 거기에서부터 시작하여 그는 자신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행위인 "기악 음악을 듣는 것이 왜 좋은 미적 경험인가?"를 논증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10년 가까이 노력한다. 그의 전공답게 흄과 칸트의 ‘취미론’을 우리에게 소개하며 설명한다. 철학에 지식이 없는 내가 이 내용을 억지로 소화하고 간단하게 이해한 바를 정리하는 이유는 혹시 독자 중 관심 있는 사람이 있다면 유튜브 방송을 연결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칸트는 좋은 예술은 감상했을 때 쾌(즐거움)가 발생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개인적인 즐거움을 주면 다 좋은 작품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데,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좋은 작품이란 내적으로 맞아떨어지는 부합의 구조를 가진다고 하는데 여기서 부합이란 개인 안의 인식 능력 간의 조응, 주관과 객관의 조응, 사람들과의 조응, 주관과 대상의 조응을 다 포함한다. 즉, 개인적인 취향과는 무관하게 취미판단은 보편적인 찬동과 기준을 요구한다.
흄은 쾌보다 넓은 개념인 정감(finer emotion)이란 단어를 쓴다. 그는 칸트와 마찬가지로 좋은 예술 작품은 공통적인 내적인 특질을 갖는다고 말한다. 보통 사람들보다 예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을 진정한 판단자(true judge)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섬세한 취미를 가지고, 많은 훈련을 거쳤으며, 비교능력이 있고, 편견이 없고, 판별 능력이 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우리가 오늘날 비평가라고 부르는 사람들과 비슷한 사람들로,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비평가들의 의견을 듣고 보면 안 보이던 것들을 발견할 때가 있던 경험이 많아서 그들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었다.
흄은 좋은 예술 작품이란 좋은 정감을 불러일으키고, 납득할 수 있고 조화로우며, 여러 방식으로 이해가 가능한 작품이라고 말한다. 개인의 마음 속에서 민감하게 움직이는 작은 진동자(small spring)를 통해 예술을 잘 이해하고 높은 차원을 발견하려면 많은 경험과 교육이 필요하다.
예술 감상은 개인적 차원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에게 좋은 타산적 가치를 가진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많은 철학자들과 현인들이 훌륭한 삶이 포함하는 가치들에 대해 말했다. 그것들을 살펴보면, 세부적으로는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그중에 공통적인 가치들이 있다. 바로 지식과, 인간관계와, 미적 체험이다.
이렇듯 예술 감상(정감적 미적 체험)은 삶을 다채롭게 만들고 풍요롭게 만든다. 예술의 분야 중 문자가 들어가지 않은 분야-기악 음악, 미술 등-는 개인의 취향과는 독립적으로, 구조나 요소의 진행에 의해 정감을 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풍성한 생각을 가능케 하고, 한계를 벗어난 체험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런 경험을 통해 삶은 풍요로워진다.
과학자들도 똑같이 풍요로운 인생을 위해서 예술을 감상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노벨상을 수상한 에릭 캔델이라는 신경생리학자는 미적 경험이 도파민을 분비해서 즐거움을 주고 인생을 확대하며 더 큰 감동을 추구하게 만든다고 한다. 또한 예술은 창작자와 감상자가 쌍을 이루어서 존재한다고 한다. 작품은 누군가가 보아주어야 존재 이유가 있고 감상이 수동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행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추상 미술을 예로 들자면, 내용이 모호할수록 해석이 다양하고 흥미로워진다고 하고 이런 것이 재창조 행위라고 하였다.
에드워드 베셀이라는 뇌과학자는 사람의 뇌는 일할 때 활성화하는 영역과(task positive network), 쉴 때 활성화하는 영역이(default mode network) 다르다고 한다. 이 둘은 동시에 활성화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런데 MRI를 찍어보면 예술을 감상할 때 두 모드가 동시에 활성화하는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실제로 이때 뇌영상은 마치 춤추는 듯이 보였다. 이것은 예술을 감상하는 행위는 작품에 대한 판단이 내 삶의 성찰로 이어지는 귀한 경험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험을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때 세상과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혼자 방 안에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관이나 콘서트장에 가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조지프 핸릭이라는 인류학자는 모든 생물은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는데 오직 인간만이 생물학적 자식 이외에 또 한 가지인, 예술을 남기려는 욕구를 가진 존재라고 하였다. 인간만이 아름다움에서 기쁨을 느끼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능력을 통해 인간은 오랜 세월 번영을 누려왔다.
이렇게 예술의 체험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귀한 경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Jw6QWQN1p4&t=31s
https://www.youtube.com/watch?v=PLG07J_VyR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