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란 무엇인가?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by 윤병옥

오래 이어져 온 초등학교 친구들 모임이 있다. 가끔 이 친구들을 만나면 무장해제가 되며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모임을 주선하는 친구들의 지혜도 더해져서 요즘은 혼자라면 가기 어려운 문화 공연 관람도 기획해서 기쁨을 준다. 이번 모임에서는 세종 문화회관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를 보기로 했다. 뮤지컬 본 지가 10년도 넘은 것 같다. <위키드>를 친구랑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을 보러 갔다.

집에서 완벽한 녹음으로 만든 CD를 듣는 것보다 직접 라이브 공연을 보는 것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감동을 나누는 것이 첫번째다. 연기자의 실수에 옆 친구의 얼굴을 보며 서로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멋진 연기에는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감동할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아무리 좋은 공연도 혼자 감상하면 감동이 줄어든다.

안나 카레니나는 소설이지만 영화 발레 뮤지컬 등으로 끊임없이 변주되며 살아남은 대단한 작품이다. 나는 영화로도 여러 버전의 안나 카레니나를 보았다. 최근 작품인 키이라 나이틀리가 나온 영화는 연극처럼 구성된 고풍스러운 작품이었고, 내가 좋아하는 소피 마르소가 나왔던 영화는 그녀와 브론스키의 로맨스를 주로 그린 드라마였다. 또 기차역에서 기차를 보며 번민하는 표정을 잘 구사했던 비비안 리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소설은 큰 틀에서 레빈의 결혼과 안나의 결혼을 대비하지만, 영화나 뮤지컬의 경우는 거의 안나의 러브스토리만을 따서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소설가 김영하는 무인도에서 혼자 일생을 보낸다면 이 책을 가져가겠다고 말했다. 방대한 이 작품에 나오는 다양한 이야기나 인물들이 현대에도 계속해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1600페이지가 넘는 장편소설을 2시간짜리 뮤지컬로 압축해서 보여주려면 극적인 장면을 잘 골라 구현해야 한다. 또 배경이 기차역, 저택, 농장 등으로 다양하니 무대 장치도 잘 짜여야 한다.

이번 공연은 일단 무대 장치가 화려하고 영리했다고 생각한다. 4개의 높은 직육면체 구조물에 바퀴를 달아 서로 붙였다 떼었다 하면서 때로는 기차로, 파티장으로, 2층집으로, 때로는 거기에 LED 스크린을 장치해서 넓은 들판까지 보여주었다.

의상도 러시아 귀족사회를 엿볼 수 있을 정도로 화려했다. 댄스팀도 아주 훌륭했고 피겨 스케이팅까지도 볼 수 있었다. 오케스트라가 직접 라이브로 연주를 하니 음향도 좋았다. 연기자들도 열심히 노래했지만 일부 출연자의 고음에서 너무 지르는 듯한 발성은 실망스럽기도 했다.


공연의 클라이맥스는 극 중 안나가 그 당시 유명했던 가수 패티가 나오는 오페라 공연에 간 장면이었다. 안나가 브론스키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고 실망했을 때 패티가 불러주는 노래 ‘나의 사랑하는 이여’는 가사에서 사랑이 죽음을 불러올 것임을 예측하게 하였다. 내가 본 공연에서는 이 부분을 소프라노 강혜정이 노래했는데, 현장의 소리가 실제가 아닐 거라고 귀를 의심하게 한, 내가 들어본 것들 중 최고의 노래였다. 다른 연기자의 노래에 살짝 실망하고 있을 때 나온 이 곡을 듣고, 이 한 곡을 들은 것만으로도 이 공연을 보기를 잘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이런 멋진 경험을 친구들과 함께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소설의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너무도 유명하다. 행복에 대한 통찰로는 이만한 내용이 없다고 생각한다. 행복에 다다르려면 모든 필요조건이 다 갖춰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톨스토이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춘 행복한 가정의 본보기로 레빈과 키티가 꾸린 가정을 보여준다. 거기에 안나와 카레닌 커플, 안나와 브론스키 커플을 대비한다. 전자의 경우 부족한 것은 사랑과 열정이다. 후자의 경우 결핍된 것은 책임과 존중과 평판이다.

톨스토이의 소설 속 페르소나인 레빈은 귀족의 의존적이고 속이 빈 삶을 경멸하며 시골로 내려와 농노들과 함께 땀 흘리며 같이 농사를 짓는다.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키티와 결혼하여 자신들의 노력으로 땅을 경작하여 수확하고 가까운 사람들을 아끼며 살아간다.

반면에 아름답지만 한 번도 열정적인 감정을 맛보지 못한 안나는 겨우 18세에 지위가 높은 남편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고 화려하게 살아간다. 그러다가 우연히 기차역에서 브론스키를 만나 사랑의 열병을 앓는다. 남편은 아내가 바람난 것을 알면서도 상대에게 질투를 하기보다는 아내가 사교계에 소문이 날 정도로 부주의하게 처신해서 자신을 망신시켰다는 사실에 화를 낸다. 남편에게는 아내가 그저 허울일 뿐이기 때문이다. 안나의 일탈은 브론스키가 아니었어도 마음속에 사랑의 에너지가 너무나 억눌려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다.

생기 없이 긴 인생을 살 것인가, 불꽃같은 사랑을 하고 죽을 것인가의 선택지 앞에서 안나는 거침이 없었다. 그녀는 한편으로는 카레닌 아내의 지위를 누리며, 다른 한편으로는 몰래 브론스키와 연애하기에는 너무 순수한 존재이다

그러나 안나는 아들을 잊을 수도 없고, 여전히 화려한 파티에 멋진 옷을 입고 나가서 타인의 선망을 받기를 바란다. 사랑이 타인과 관계를 끊고 그들의 평판을 완전히 무시할 정도로 크지는 않았던 것같다. 그녀의 앞에는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다. 결국 그녀는 브론스키를 처음 만났던 그 기차역에서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진다.

행복하려면 사랑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이 충분조건은 아니다. 행복은 사랑보다 큰 개념이다. 행복에는 사랑, 존경, 책임, 자존감, 타인의 평판, 하는 일에 대한 만족 등등 여러 조건이 포함된다. 이 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그것 때문에 그 사람은 불행하다. 그래서 안나는 카레닌과도 불행했고, 브론스키와도 불행했다.

레빈과 키티 커플만 이 모든 조건을 갖추고 행복한 삶을 산다.

매거진의 이전글살림의 기본-식품 안 버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