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꿍과의 벚꽃 데이트

매번 새로운 벚꽃

by 윤병옥

봄이 오니 꽃들이 만발했다. 요즘 우리나라의 지자체는 동네 예쁘게 꾸미기에 열심이어서 어느 곳에 가도 꽃도 많고 구경거리도 많다. 출렁다리나 전망대 같은 것들은 너무 많아져서 이젠 신기한 것이 아니라 다 비슷해서 식상한 느낌도 준다. 이렇게 과도한 시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꽃이나 나무 같은 자연과 어우러지는 풍경을 만드는 것은 환영이다.

특히 자연과 떨어진 도시 주변에 벚꽃 거리를 만드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근처 회사원들도 점심을 부지런히 먹고 벚꽃 거리를 걷는다. 팝콘처럼 터지는 꽃들을 바라보며 사람들의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벚꽃 구경도 좋지만 사람들의 표정 구경도 좋다.

벚꽃은 잎이 나기 전에 꽃만 피니 온 세상을 연분홍으로 물들여서 사람을 홀린다. 여기에 바람이 불어 꽃비라도 내리면 황홀할 지경이다. 문제는 그 시기가 짧다는 것이다. 그래서 벚꽃이 피면 나처럼 외출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뛰쳐나간다. 하루라도 더 아름다운 광경을 눈에 담기 위해 노력한다. 비라도 내리면 꽃잎이 질까 봐 조마조마하다.

이참에 남편과 서로 사진도 찍어주며 석기시대였던 것처럼 기억이 가물가물한 데이트도 한다. 사느라 바빠서 마음의 여유가 없고 의무만 많았던 시절에는 못했던 데이트를 하며, 긴 시간을 함께한 오랜 짝꿍에게도 새로운 감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나이가 드니 봄에 벚꽃을 보는 것이 수십 번째이다. 어릴 때 온 가족이 과거 창경원이었던 창경궁에 벚꽃놀이를 갔었다. 벚꽃 나무 아래에 돗자리를 깔고 집에서 만든 김밥을 싸가지고 가서 꽃비를 맞으며 먹었다. 그때는 나들이를 자주 하지 않던 시절이라 이 특별한 경험이 강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이후에는 벚꽃을 보러 섬진강이나 남한강을 일부러 찾아가기도 했었다. 그러나 요즘은 동네마다 벚꽃이 많고 특별히 어디를 가지 않아도 쉽게 감상할 수 있어서 좋다. 우리 동네도 십수 년 전에 하천 옆에 심었던 아기 벚나무들이 이젠 어른 나무가 되어 꽃이 피면 하늘을 가릴 정도가 되었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항상 옥구슬 같은 소프라노의 음색으로 청량한 웃음을 웃는 맑은 영혼의 소유자다. 함께 있으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그 친구가 얼마 전 이제는 크게 소리 내어 웃을 일이 없다는 폭탄 같은 말을 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그 친구마저 소리 내지 않고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한다는 것은 인생 후반부가 그다지 재미있는 시기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 60대 후반에는 엄청 새롭고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비슷한 일들도 자세히 보면 변주가 있다. 똑같은 나무도 계절마다 모습이 다르고 해마다 자라서 다른 가지를 뻗는다.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소소한 변화와 변주를 찾아내는 기쁨도 상당하다. 일본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도 주인공은 매일 청소일을 하다가 점심시간에 코모레비 사진을 찍는데, 남이 보면 그게 그거인 수많은 사진들은 자세히 보면 계절과 그날의 바람과 구름량에 따라 디테일이 다 다르다. 배우의 표정이 압권인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매일 뜨는 태양이지만 그날의 일출은 특별하고 더 아름다웠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작년의 벚꽃과 올해의 벚꽃, 어제의 벚꽃과 오늘, 내일의 벚꽃이 다 다르게 아름답다.

손주도 매일 달라진다. 같은 아이가 매일 자라고 새로운 행동을 한다. 며느리가 보내주는 사진과 동영상을 보면서 하루하루 달라지고 성장하는 손녀를 만난다. 아기는 다양한 장난감을 만져보고 빨아보고 뺨에도 대보며 질감을 느낀다. 아들 부부는 매일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바깥세상을 보여준다. 손녀는 먼저 눈 부신 햇살을 맞고, 드넓은 하늘을 바라보고 흔들리는 나뭇잎을 신기해하며 쳐다본다. 바람이 살랑 불면 뺨에 느껴지는 신기한 감촉과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경탄의 표정을 짓는다. 그 아이는 아직 한 살이 안되었으므로 모든 경험이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것들이다. 새로운 경험을 온몸으로 흡수하며 성장하는 존재가 경이로울 지경이다.


어린 아이가 날로 성장한다면, 노년은 날로 성숙한다. 사람은 매일 달라진다. 같은 대상이라도 달라진 주체가 그것을 다르게 느낀다. 나는 책 <어린 왕자>를 셀 수 없이 많이 읽었는데 매번 다른 감정을 느꼈고, 다른 의미를 찾았었다.

노년에 이르게 되면 처음 보는 것은 당연히 거의 없다. 대신 소소한 변주에서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고, 성숙해진 내가 새로운 의미를 찾고 감탄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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