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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Jul 03. 2022

영화<이제 그만 끝낼까 해>-산다는것의 초라함과 쓸쓸함

모털의 마지막 회상

    

모든 생물은 죽는다.

그러나 그것을 아는 것은 인간뿐이다. 다른 동물은 다 현재에 산다.

괴로운 인간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앞으로 좋아질 거다, 신이 이렇게 만든 데에는 다 계획이 있었을 거다” 등등의 말로 스스로를 위로해 보려 하지만 소용이 없다.

늙은 제이크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인생을 돌아본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청년 제이크는 여자 친구 루시를 자신의 부모에게 소개하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고향으로 간다. 조수석에 앉은 루시가 마음속으로 “이제 그만 끝낼까 해”라고 생각하자 동시에 제이크가 신기하게도 “뭐라고 했어?”라고 반응하여 그들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그녀가 워즈워드의 시를 떠올리자 제이크가 동시에 그의 시를 언급하며 어린 시절의 불멸성을 이야기한다. 제이크가 그녀에게 자작시를 낭독해 달라고 하는데, <본 도그>(bone dog)라는 외로움에 관한 시를 들으며 그는 마치 자신에 대해 쓴 시 같다며 감탄한다.

그녀는 제이크를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행이 그들의 마지막 만남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녀가 가는 도중 길에서 그네를 보는데, 제이크의 어린 시절에도 집에 그네가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오는 전화를 무시하며 루시는 “다시 돌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부모님 집에 도착했는데 집에 들어가기 전에 제이크는 루시를 가축우리로 데리고 가고, 거기에는 죽은 양들과, 산채로 구더기에 먹히는 돼지가 있었다. 그는 농장의 삶은 잔인하다고 말한다.

그의 부모님과 식사를 하며 그녀가 자신은 화가이고 풍경화를 그리는데 빛과 대기의 색으로 내면을 표현한다고 하자 제이크의 아버지는 사람도 없는 풍경이 어떻게 슬플 수 있냐며 의문을 제기한다.

디저트를 먹는데 갑자기 그녀는 양자 물리학을 전공하는 과학자가 되어 있었고 그의 엄마는 아들이 말 통하는 지적인 여성을 만나서 다행이라고 한다. 둘이 만나게 된 것은 술집에서 제이크가 호감을 느낀 루시에게 대시하지 못하고 쓸데없이 어려운 말로 잘난 척만 하다가 나중에 겨우 전화번호를 물으며 데이트를 신청했을 때부터였다고 한다.

갑자기 루시의 전화로 이본느라는 여자로부터 “질문은 단 하나, 이제 대답할 시간이 왔다. 혼란스럽고 두렵다.”는 전화 메시지가 온다.

2층에 있는 어릴 적 제이크의 방으로 올라갈 때 개는 계단 앞에서 몸을 심하게 털고, 제이크는 부모 앞에서 루시를 루치아라고 부르며 그녀가 노인학 연구자라 소개한다. 그의 방에는 지미라는 이름이 쓰여있는 개의 유골함, 워즈워드의 시집,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DVD, ‘본 도그’라는 시가 펼쳐 있는 책이 있다.

방 밖으로 나가자 침대에 누워 있는 늙은 엄마에게 제이크가 음식을 먹이고 있다. 쇠약한 엄마는 창고 같은 요양원에는 가기 싫다고 말한다. 루시는 그가 헌신적으로 엄마를 보살피는 착한 아들이라고 인정해 준다. 그녀는 자신이 대화를 멈추면 이어서 제이크가 시작한다는 것을 느끼고, 자신의 임무는 그를 인정하고 살아갈 힘을 주는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화장실로 가며 그녀를 루이사라고 부르고 제이크는 그녀가 하는 일은 웨이트리스라고 한다. 다시 젊어진 엄마가 나타나 그녀에게 지하실 세탁기에 빨래를 넣어달라고 해서 내려가 보니 세탁기 안에는 학교 경비원 유니폼이 가득 들어있다. 또한 지하실에는 식사 중 이야기했던 그녀의 풍경화 습작들이 쌓여 있다.

다시 아까와 똑같은 내용의 전화 메시지가 오고 그들은 부모와 작별하고 집으로 출발한다.

    

눈보라가 치는 길을 뚫고 운전하며 제이크는 부모를 방문하여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며 성공적인 방문이었다고 자평한다. 그들은 <영향받는 여자>라는 영화의 페미니스트 주인공 메이블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제이크는 이번에는 루시를 훌륭한 영화 전문가라고 칭찬한다. 그녀의 행동과 얼굴은 한순간 영화 속 주인공의 얼굴로 바뀐다.

빨리 집에 가자고 재촉하는 루시와는 달리 제이크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렀다 가자고 우기고 그들은 결국 멈추어서 아이스크림을 사는데 예쁜 점원들은 그를 비웃으며 수군대고 그들 대신 손에 발진이 있는 수수한 점원이 아이스크림을 주며 “걱정돼요. 구태여 갈 필요 없어요. 여기 더 머물러도 돼요.”라고 말한다. 제이크는 어렵게 산 아이스크림을 너무 달다며 먹지도 않고 놔두어 차 안에서 녹아내리자, 끈적거려서 차가 더러워지니 그것을 버리고 가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말한다. 결국 그것을 버리기 위해 그들은 제이크가 다니던 고등학교 운동장으로 들어간다. 둘은 남녀의 감정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다투고, 다시 화해하며 키스한다. 이때 공중에서 낯익은 누군가가 번쩍하며 보이고 그가 그들을 지켜본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면서 제이크는 견디지 못하고 그를 찾겠다며 뛰쳐나간다. 할 수 없이 따라 나간 루시는 쓰레기통에 쌓여 있는 무수한 아이스크림 컵 더미를 발견하고, 건물 안에 들어가서 그를 찾는다. 그 안에서 그녀는 늙은 청소부를 만나고, 그는 그녀에게 춥다며 슬리퍼를 주는데 그것은 제이크의 부모님 집에서 신었던 슬리퍼와 똑같은 것이었다.

이때 갑자기 젊은 남녀 댄서가 등장하여 아름다운 춤을 추는데, 남자가 여자에게 프러포즈하는 듯한 장면에서 갑자기 나이 든 댄서가 등장하여 여자를 납치하고 따라온 젊은 댄서와 싸우다가 젊은 그를 죽인다.

청소를 끝낸 늙은 경비원은 눈 내린 운동장에 세워진 그의 트럭으로 오지만 시동을 걸지 않고 앉아 있는데, 애니메이션 아이스크림 CF 속의 여자가 차 밖에서 그에게 손짓하자 그는 옷을 모두 벗고 그녀를 따라나선다. 돼지가 앞장서면서 저기에 가면 친절이 있다며 그를 부른다.     

갑자기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시상식 장면이 나오고 늙은 제이크가 가족과 친지들의 축하를 받으며 존 내시가 했던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나는 물리적 방정식이 아니라 사랑의 방정식 안에서만 논리적 이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뒤이어 그의 시골집을 연상하게 하는 무대 장치가 나오고, 옆에서 엄마가 흔들의자에 앉아 있고 그가 노래한다. “밤이면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내가 제일 잘 나가고, 원하는 그녀와 사귈 수 있어. 하지만 해가 뜨면 모든 것이 허상이지. 이제 외로운 방에서 더 이상 그녀를 꿈꾸지 않을 거야. 나가서 그녀를 얻을 거야.”

다음날 아침, 늙은 경비원의 차는 눈이 쌓인 채 운동장에 그대로 서 있다.




자신의 동년배 친구를 보면서 자신보다 나이 들어 보인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보면 그들은 모두 비슷한 나이의 습으로 보인다. 또는 유리에 얼핏 비치는 자신의 늙은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랄 때도 있다. 거울을 보기는 하지만 늘 자신의 현재 모습을 느끼며 사는 것은 아니라서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해 갖는 이미지는 대부분 자신의 젊은 시절의 모습이다. 자기는 가만히 있고 늘 똑같은데, 시간이 자기를 통과해 가는 것이다. 시간이 우리의 열기를 다 흡수하고, 그러면 우리는 ‘젊은 채’로 죽는 것이다.

    

제이크는 총명하지는 않지만, 예술과 지식을 꾸준히 접하며 살아가는 성실한 사람이다. 시집을 끼고 살고, 영화도 보고, 그림도 그리며, 과학에도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며, 뮤지컬도 좋아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병든 엄마를 끝까지 돌보았고 늙어서까지 학교에서 경비원 생활을 하며 성실하게 살아왔다.

생의 마지막 날, 늙은 제이크는 자기 집 식탁에서 혼자 영화를 보며 식사를 하고, 근무하는 학교의 강당을 청소하며 학생들의 뮤지컬 연습을 보다가 여학생들에게 변태로 오해받기도 한다.

그날, 그는 과거를 돌아본다. 아직도 젊은 이미지의 자아인 제이크와, 과거에 바에서 보고 관심이 있었던 여성의 이미지를 가진 루시와 마지막 여행을 하며 나눈 대화의 형식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사실, 젊은 시절 바에서 마음에 드는 여성을 만났으나 제대로 말도 못 걸고 결국 사귀지도 못한다. 따라서 함께 여행하는 그녀는 현실의 여성이 아니라 마음속의 여성이고 제이크가 하는 생각에 따라 이름과 의상과 직업이 수시로 바뀐다. 이름도 그가 워즈워드의 시를 떠올리면서 연상한 시인의 여자 친구 이름인 루시로 시작해서 계속 바뀌고, 직업도 그가 떠올리는 기억에 따라 과학자였다가 노인학자였다가 시인이기도 하고 화가이기도 하고 영화 전문가이기도 한 것이다.

여자 친구가 현실이 아닌 마음속 존재이기 때문에 그녀가 말을 입 밖에 내지 않고 생각만 해도 제이크는 그냥 안다. 그녀는 그의 마음의 존재인 ‘아니마’인 것이다. 그녀는 그가 끝까지 엄마를 보살피는 헌신적인 아들이라고 말하며 그의 인생을 인정해 주는 존재이다. 그가 시간이 뇌의 작용일 뿐 절대적이지 않다며 자신은 스스로를 젊게 느낀다고 하며 젊음을 찬양하지만, 그녀는 인생은 물의 흐름인데 젊음을 동경한다는 것은 개울물의 한 지점만을 감탄하는 것과 같다며 그의 의견을 반박한다. 그녀는 꼭 젊지 않아도 좋다며 자연스럽게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해준다. 아이스크림 가게의 제이크와 똑같은 피부 발진을 가진 친절한 직원도 그에게 가지 않고 머물러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그의 마음속 여성적인 부분으로, 이 세상을 하직하려는 그를 만류한다.     

루시가 받는 전화 메시지는 존재의 중심인 ‘자기’로부터 오는 질문이다. 이제 끝낼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노년의 삶은 부모님 집 창고에서 본 ‘산채로 구더기에 먹히는 돼지’의 그것이다. 죽는 것보다 못한 상태이고 빨리 끝장내야 하는 어떤 것이다.

그는 쭈글거리고 발진이 있는 피부와 침을 흘리는 상태로 다른 사람들의 모멸을 받으며 사는 상태를 빨리 마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술과 추억으로 얻는 위안은 거짓이어서, 마치 아이스크림이 달콤하지만 나중에 녹아서 끈적이는 불쾌감을 주는 것과 같다. 쓰레기통에, 버린 아이스크림 컵이 가득 쌓여 있다는 것은 그가 환상에서 현실로 돌아올 때마다 숱한 절망에 빠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의 인생에서 빠진 진실한 부분은 실제 세상에서의 관계였던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무대의 노래 장면이 그의 회한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방구석에서 한 모든 상상은 모두 거짓이고, 다시 산다면 꿈만 꾸지 않고 밖으로 뛰쳐나가 그녀를 잡겠다는.

그의 희망은 남녀가 추는 춤으로 표현된다. 만나고 사랑하고 청혼하고... 그러나 현실을 깨닫는다. 그는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이미 늙은 것이다.

춤을 추는 도중 늙은 제이크가 나타나 젊은 제이크를 죽인다. 자아가 둘일 수는 없으며 도플 갱어가 만나게 되면 한쪽은 죽게 되어 있다. 현실의 늙은 청소부와 젊은 자아 이미지로 분열되어 인생을 버티던 제이크는 자신의 진짜 자아인 늙은 제이크로 돌아온다.

그는 구더기가 꼬이는 살아있는 돼지보다는 죽은 양이 낫다고 생각한다.

드디어 그가 자기로부터 온 메시지에 대답한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

하루 동안 그는 마음속 여성의 도움을 받아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의 늙은 자신을 자각하고, 죽은 후의 모습까지 본다.

그리고 결국 그날 집에 돌아가지 않고 차 안에서 죽음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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