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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Mar 23. 2022

영화<다가오는 것들>-여성의 삶은 계속된다

나이 든다는 것의 자유로움과 쓸쓸함

     

한때는 엄마의 자랑이었고, 학문적으로 높이 평가받았고, 학생들이 존경했고, 남편이 감탄할 만큼 아름다웠고, 아이들의 모든 것이었던 여성이 나이 들어 노년기에 접어든다. 

여성의 삶에서 중요한 요소들이 다 등장한다. 사랑, 자손, 일, 노부모 등 여성의 일생에서 겪는 일과 변화가 잔잔하게 보여진다. 여성의 삶을 담담하게 풀어내서 더 감동적이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탈리는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교사이다. 

같은 철학 교사인 남편과의 사이에 딸과 아들을 두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왔고 홀어머니와도 자주 왕래하며 살아왔다.

그러다가 노년을 앞둔 시기에 여러 가지 변화를 맞게 된다. 

아이들은 다 커서 독립하여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게 된다.

남편은 좋아하는 여자가 생겨서 그녀와 같이 살고 싶다고 고백하며 집을 떠난다.

엄마는 원래도 근처에 살면서 딸에게 심하게 의존했는데 몸도 쇠약해지고 노인 우울증이 심해지자 딸에게 아무 때나 전화하며 그녀의 일상을 방해하게 되고 결국 요양원에 들어가게 된다.

좋은 평가를 받던 그녀의 책도 시대에 뒤떨어졌다며 재출판을 거절당한다.

아끼던 제자에게 사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는다.     

나탈리는 이러한 변화들이 가슴 아프고 눈물이 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쩌면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서 태어나서 한번도 누리지 못한 완벽한 자유를 처음으로 맞이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여전히 책을 읽고, 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자녀들에게 크리스마스에 모여 음식을 차려주고, 새로 태어난 손주를 안고 자장가를 불러주면서, 그녀가 말한다.

“별일 아니야. 삶이 끝난 것도 아니고.” 

 



        

당연하고 영원할 것이라 믿었던 사랑이 떠나겠다고 한다. 젊은 시절에 짧은 기간 정열적으로 사랑했던 애인과 이별하는 것과는 달리 오랫동안 자식을 함께 만들고 길러온 배우자와의 이별은 단지 그와의 단절뿐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했던 오랜 추억과 장소와의 이별이기도 해서 아련한 슬픔을 준다. 또한 중년을 넘어서 노년기에 접어들어 성적인 매력을 상실한 여성의 서글픔도 느껴진다. 그러나 친정 엄마의 장례식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울며 가다가 창밖에서 남편과 젊은 애인이 팔짱을 끼고 가는 모습을 보며 정신을 차리는 장면에서, 앞으로 주인공이 남편 없이도 남은 생을 씩씩하게 살아갈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혼의 절차에서 지식인 부부답게 공동의 서재에서 책을 분리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그녀가 어떻게 자신이 밑줄까지 친 그 책을 남편이 가져갈 수 있냐며 분개할 때 웃음이 난다. 남편은 한술 더 떠서 쇼펜하우어 책을 찾아 보내달라는 쪽지까지 남긴다. 살면서 같은 책들을 읽고 서로 대화하며 영향을 주었던 정신을 분리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녀의 엄마는 딸과 달리 철없는 노인이다. 딸에게 지나치게 의존하여 사위가 딸에게 멀어지는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한밤중에도 전화하기 일쑤이고 사위를 싫어하며 그의 이름조차도 엉터리로 부른다. 그러나 자신은 대학을 가지 못한 열등감으로 남편이 떠나간 후 유일한 자식인 딸이 지식인이 되기를 바랐고 딸은 엄마의 소망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서 철학 교사가 되었다. 그런 엄마를 옆에서 지키지 못하고 요양원에 보내고, 결국은 엄마가 세상을 떠나면서 딸은 슬픔에 잠긴다.  

   

나탈리는 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일을 사랑한다. 

그녀가 쓴 책은 오랜 세월 동안 표지만 바꿔가며 살아남았고 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새로운 세대의 출판업자는 그녀의 사상을 한물 갔다고 생각하고 재출판을 거절한다. 씁쓸하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다. 

    

또한 그녀는 자신을 존경하는 제자와 오랫동안 정신적으로 교류하는데, 제자는 함께 간 여름 휴가지에서 그녀가 사적 영역에서는 조화롭게 살지만 공적 영역에서는 사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결국 그곳에서도 평화로운 관계에 실패하고 홀로 자신의 생각에 잠긴다. 사색의 결과, 그녀는 교사란 특정 사상을 지지해서 행동에 나서는 사람이 아니라 여러 철학자의 사상을 공평하게 소개해주고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장성한 자녀들은 엄마의 간섭이 달갑지는 않지만 여전히 엄마를 사랑한다. 아빠의 외도를 부도덕하다고 보지는 않지만, 엄마에게 진실을 알리지 않고 엄마를 기만하는 것은 용서하지 않겠다고 아빠에게 경고하여 그가 아내에게 고백하고 떠나게 만든다. 철없는 아빠는 자녀들과 모두 모이는 가족 행사에는 참석하고 싶다고 말하며 한편으로는 어린 연인에게 생명의 에너지를 받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 가족의 역사와 평화로움을 간직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의 엄마 역할을 단호히 거절한다.

      

그녀의 생물학적인 여성의 매력과 역할은 끝났지만, 나탈리는 차분하게 다가오는 것들을 맞이한다. 노년기에 접어든 자유로운 지식인 여성으로서의 정신적인 삶도 유지할 것이고, 가족의 구조 안에서 그녀의 역할도 계속될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탈리는 여전히 책을 읽고,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철학을 가르치고, 자녀들은 성장하고 독립했어도 아빠 없이 여전히 엄마를 중심으로 명절에 다 같이 모여서 엄마가 차려준 음식을 먹는다. 또 새로 태어난 손자가 과거에 아들딸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자장가를 듣는다.  그녀의 삶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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