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살, 사고처럼 실직을 당하다

스타트업의 구조조정을 경험한 MZ 세대의 독백

by 일단


평범한 한 주의 시작, 일상적이지 않은 월요일의 기류
모두 대회의실에서 뵙겠습니다.


평범한 하루였다. 주말이 지나고 새로운 한 주가 시작하는 월요일이었다. 내가 속해있는 신사업부 팀원 전체가 참여하는 주간 회의가 잡혀있었고, 이후에 전 직원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타운홀이 잡혀있었다. 회사에서는 분기별, 반기별, 혹은 특별한 이슈가 있을 때 전 직원 타운홀(전 직원이 함께하는 미팅)을 진행하곤 했었다.


돌아보니, 타운홀이 잡힌 시기가 애매하긴 했다. 특별한 이슈가 있는 것 같지 않았는데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일상적인 것일 거라 생각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갑작스러운 타운홀 일정이 나온 것을 확인하고 쎄-한 느낌을 감지하신 동료분도 있었다.


새로운 팀에서 새로운 포지션으로 이제 조금 업무에 적응하고 있던 차였다. 앞으로 어떤 일들을 마주하게 될까, 새로운 것들을 이루어가는 시간들이 겁이 나기도 했지만, 서로를 토닥여줄 수 있는 동료들과 마주하게 될 어려움도 잘 대응해 가면 되지 않을까, 해보는 데까지 해보자. 스스로를 다스려가고 있었다.


신사업을 위한 자회사 설립과 사업자등록을 직전에 앞두고 있었고, 관련한 부동산 계약과 인테리어 업무 일정과 함께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고, 마케팅이며, 사업기획적인 업무가 한창인 시점이었다. 무리한 스케줄에, 앓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지만, 근면성실한 우리 팀은 야근을 하면서도 꾸역꾸역 그 일들을 해내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지 할지… 모르겠네요.
갑작스러운 구조조정 소식, 희망퇴직과 권고사직, 두 가지 초이스


20여 명의 팀원들이 모인 전체 회의에서 신사업부 팀의 헤드이신 K님께서 무겁게 말을 꺼내셨다.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시며 평소의 성품처럼 조근조근 그렇게 말씀을 시작하셨다. 팀장님의 목소리가 너무 잔잔해서 내가 듣고 있는 내용이 어떤 것인지 실감이 나질 않았다. 회사의 재장이 심각하게 악화되었고, 신사업부에 투입되어야 할 예산을 쓸 수 없어 신사업부의 사업은 중단된다고 했다. 우리 팀뿐만이 아닌 전사적인 대규모 구조조정이 예정되어 있었다.


현재 상황에서 구조조정 없이 회사를 운영할 경우 러닝타임은 4개월이며, 전사적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될 예정인데 타운홀 전에 팀원들에게 전달을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 자리에 있던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희망퇴직” 아니면 “권고사직”이라고 했다. 오후에 있을 전사타운홀에서도 이 내용을 공지할 것이라고 했다. 일순간 회의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질문을 하고 싶은 것들이 있으면 하라고 하시는데 어떤 걸 물어봐야 할지 벙찐 기분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구조조정에 대한 공지를 한 것이 8월 21일인데 8월 31일까지가 업무 종료일이라고 했다. 희망퇴직을 할 경우 퇴직금과 함께 위로금도 제공될 것이라 했다. 다른 동료분이 희망퇴직과 권고사직이 아닌 다른 옵션이 있는지도 물어봤지만, 현재 회사 상황상 다른 팀으로 갈 수 있는 옵션도 없을 것이라는 답변이 들려왔다.


우리에겐 희망퇴직과 권고사직이라는 두 가지 옵션이 있었고, 업무종료일까지는 10일이 남아있었다. 주말을 제외하고 실질적인 근무일은 8일이 남은 시점에서 당장 다음 주에 직장을 잃게 된 상황이었다.


회의는 30분도 안되어서 끝난 것 같다. 터덜터덜 다들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잠시 밖으로 나가 카페에 가서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당장 앞두고 있는 업무들도 중단되었기에 해야 할 일들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다들 심란한 마음으로 사무실에 앉아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카페에서 이야기를 하면서 그때까지도 나는 긍정적이었다. 팀원들을 격려했고, 좋은 분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는 말과 우리 모두 잘 이직하고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북돋았다. 혼자 있는 시간보다 오히려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그랬는지 기분이 그렇게 가라앉지는 않았다.


오후에 있었던 전사타운홀에서는 구조조정에 관한 구체적인 브리핑이 있었다. 경영악화로 인한 희망퇴직자들이 이직준비를 할 동안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처리해 줄 것이며, 회사 경영에서의 미숙함에 대해서 대표님은 자신의 자리를 내려놓고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며 사과를 말을 전했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을 것 같았다. 곳곳에서 한숨 소리가 들렸고,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는 동료들도 있었다. 대부분 팀의 내부적으로 상황에 대한 브리핑을 듣고 온 상태여서 전사타운홀도 금방 끝났다.



괜찮으시면 저녁이라도 함께 하고 가실래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회식


신생팀인 신사업부가 시작되고 3달 동안 전체 회식을 한 적이 없었다. 헤드님께서 상황이 이렇게 되었지만 시간이 되는 사람들 함께 저녁이라고 먹고 갈 수 있을지 물어보셨다. 신사업부가 생기고 처음으로 단체회식을 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회식이었다. 저녁을 먹으면서도 분위기는 나름 화기애애했다. 험한 말을 하거나, 넋두리를 하는 사람도 없었고, 다들 어쩔 수 없는 것들은 받아들이면서 마음의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참 점잖은 분들과 함께 일하고 있었다’ 싶었다. 저녁식사를 하고 헤어질 때도 다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갑자기 이렇게 끝이라고? 정든 동료들과 갑작스레 이별을 하게 되는 것도 아쉬움이 컸다. 얼떨떨했고, 현실감각이 없었다.


31살, 사고처럼 당한 실직


31살, 사고처럼 실직을 당했다. 경기가 어렵다고 뉴스에서도 매번 듣는 소식이었다. 문을 닫는 스타트업이 많다고 했지만, 비즈니스 상황이 어려운 것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내 앞에 닥친 일이 될 줄은 알지 못했다.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정말, 폭풍 같은 월요일이었다. 이때까지도 이런 상황 속에서도 나는 꽤나 이 상황을 잘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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