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저 병원에 가볼게요

우울증 치료의 시작.

by 일단


엄마, 저 병원에 가볼게요.



우울증의 증상

*9가지 증상들 중에서 5가지 이상 증상이 2주 이상 계속될 때 우울증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거의 매일 지속되는 우울한 기분

흥미나 즐거움의 저하

식욕부진이나 체중감소 혹은 식욕증가나 체중증가

불면이나 수면과다

정신운동성 초조나 지체

피로감이나 기력상실

가치감 상실이나 지나친 죄책감

사고력 집중력 저하, 우유부단함

반복되는 죽음에 대한 생각. 자살사고. 자살기도


9가지 증상 중 8가지가 지속되고 있었다. 더 이상은 안되겠다. 3주를 참고, 참다가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증상이 나타난 때부터 병원에 가야할까 말아야할까를 고민했다. 잠이 들 수 없어, 종이인형처럼 헤롱거리는 일상을 살면서도, 고민했다. 나를 끊없이 갉아 먹는 부정적인 생각과 끝없이 가라앉는 마음과, 내 삶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이 되뇌이는 생각과 2-3시간 이후부터는 자고 깨고를 반복하며 낮아진 수면의 질과 잠들지 못하는 시간들에 "이렇게 나를 두는 것이 방치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상했다. 몇 주전까지 버스고 지하철이고 잘만 타고 다녔는데, 버스도, 지하철도 혼자 탈 수 없고, 사람들을 만나기도 싫었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집에서만 가족들하고만 소통하며 몇주를 보냈다. (그러면서도 은둔, 고립 청년들의 컨텐츠를 찾아보면서 나 또한 그런 상태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의 나의 상태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보였다.) 정신건강의학과를 찾기 전에 멍- 한 지금의 상태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잘 할 수 있을까, 미리 나의 상태를 메모에 정리했다.



[메모]

아침에 일어나고 싶지가 않음. 오늘은 어떻게 버텨야할까…

모든 생각이 다 부정적으로 흘러감.

이런 내가 엄마에게 부담이 되고 자책이 됨.

그 전에 잘하던 일들도 자신이 없고, 사고, 문제해결력이 급감. 머릿속이 멍한 느낌.

자꾸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 속에 떠오름.

하루에 2~3시간 정도 잠을 잠.

사람들을 피하게 되고, 삶의 활력 의욕, 즐거운 것이 없음. 무기력하고 감정이 없는 느낌.



과거, 쓰러지고 몹시 아팠던 시절, 불면증과 우울증세로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먹었을 때의 그 멍한 기분이 싫어서 피하고 피하면서도 하루 종일 우울증에 관련된 컨텐츠를 찾아보고, 전문가들의 의견과 우울증 극복 후기를 나의 직무인냥 찾아보았다. 거의 중독 수준으로 노트북이랑 핸드폰으로 관련 내용만 찾아보았다. 브런치 글이나, 유투브에서의 왠만한 컨텐츠를 다 찾아본 것 같다. 운동이나 하루 30분 햇빛쬐기 등 많이 추천하는 몇 가지를 실천하려고 했고, 노력해보려고 했지만, 내 마음과 감정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나의 통제력 넘어로 간 느낌이었다.) "뭐든 내 마음 하기에 달렸다"는 할머니의 말에도 그 마음이 내 마음으로 되지 않는다고 이해받을 수 없는 것이 갑갑했다. 인터넷으로 실행한 우울 검사에서의 수치는 높았다. 틈틈이 우울감에 빠지곤 했지만, 과거 심한 우울증을 겪었던 바, 이렇게 지속적으로 어딘가에 갇혀있는 기분과 문제해결력, 기억력, 집중력에 문제가 있을 때는 단순 우울감과는 다른 증상이라고 여겨졌다. 일상이 무너지는 것. 혼자 밥을 차려먹고 싶지도, 평소에 하던 일상적인 일들도, 잘하던 것도 할 수 없고, 즐거움을 느끼던 모든 일에서 off 버튼이 눌러진 것 같은 순간. 책을 읽어도 머릿 속에 들어오지 않고, 뭔가 시도하려 할 때 막히는 느낌. 아는 느낌이라 더 두려웠다. 터널에 갇힌 것 같던 그때처럼 나는 내가 다시 그 터널에 빠지게 된 것 같은 절망감과, 우울증이 이렇게 재발의 재발을 거듭하는 것이라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 것인지 막막했다.


스크린샷 2024-10-13 오후 5.41.27.png 국립정신건강센터 우울 자가 진단



어떤 어려움이 있으세요?

몇 년 전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불면이 시작되었을 때 잠시 다녔던 적이 있는 동네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다른 곳을 가볼까도 생각했지만,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이 어려운 지금의 상태에서 익숙한 것에 기대어보기로 했다. 내가 방문한 병원은 예약이 아닌 대기제여서 체감상 1시간은 기다렸던 것 같다. 병원 후기에 대기 시간이 엄청 길다는 것도 있긴 하더라. 나말고도 여러 사람들이 병원을 찾고 있구나.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방구석에서 나혼자 우울증과 정신건강의학과에 관한 내용을 찾아볼 때보다 왠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동지들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약간의 위로가 되기도 한다.


"일단님, 들어오세요."


1시간의 대기 끝에, 드디어 내 차례다. 나이가 지긋하신 중년의 남자 선생님께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냐고 물으셨다. 적어갔던 메모의 내용을 이야기했다. 내가 정상이 아닌 것 같다고, 다른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사는 것 같다고 했는데, 의사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크게 심각하게 여기지 않으시는 듯 했다. 워낙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가. 다들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살지만 티를 내지 않고 살아갈 뿐이라고 했다. 약을 먹고 멍해서 일상생활이 어려웠는데 잘 맞지 않으면 나에게 맞는 약을 찾아줄 수 있는지 물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부작용을 감당해야한다는 듯 "손해가 많은 노력"이라고 표현하셨다. 약물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부작용도 감당을 해야한다는 맥락에서였다. (이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에게 맞는 약을 찾아주려는 노력보다 치료법에 따라야한다는 뉘앙스가 내 맘에는 들지 않았다.) 치료의 목적은 더 나은 내가 되는 것이 아니라 "회복"이라고 하셨다. 30대의 나이가 생체 리듬에 따라 나이가 많은 분들과 같은 불면을 겪을 만한 나이는 아니기에, 수면제보다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통해 우선, 가라앉은 감정을 끌어올리면 수면도 해결이 되고, 다른 것들도 나아질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기분을 너무 가라앉지 않게 올려주고, 감정의 기복의 폭을 줄여준다고 하셨다. 저녁 약을 메인으로 주고, 나머지 약을 감정이 올라올 때 보완적으로 복용해보라고 하셨다. (메인약 2가지, 보완약 2가지)



-파마설트랄린정 25mg (취침 전 30분 전 복용) 1회 투약량 : 1

-환인클로나제팜정 0.5mg (취침 전 30분 전 복용) 1회 투약량 : 0.5

-데파스정 0.25mg 1회 투약량 : 1

-인데놀정 10mg 1회 투약량 : 1



나는 역시 나다. 리서치 강박증인걸까? 처방 조제 내역서에 적인 약품명을 보고 어떤 약인지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인터넷에서 샅샅이 찾아보았다. 메인 약으로 저녁에 먹으라고 파마설트랄린정 25mg은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에 속하는 항우울제로, 우울증, 강박장애, 공황장애 등을 치료하는 데 사용되는 약물이었고, 환인클로나제팜정 0.5mg은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약물로 신경안정제의 역할을 하는 약물이었다. 보통 정신과약들이 중독성, 금단 현상에 대해 걱정을 하는데, 이것도 전문가들의 의견과 자료와 실제 약물을 복용해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봤다. SSRI 계열의 항우울제 자체는 중독성이나 금단증세가 많지 않은 편인데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약물의 경우에는 의존성이나 금단 현상이 있을 수 있다고 해서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약에 의존하게 되고 끊을 때에 그 엄청난 금단 현상에 시달릴 내가 두렵기도 했지만, 약을 탄 이상 먹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