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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형 Feb 28. 2022

책임

2022. 01. 27.

책임을 되찾고 싶다. 그것이 진정으로 필요하다. 군 조직은 수많은 책임을 지우는 것 같지만 실은 삶 전체의 영역으로 아무것도 송신하게 두지 않는다. 거기서 이용하는 내부망과 마찬가지다. 분노도 망에 통합되어 있다. 소화되어 있다. 삶 전체(진짜란 언제나 전체를 요구하는 환상이다), 분절되어 있더라도 조각난 뱀의 허리 같은, 한 신경이 흐르는 작품 전체가 필요하다. 소유는 왜 허무한가? 우리가 실제로 소유하는 게 소유의 감정 하나뿐이어서 그럴 것이다. 감정도 끝없이 품을 벗어나 있다. 따라서 속으로 곪은 어떤 생각, 생각에 대한 생각에만 부축받아 사는 게 옳다. 그러려면 환상이 제 역할을 해줘야 한다. 내가 나를 죽일 수 있어야 한다는 건 매우 실효성 있는 요구인데, 바로 그 책임에 대한 환상을 돌려 달라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다는 환상이 해선 안 된다는 명령보다 언제나 강하다. 진실은 내 삶에 덧창 따위 없다는 것. 아래를 지향하는 게 물의 본성인 것처럼 오직 편린으로 나타나는 건 사회의 본성이다. 따라서 군 조직은 사회고, 거기에 특수성을 더한다고 믿어지는 수많은 미심쩍은 망상과 별개로 보편에 일치하며 사회 전체다. 적어도 피에 업혀 가는 무엇이다. 내 앞날에 관한 나의 말 속에 반짝이던 깨진 유리창들을 돌려 줘라. 이렇게 말하면 회복되는 시력을 난 좋아한다. 그러나 눈은 본성상 바깥만을 수억 겹 만든다. 연속성은 상상만 된다. 상상한 것을 보려고 시를 쓰는 걸까? 그래서 시는 보이지 않고. 시는 삶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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