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1. 28.
미쳐버린 침묵의 대화. 미래에서 들려오는 말들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람이 이룩한 수많은 배려의 양식에 회의가 든다. 결론에 이르면 다 같은 말을 하는 것 같다. 위대함은 더부살이 속에 있고 총명과 내적 확장마저도 그를 부드럽게 보는 동행의 눈길 안에서만 정당하다는 것이다. 함께 살고, 단 한번만 살고, 그 다음 무한한 고독 속에서 단 한번만 더 살게 된다는 조건 때문에 그건 필멸자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논조 같다. 그렇다면 무엇이 나를 자연스럽게 하는지가 문제다. 돌아보면 자연스러움이 나를 껴안는다, 무엇도 못 보게끔. 사람끼리는 등을 두드려준다. 이 등이 왜 여기 있는지 그들 사이에 알려져 있다는 듯이. 흩뿌려진 정보처럼. 타자는 딱 그렇게 설득적으로 제시된다. 결정적으로 자유의 부족함은 내가 스스로를 억누르고 있다는 걸 실감해야 완성된다. 그것만이 내겐 부자유다. 주체성이 선물하는 따뜻한 역류다. 내 말은 끈끈해진다. 약속의 낙관에 꽉 물려 있다. 왜 그러느냐고 친구들은 묻는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들이 이미 상처를 듣고 있다. 거기에 불필요한 체온을 겹쳐 순수를 망치고 싶지 않다. 생각해 보면 꿈의 판막까지 흔들고 증오를 일으키고 때로 삶을 무너뜨리는 그것이 대화에 남은 유일한 순수다. 소중한 사람이 침묵에 매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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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 왜 브런치 키워드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