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 그 가깝고도 어려운 관계에 대하여(1)
동기사랑 나라사랑의 진실
동기라는 건 참 어려운 존재다.
동기사랑 나라사랑
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회 초년생으로 정글의 법칙과도 같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된 두려운 순간에, 서로의 신입사원다운 실수를 감춰주며 아, 나만 그런 것은 아니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까지 내쉴 수 있는 존재니까. 하지만 오히려 ‘너무 가까운 사람이 독이 된다.’는 사회생활에서의 진리와 충돌하는 동기란 그런 관계이기도 하다.
나는 광고기획사에서 채용연계형 인턴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야근 많고 어느 업계에서조차 ‘을’로 통하는 광고업계에서는 몇 개월 동안의 내부 경쟁을 통해 공채를 선발하는 경우가 많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해당 경쟁에서 보기 좋게 떨어졌고, 다시는 그 제도로 인원을 채용하는 회사에서 지원하지 않았다.
실패는 아니라지만, 불합격의 아픔은 생각보다 많이 아프고 오래 간다. (출처: Google)
정규직 공채 동기들과 채용연계형 인턴 동기들은 서로 차원이 다른 유형의 동기들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미래가 불투명하고 사실상 인턴십이 진행되는 동안 백업 플랜을 세울 수도 없는 채용연계형 인턴 동기들은 사실 모두가 서로의 경쟁자다. 누군가 떨어져야 내가 붙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는 상황 속에서 옛날 초등학생 때나 보던 “나 시험공부 안 했어라고 안심시키고, 밤새우기” 등의 케이스도 보았고, 도의적으로 인턴 간 부서 이동에서 남겨야 할 인수인계나 중요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전달하지 않는 경우도 보았다.
무엇보다 이미 어렵다는 인턴십 채용 절차를 뚫고 들어온 훌륭한 인재들 사이에서 광고홍보와 직결된 과를 나왔는지(ex. 신문방송학, 광고홍보학, 커뮤니케이션..), 직속 학교 선배가 현재 회사에서 재직 중인지 등의 여부를 두고, 매우 치열하게 편가르기가 진행됐다. 그 흔한 광고 동아리도 하지 않고, 과 또한 설명해야 알아들을 수 있는 다소 특수한 과를 나온 나로서는 어느 쪽의 편가르기에도 속할 수 없는 낙동강 오리알이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묵묵하게 그 흔한 노하우와 팁 없이 과제를 수행하는 것 밖에 없었다. 또 다른 동기의 일화로는 직군에 따라 T.O가 1명인 것을 상부에서 강조하고 인턴을 2명 뽑았다. 그야말로 네가 못해야 내가 붙는 상황. 이런 생각만 해도 숨 막히는 상황에서 사수는 해당 동기가 미션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그 즉시 타 인턴과 비교를 하며, 가득이나 불안한 고용 불안정성을 일깨워 줬다고 한다.
그냥 들어도 비교는 최악인데, 자리를 놓고 비교라니 너무하다는 생각이다. (출처: Google)나였다면 그 동기와 진정으로 고민을 나누고 사적인 대화를 할 수 있을까? 타 인턴이 잘못한 것이 없더라도 솔직한 인간이라면 미워하지나 않음 다행일 것이다. 채용연계형 인턴과정을 통해 놀라운 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정규직 공채에만 지원하기로 했고, 그다음 노선이 브런치 매거진으로 발행했던 IT기업이었다.
정규직 공채 동기, 회사에서는 찐 성골이라 불리는 이들끼리의 만남은 수월했을까? 나는 동일한 직무에 또 다른 동기와 함께 배정되었다. 같은 직무에 배정당한다는 건 정말 서로에게 의지하기 좋은 환경이란 소리다. 직무도, 상사도, 회사 환경도 같이 욕하면 그만일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해당 회사가 좋은 회사가 아니었고, 동기 역시 입사 초반부터 회사의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원래 삼성을 준비했었는데 떨어지고 왔다던가 등의 회사가 본인의 기준에 한참 못 미쳐 만족스럽지 않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 특히 새로운 인턴이 들어오던 날, 개별 식사 자리에서조차 인턴에게 이 회사는 아니라며 불만을 드러내던 그녀가 난 불편했다. 어쨌든 이곳에 왔고, 이곳에 다니고 있으며, 만족스럽지 않다면 조용한 이직을 하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했고, 나 역시 열심히 이직 준비를 병행했다. 지금 와서 다시 나를 성찰해 보면, 단순히 회사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뱉는 그녀 자체가 불편했다라기보다는, 다니는 소속이 창피해 말할 수 없다는 그녀의 발언에 나 역시 동감하고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때문에 나는 진심으로 그녀가 나보다 먼저 이직할 것이라 생각했고, 좋은 곳으로 이직하길 바랐다. (그녀는 진심으로 몇 안 되게 내가 일 잘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 바람과는 별개로, 서로가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음을 알고 있던 우리는 자연스럽게 멀어졌고,(그녀 혹은 내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고 표현함이 맞다) 나의 갑작스러운 현타 및 퇴사가 이뤄질 때쯤 우린 업무 상 필요한 언급 외 거의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이직하고 싶다. 옆에서 매일 들으면 꽤나 힘들더군요 (출처: Google)
다시 되돌아보면, 난 동기에게서 언니, 오빠 등의 호칭으로 부를 수 있는 가까운 친구가 아니라 ~님으로 불리는 적당한 거리를 원했던 것 같다. 서로가 너무 허물없이 대하면 회사의 선배들이 더욱 신입사원을 하대할 수 있는 근거를 주는 느낌에서였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제일 어렵다고 했던가. 난 보기 좋게 실패한 셈이다.
지금 속한 조직에서도 다수의 동기들이 있지만, 가장 이해하기 어렵고 신기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퇴사 이후에도 연결을 이어나가는 동기들이다. 고등학교, 대학교에서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만나고 있는 사람들은 동기라기보다는 친구들이라고 규정하고 있고, 이후 사회에서 진짜 동기로서 만난 사람들을 난 회사 바깥에서 만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퇴사가 이뤄지고 난 다음에는 연락을 유지할 매개체가 사라지게 되면서, 지금까지 단 한 명도 퇴사 이후에 연락을 이어나간 사람은 없다.
이런 사회 적응력이 부족한 딸을 보고 엄마는 그것도 인맥이니 어떻게 도움이 될지 모른다. 꼭 유지해야 한다고 잔소리를 하시지만, 일단 관계를 유지할 정도로 특별한 동기를 아직 못 만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연을 만들고 이어나가는 재주는 없기에, 어쩌다 연락이 오는 경우(100% 사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경우다.)에만 답하고, 자발적으로 나서서 동기들을 서칭하고 다니지는 않는다.
나이가 들어가면 점점 좁아져가는 것이 인간관계라던데,
이미 20대 좁디좁은 인맥 풀을 가지고 있는 점이 걱정되긴 하지만, 어쩌랴.
다 가질 수는 없는 것에 동기 관계가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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