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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약맛댕댕이 Nov 02. 2022

나의 동네 용산

용산구에 대한 나의 회상

나는 용산구 청파동에 산다.


꼭 동까지 말하는 이유는 용산구에 산다고만 말했더니, 흔히 부자동네인 한남동이나 이촌동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물론 용산구 집값은 동을 나누지 않고도 비싸다..) 최근에는 BTS 소속사 하이브 본사가 들어오면서, 용산역을 더 많이 떠올리기도 한다. 사실 용산구 청파동은 중구나 마포구에 조금 더 가까이 위치해 있으며, 이태원, 한남동 쪽은 우리 집에서 버스로 30분 정도가 걸린다. 그만큼 숙대입구라는 역을 말하지 않는 이상, 많은 사람들이 모르던 용산구 청파동이 최근 들어 일명 핫플레이스가 되는 이유는 바로 용리단길 때문이다. 



용리단길 핫플레이스 지도, 가본곳도 못가본 곳도 있다. (출처: Google) 

 


 몇 년 전부터 가로수길, 황리단길 등의 길 붐에 힘입어 용리단길이 생겼다. 대통령의 집무실 이전과 맞물려 아모레퍼시픽을 포함한 다양한 오피스가 생성됐고, 나의 동거남의 회사도 이곳에 있으니 모쪼록 신용산 일대는 일주일을 함께하는 직주근접 삶의 터전이자, 분위기 있는 저녁을 원한다면 주저 없이 도보권으로 갈 수 있는 핫플레이스가 되었음을 실감 중이다. 때문에 매일같이 친구들에게 OO식당 가봤니 등의 질문을 자주 받곤 한다. 대부분의 경우, 


1. 있는지도 모르거나 
2. 안다 하더라도 너무 유명해 웨이팅을 시도조차 해보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이다. 

저번에는 유명하다는 식당 한 군데에 미리 전화를 했더니 대기가 95팀이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95팀 대기 기다릴 건가요…?) 




 하루하루마다 상호가 바뀌고, 재건축을 통해 변화하고 있는 곳을 바라보면 토박이로서 속상함을 감추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어느 동네든 자신의 향수가 있는 동네가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나에게 청파동은 유년기를 보낸 곳이자, 엄마에게는 학창 시절부터 청춘을 모두 보내고, 할머니에게는 인생 전체를 보낸 삶의 터전이다. 잠시 회상하자면, 커리어 우먼이었던 엄마 손을 붙잡고 용산역 앞 공터의 빨간 불빛을 지났던 것이 내가 기억하는 용산역과 나의 첫 만남이다. (지금 용산역 앞 공원으로 조성 예정 중인 부지는 원래 긴 사창가였다. 어린 시절이었음에도 빨간 불빛이 강력했는지 기억이 난다.) 신용산 앞은 지금도 있는 대구탕 거리부터 화방, 아틀리에가 모여있던 곳이었다. 엄마 아빠는 신혼집에 어울리는 그림을 사시곤, 그림에 어울리는 액자는 신용산 앞 액자 집에서 맞추셨다. 해당 그림은 비교적 최근까지 우리 집 거실의 랜드마크였다. 신용산부터 숙대입구까지는 용산기지를 포함해 각종 기공사들이 즐비했고, 언덕배기 숙명여대까지는 여대생들을 위함 각종 소소한 맛집과 네일아트숍, 미용실이 즐비했다. (해당 가게들은 지금까지 남아있지만, 정말로 그 당시에는 더 많았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용산역 앞 빨간 홍등가. (출처: 연합뉴스)


 하루아침에 용리단길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용산 일대는 높은 건물을 쌓고 매일같이 상호들을 바꾸고 있다. 그런 상황이 당황스러우면서도 시대에 따라 도시의 형태 역시 바뀌어야 하는 것임이 피부로 느껴져 더욱 서글프다. 



 용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태원도 마찬가지다. 

우연의 일치로 이 글을 쓰는 와중에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면서, 전체 글을 한번 수정했습니다.
모든 분들께 애도를 표합니다.

 20대 초반에 서울에 살지 않더라도 이태원에 발걸음 한번 안 해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자유, 다양성, 여유의 상징인 이태원은 나에겐 20대 초반 방황의 무대였다. 미국 교환학생에서 갓 돌아왔을 때, 헤어진 남자친구를 잊기 위해 밤을 새우기도 하고, 그 인연으로 다음 남자친구를 사귀게 된 것까지, 이태원 해밀턴 호텔 뒷골목은 그러한 나의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이다. 꽐라가 됐지만 호텔에서 잘만한 돈이 없던 나를 품어주는 곳 또한 이태원에서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찜질방이었다. (이젠 없어졌다) 20대 후반이 되면서 철없던 나를 회상하며 가끔 찾아가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은 상권에 그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곤 했었다. 



 토요일 여느 때와 같이 신용산에서 저녁을 먹고 있을 때, 구급차 소리가 들렸고 한동안 멈추지 않았다. 내가 그날 이태원에 가지 않은(못한) 이유는 청파동이 위로는 김건희 여사 특검 시위, 아래로는 이재명 구속 시위로 이동 자체가 불가했기 때문이다. (청파동에서 신용산까지는 버스가 움직이지 않아 걸어야 할 정도였다) (이 요즘 일어나는 시위들에 따르면, 윤석열 현 대통령도 구속하고, 이재명 의원도 구속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러면 안철수 의원이 다시 나올까 하는 정치적 웃픈 상상에 실소를 멈출 수가 없다.) 한 달 내내 숙대입구를 둘러싼 용산구, 중구 전체가 시위 중이다. 시위를 지켜보면서 난 서울에 이렇게 많은 경찰과 의경들이 있는지 새삼 놀랐다. 시위버스만큼이나 줄지어 서있는 경찰 버스들을 보며, 정말 이태원 참사에 미리 배치할 인원이 없었는지 의문을 던진다. 


깊이 애도를 표합니다. 


 누군가를 참사로 인해 앞으로 용산을 참사의 현장, 윤석열 대통령의 새 집무실, 시위의 현장으로 인식할 것이다. 나 또한 누군가 용산구의 호캉스를 예약하고자 한다면 시위에 각오하라는 조언을 하고 있으니까. 그래도 동네를 이루고 있는 건 단 한 곳의 랜드마크가 아니라 그곳에서 삶을 이어나가고 있는 주민들이다. 다시 한번 참사에 애도를 표하며, 청파동, 용산에 대한 나의 회상이 주민들의 삶에 초점이 맞춰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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