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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약맛댕댕이 Oct 12. 2023

문제를 마주했더니, 나와 관련이 없었다.

정서적 완벽주의자(5)_남이라는 존재의 인정

전편 : 29년만에 나를 마주했습니다. 


나에게 감사를 매일매일 건내고, 응원의 한마디를 건냈고 열심히 일을 했다. 일을 몰두하는 순간만큼은 키보드 소리가 작게 들렸지만, 잠깐 한숨을 돌리려 정신을 내려놓는 순간과 그들의 쉬는시간이 맞물리는 순간마다 정신상태에 치며드는 웃음소리와 키보드 소리에 나는 매번 무너졌다. 



버티고 있었다는 말이 가장 정확했다. 세로토닌을 높이는 약의 가장 흔한 부작용이라는 설사, 메슥거림, 식욕저하 등이 한꺼번에 찾아오고 있었다. 하루는 살만하다가도 그 다음날 하루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구렁텅이에 있는 느낌이었다. 건설회사 특성상, 현장에 나가있는 동기들도 다수 되는데, 한동안 연락하지 않은 동기의 연락을 받기도 했다. 자기와 친한 사람이 말해주던데 내 상태가 가히 심각해보인다고 전달 받았다면서, 요즘 본사에 무슨 일이 있냐는 연락이었다. 



 나와 인사하고 나를 마주하는 것이 힘든건지, 이 상황 자체가 힘든건지 분간이 잘 되지 않았다. 일부러 30분씩 일찍 출근하기 시작했다. 책상에 앉아서 숨을 고르고, 명상을 통해서 내가 오늘 하루도 잘 살아 나가야 한다는 다짐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금요일 오전 출근을 하여 내 책상으로 가던 길에 5일동안 먹은게 별로 없어서인지 나도 모르게 휘청하며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재빨리 의자를 부여잡고 앉아서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는데, B가 출근을 했다. 그녀의 눈에 봐도 내 상태가 심상치 않았던지 그녀가 걱정어린 말을 시작했다. 


언니, 쉬었는데도 몸이 안좋아? 더 일이 많아질텐데 많이 아프면 얼른 쉬어


진심으로 걱정이 담긴 말이었다. 그녀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녀가 내 상황의 제공자라는 생각이 전혀 없이 내뱉은 순수한 워딩이었다. 그 순간, 나는 표현하지 않을 때 상대방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것이 인간관계임을 깨달았다. 



둘다 일찍 출근을 한 것이었기에, 나는 그녀를 회의실에 불러내어서 말을 시작했다. (울기 시작했다는 것이 빠르다) ~~상황 이후에 너희의 키보드가 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행동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너네가 계속 이런 식으로 행동하고, 나도 똑같이 영향을 받으면, 난 곧 퇴사를 해야 할 정도이며, 내가 퇴사를 하면 내 업무가 너에게 갈 테니, 가장 먼저 말을 해본다라며 결국 난 내 모든 카드를 내려놓는 일명 GG를 외치었다. 그녀는 내가 울자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토끼눈을 하고 진즉에 말하지 그랬어라며 동정어린 시선을 보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가 진심으로 나를 안쓰러워한다고 생각했다) 눈물을 닦아가며, 9시가 되자마자 업무에 임하기 시작했고, 내가 울었다는 내용에 관해서 둘이 카톡을 하는 것 같았다. 한 10시쯤 다같이 모여서 얘기를 해보지 않겠냐는 그녀의 말에 그러마 하고 오전 10시 나는 회의실에 들어갔다. 



 솔직히 회의실에 내가 무엇을 기대하면서 들어갔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지 않은 채, 둘만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부분을 기대했던 것일까? 생각보다 많은 의견을 말한 것은 B였다. 이제까지 몇번 내 발언에 기분이 나쁜 적이 있었고, 둘이서 그것에 대해 험담처럼 진행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마 그런 부분이 A와 B를 더 친하게 만드는데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며, 오히려 이런 계기를 통해서 서로에게 솔직하게 말하면 예전처럼 천천히 좋아지지 않을까?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 기분이 나빴던 것에 대해 예시를 한번 들어달라고까지 했지만, 그 당시에는 기분이 나빴지만, 부정적인 기운을 오래 남기곡 싶지 않아서 본인도 털어내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부분이 가장 변명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잠시 B의 얘기를 듣고 있던 A는 이어서 말을 했다. 내가 그렇게까지 오픈되게 말해달라고 해서 말을 하는 건데 내가 평상시 그녀를 무시하는 투로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 말에 대한 정확한 예시를 들었는데, 예시를 이곳에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녀의 남자친구가 준 선물에 대해 무시하는 듯한 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이 순간, 나는 다시 한번 사람이란 존재는 어쩔 수 없이 자기가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면 나는 전혀 그런 의미로 말한 것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사적인 대화에서 본인의 남자친구를 지갑처럼 표현하는 것은 그녀였기 때문이다. (ex. 이거 예쁘지?하고 물건을 자랑해서 예쁘다!고 말하면, 남자친구한테 사달라고 해야지~의 느낌) 


결국 B는 본인의 행동이 앞으로 변할 생각이 없음을 명확히 표현했고, A는 이것이 그렇게까지 스트레스 받을 일이 아니며, 오히려 본인의 행동을 돌아보기 바란다는 식의 스탠스를 취했다. 둘다 말을 건내는 태도 자체는 나를 걱정하며 본인들은 나를 싫어하는게 아니라고 했지만, 딱히 나서서 끼워주고 싶을만큼 혹은 의도성을 가지고 배재를 할 만큼 좋지 않음을 명시했다. 


 반대로 나는 그들이 나를 무시한다고 느꼈을 만한 행동이나 발언이 하나도 없었을까? 반면 둘 사이에서는 무시하고, 기분 나쁠만한 행동과 발언이 하나도 없었을까? 사람을 어떠한 사람이라는 프레임의 눈으로 보면 그런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다. 나는 계속 내가 이렇게 했었다면 2+1의 낙오자가 되지 않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 아래,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느꼈는지, 내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하지만 그녀들의 설명을 듣고 깨달았다. 아,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었구나. 이렇게까지 했음에도 사람이라는 존재는 못한 부분을 더 보고, 어떻게 보면 배재할 만한 부분을 찾아나서는 것이 인간이구나. 


모두가 인간이기에 그랬구나. 누구의 잘못으로 치부할 수 있는게 아니라, 그들은 그저 남일 뿐이었다. 



다음 편 : 절연했던 동생을 찾아갔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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