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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약맛댕댕이 Oct 16. 2023

절연했던 동생을 찾아갔다(1)

정서적 완벽주의자(6)_가족마저 차단했던 정서적 완벽주의자 

전편 : 문제를 마주했더니, 나와 관련이 없었다. 


그녀들과 마주해서 모든 카드를 내려놓은 것이 금요일. 

놀랍게도 한 시간여가량 그녀들과 씨름하고, 허탈한 감정으로 자리에 앉았더니 동생에게서 문자가 와있었다. 

토요일에 한번 얼굴을 보고 대화를 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동생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소 긴 백업 설명이 필요하다.

나보다 5살이 어린 그녀는 일명 2000년생(내 나이가 공개되는군), 주민등록번호도 이제껏 본적없는 000과 뒷자리 4로 시작하는 번호부터 성격, 체형 모든 것이 다른 사람이었다. 특히 성격, 그녀가 최고 F라면 나는 최고 T이고, 그녀가 최고 P라면 나는 최고 J였다. 때문에 우리 집 막둥이는 늘 엄마의 걱정거리이자 아픈 손가락 1순위요, 알아서 잘하는 언니와 비교되는(그녀는 나를 항상 그렇게 묘사했다. 내가 정신과를 달고 사는지도 모른채) 사람이었다. 때문에 형제든 자매든, 으레 나이 차이가 꽤 나면 잘 싸우지 않는 편이라지만 우린 정말 학창시절부터 박터지게 싸운 적이 잦았고, 내가 성인이 된 이후에는 아예 거리를 두는 편이었다. 


그런 그녀와 제대로 절연을 선언하게 된 계기는 동생이 대학교의 자퇴를 언급하면서부터였다. 과 선택부터 가족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선택했던 동생은, 아니나 다를까 2년이 지나고, 생전 받아본 적이 없는 7F(맞다, 한 과목도 아니고 일곱 과목 F다. 학고라는 제도가 모든 학교에 있는게 아님을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를 맞고 2년을 꽉 채워 휴학을 했다. 그녀는 2년 동안 일명 백수생활을 즐기더니, 더이상 휴학기간을 늘릴 수 없을 떄 자퇴선언을 했다. 당연히 부모님은 반대, 그녀는 그날 울면서 언니 집에서 자도 되냐며, 일명 언니의 혼자 살지도 않는 신혼집을 밤 10시가 넘어서 찾아왔다. 나는 창피하더라도 그녀에게 성적표를 뽑아서 교수님께 들고간 후, 졸업을 할 수 있는 방향이 있는지 찾아보라고 했고, 그녀는 알겠다고 했지만, 역시나 다음 날 바로 자퇴를 했다는 말을 엄마를 통해서 들었다. 


 집에서 내리 설득한 나의 말은 무엇이었는지, 왜 그랬냐고 추궁하는 나에게 그녀는 언니가 자기 집에 오라고 해서 간 것이라며, 내가 언니말을 들을 필요는 없다고 도리어 화를 내었다. (지금 보면 다그치는 나에 대한 자기방어기제였던 것으로 생각이 된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는 네가 필요할 때만 찾는 사람이 아니라며 과감히 그녀를 카톡에서 지워버렸다. 


 총 2년 가까이 난 그래서 그녀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그녀가 엄마 집에 있으면 최대한 피해서 엄마 집을 방문했고, 하루는 자궁 메이트 집에 있어?라고 엄마에게 물은 것을 그녀가 우연히 듣고는 매우 많이 울었다는 사실도 전달받았지만, 내 말을 잘 듣지도 않고, 도리어 괜히 에너지를 쓰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사람과 무엇하러 가까이 해야하지 라는 생각에 별로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언니는 마치 우리를 무시하는 투로 말을 할 때가 있어


라는 A의 말에 잊고 지내던 그녀가 생각난 것이었다. 20년 내내 내가 마치 우월하다는 듯이 억울함을 표출한 사람이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가 정말 남을 무시하나?라는 물음이 담긴 씨앗을 가장 쉽게 그리고 가장 아프게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그렇다는 대답을 들을까봐 무서웠다. 항상 인생에 대한 훈계를 하는 건 내 쪽이었는데 5살이나 어린 동생에게 모든 치부를 보여주고, 훈계를 듣는 것 자체가 나를 마주하는데 피할 수 없는 과정임이 피부로 느껴지고 있었다. 


 회사에서 매일 얼굴을 봐야한다는 이유로 철저히 남이고, 퇴사하면 첫번째로 차단할 사람의 말도 귀기울여 듣는데, 피를 나누고 하물며 같이 자란 사람의 말을 안들어왔던 내가 바로 그 우물 안의 개구리였던 것이다. "평상시 같았다면 너희를 차단했겠지만, 앞으로 잘 지내보고 싶어서 마지막으로 물어보는 거야"라는 말을 남에게는 잘도 하면서, 동생에게 창피함을 느끼기 싫어서 항상 잘 지내는 척 하고, 항상 열심히 최고의 결과물을 남기는 척 하며, 더 나아가 그러지 못한 동생을 어린 아이 취급했던 내 자신이 그녀를 만나기 전부터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부끄러울수록 나 자신을 내버려둘 수 없었고, 날씨가 따뜻했던 가을날 북촌에서 그녀와 대면했다. 거진 2년 만이었다. 


> 다음편은 절연했던 동생 앞에 무너지다(2) 입니다. 


이 아니라ㄴㅇㄹ, 나와 ㄴㅇㄹ관련이 없었다. 마주했더니, 나와 관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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