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억하려고 떠난 여행

by 쑤니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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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진단을 받고
현실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후쿠오카로 향하는 비행기 창밖을 보면서
머릿속은 복잡한데
몸은 이상할 만큼 가벼웠다.

마치 속삭이듯,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그 세계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 짧은 틈에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작은 방이 생긴 것 같았다.

공항에 서 있던 나,
호텔에 체크인하던 나,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나를 위해 함께 떠나준 친구들.

그 순간의 나는
아직 ‘암환자’가 아니었다.
누구도 나를 그렇게 부르지 않았고
나 역시 나를 그 이름으로 느끼지 않았다.

그저 여행을 즐기는 나.
내가 좋아하는 풍경을 바라보고,
좋아하는 음식 앞에서 웃고,
사진을 찍고,
길을 걷고,
밤공기를 마시던 나.

후쿠오카의 골목을 걸을 때,
따뜻한 커피를 마실 때,
분수쇼를 바라볼 때
나는 내가 ‘나’로 남아 있다는 사실에
이상할 만큼 안심이 됐다.

물론 마음 한구석에서는 알고 있었다.
거대한 파도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걸.

그래서였을까.
그 여행 동안만큼은
그 파도를 잊고 싶었다.
아니,
그 현실을 잠시라도 부정하고 싶었다.

그곳에서의 나는
엄마도 아니었고,
환자도 아니었고,
아픈 사람도 아니었다.

오로지,
여행을 좋아하는 나.
사진을 좋아하는 나.
골목을 천천히 걷는 나.
그리고…
‘나’를 기억하고 싶었던 나였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 나는
다시 병원으로,
다시 검사로,
다시 현실로 돌아갔다.

하지만 후쿠오카에서의 그 시간들은
나중에 길고 긴 병실의 시간 속에서
내가 버틸 수 있게 해준
아주 작고,
아주 소중한 힘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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