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만 적을 래요

by 정 혜

Day 30 나의 버킷리스트 20가지를 써주세요. 그리고 그중에서 3가지만 제외하고 모두 지워주세요. 다시 3가지를 선택한 이유를 써주세요.


네 주(週)의 한 번 병사들에게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게 해 봤다. 일 년 이상 이 프로그램을 지속시키며 지켜본 결과 10가지도 못 채웠다. 몇몇은 많이 적었다. 소수였다. 그때 함께 적는 시늉을 하면서 생각을 해보니 적을 것 같은데 의외로 적을 것이 없었다. 나이 먹으면 꿈이 줄어서 그렇다 치고, 한창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시절의 청년들이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았다.


고참 병사들은 일요일마다 컴퓨터 실로 간다. 도서관은 터엉 텅 비어있다. 법당에 오는 병사들은 전입한 지 일주일 이내에서 일병까지다. 상병, 작대기 세 개가 되면 컴퓨터 실로 빠진다. 말년 병장은 손전화기를 법당까지 들고 와서 법문 할 때 수시로 들여다본다. 그래도 내게 예의를 지켜 주는 것에 고마워했다. 젊은 병사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사항을 10가지 겨우 적는데, 하물며 단풍 든 나뭇잎의 하고 싶은 일은 뭣일까.


20가지 써서 지우느니 딱 세 가지만 적어보련다. 첫째 불교를 계속 가르치고 싶다, 둘째 50분씩 명상을 매일 했으면 한다, 셋째 손자가 다양한 사물을 접하면서 두루 원만히 크도록 돕는 것이다.


불교를 계속 가르치고 싶은 이유는 이렇다. 내 아들부터 사유하는 능력이 깊지 못하고, 하지 않으려고 한다. 감각적으로 흐르고 있다. 또 병사들을 보면 가정교육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불교와 함께 기본 예의를 알려주며 내가 겪어 온 세상사를 쉽게 말해준다. 비록 한 귀로 듣고 흘리고 갈 망정 반복하면 남는 것 하나는 알고 제대한다.


요즘 부사관은 병사들과 비슷한 또래가 임관해 온다. 병사들이 부사관 알기를 우습게 안다. 위관 장교 역시 마찬가지다. 새파란 애송이들이 계급장만 달고 와서 끄덕대니 존경심이 우러날 수 없다. 나이가 많은 부사관은 세대차이가 나서 대화가 되지 않았다. 어른이라는 입장에서 군림했다. 병사들의 마음 붙일 곳이 없을 지경인 수컷들의 천지가 군대였다.


내가 손자를 키우다 보니 '나'에게 신경 쓸 여건이 안 된다. 다른 것은 다 양보해도 명상만큼은 꼭 하고 싶다. 그러나 몸이 그렇지 않았고, 게으름이 앞장서서 부추겼다. 무조건 앉는다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변명이지만 오롯이 내 시간이면 편한 마음에서 집중도 잘 된다. 그저 앉으면 마음이 조급 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나의 과제는 급해지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다.


14개월 된 손자가 '엄마'를 되뇌고 있다. 어젯밤에는 어미가 '엄마'를 부르도록 유도했다. 세상에서 온전하게 의지하고 기댈 수 있으며 안전한 엄마. 그 엄마를 손자가 부르고 있다. 딸이 좋아서 손바닥이 아플 정도로 두드리며 아이를 칭찬한다. 할머니도 돌아다니며 격하게 호응을 해준다. 물색 모르고 박수 소리에 엄마를 또 불렀다.


이 녀석이 무척 영특하다. 그래서 내가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 숨바꼭질을 하면서 사각기둥을 이용하여

숨으며 같은 방향으로 계속 가지 않는다. 그럼 손자는 엉금엉금 기어 오다가 가만히 정지한 채 할머니의 거동을 살핀다. 할머니가 손자의 반대 방향에서 엎드린 채 "어흥!" 하면 흠칫 놀라며 깔깔거리고 달아난다. 다다닥 잽싸게 기어가는 녀석을 뒤따라 가는 척하면 도망가기 바쁘다.


내가 사는 동구에는 공군비행장이 있다. 팬텀기가 매일 훈련하므로 보통 시끄러운 것이 아니다. 소리가 날 적마다 아이를 안고 소리보다 앞선 하늘을 쳐다보며 팬텀기의 정체를 알려주었다. 이젠 그 소리를 따라서 쳐다보며 아는 척을 한다. 또한 대구공항도 공군비행장과 같이 있어서 이착륙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여객기도 알려주고 있다. "저건 사람이 타고, 팬텀 기는 싸움할 때 타는 비행기'라고 설명해준다. 어느 날 남편이 이왕이면 F15기라고 바로 알려주라고 하여서 정정하기도 했다. 알아듣거나 말거나 반복하는 것이다.


이 손자도 손전화기에 민감하다. 그래서 손전화기가 낮에는 거의 내 손에 없다. 낮잠 자는 시간에 들여다보거나 화장실에서 슬쩍 확인한다. 보다가 들키면 손자의 손에 잠시 쥐여주고 슬그머니 자리를 떠버린다. 그러면 어른이 다루는 것처럼 되지 않으니까 꽥 꽥 소리를 지르다 집어던지고 할머니를 찾아서 "에이~"하며 크게 부르는 것처럼 들린다. 하루의 일과가 이렇다. 할머니가 어찌 자라나는 새싹을 감히 소홀히 할 수 있겠나.


손자가 자라면 병사가 된다. 비록 정치판에 관심도 두지 않는 나지만 손자가 살아갈 미래들이다. 그 작은 하나에 미력하지만 힘을 보태고 싶다. 그리고 가르치고 모범이 된다는 것은 성숙해지는 시간이다. 그래서 첫 번째로 불교를 가르치고 싶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쁘게도 2020년 1월부터 세월이 나에게 충전할 휴면기를 주고 있다.


사진: 정 혜.


대문 사진: 옥상에는 뒷집에서 가지가 뻗어 나온 모과나무가 마치 우리 집의 소유처럼 늘어져 있다. 단풍 드는 모과나무를 배경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 한 점이 없다.


아래 사진: 봄에는 고운 색깔의 분홍 꽃이 피어서 사진 찍고, 관찰하기 딱 좋다. 병사들이나 손자, 아들, 딸이 저 하늘처럼 또 모과 꽃처럼 순수하고 아름답게 살아갔으면 한다.



https://blog.naver.com/jsp081454/222149307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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