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내 곁으로

코로나 19, 니 먼데 17

by 정 혜

매달 셋,넷째 토요일 오후는 한자공부를 한다. 딸이 시내로 나간다는 말을 듣고 펄쩍 뛴다. 내 표정이 갈 것 같았는지 어투가 조금 완곡해졌다. 나는 데려다 주는 사위의 차 안에서 갈등이 일었다. 딸 말대로 상대는 인식을 못하고 넘어가지만, 감염된 누구는 치명적이라는 말에 비중이 실렸다. 매주 토요일마다 'ㅇ'과 선생님이 계속 만나고 있었으며, 그들은 현재까지 어떤 증상도 없다. 그래서 주저하지 않고 나설 참이었으나, 손자가 발목을 잡았다. 나야 괜찮지만, 면역력 약한 손자는 적극 보호해야 할 대상이므로.


나는 전화만 하고 결석해버렸다. 그리고 내 집 옥상으로 올라가서 화분에 물을 주었다. 가던 봄이 잠시 머물면서 나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지난 해보다 복숭아 꽃이 많이 필 것 같다. 나는 복숭아를 먹으면 씨를 화단에 버린다. 싹이 나오면 꽃과 향을 볼 심산으로. 눈 먼 씨 하나가 싹이 나서 재작년부터 꽃을 피웠다. 그 봉오리마다 곧 열리듯 말 듯, 급한 녀석은 반개하여 사진 찍기 적격이었다.


나의 망중한을 방해하는 손전화가 왔다. 한자공부 같이하는 변 선생. 어제 아파트 단지 둘레길을 같이 산책했다. "정혜님과 헤어진 후 엄마한테 갔어요. 글쎄 엄마의 감기가 수상하다며 저보고 보건소에 가보자고 하셨어요" 변 선생 모녀는 검사를 마치자 119 구급차가 귀가시켰고, 어머니 집을 완전히 소독하고 주변과 격리조치를 했다며 무척 심각한 목소리였다. 혼자 사는 변 선생도 어머니와 같은 상황으로 진행되었고, 스스로 자가 격리를 선택했다면서 나에게 한자수업을 못 간다고.


드디어 가깝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곧바로 사위에게 출석하지 않는다고 카 톡을 보냈다. 변 선생이 요즘 교인들끼리 만나면 서로 소속 교회를 묻는 것이 유행이라고 했다. "기독교장로회 어느 교회" 또는 "예수교 장로회 어디"를 밝힌다나. 변 선생은 '예장 명덕교회'라고 나한테 알려주었다. 그녀가 연일 불안에 떨고 있을 것이니 위로 문자를 먼저 보내야겠다.


변 선생이 결석한다며 전화했더니 선생님 왈 "운명으로 받아들여야지요. 구더기 무서버서 장 못 담굽니꺼" 우리 선생님은 나와 생각이 같다. 나는 나이가 먹을 대로 먹어서 아니면 간이 부어서 그런지 구분은 안 된다. 아무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부처님은 "무릇 태어나는 것은 죽기 마련이다" 그러면서 사고(四苦) 즉 태어나고( 生), 나이(老) 들어요, 아프고(病), 죽는(死)것이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이므로 고통을 받는다고 가르쳐 주셨다.


거기다 四苦가 나의 뜻대로 되지 않듯, "세상사도 내가 구(求)하는 것처럼 구해지지 않으니 '구부득고(求不得苦), 사랑하는 남녀가 헤어지고 부모와 자식이 죽어서 겪는 '애별리고(愛別離苦)',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고 꼴 보기 싫은 위인 하고는 부딪히기도 싫은데 만나야 하는 괴로움 '원증회고(怨憎會苦)', '오음성고(五陰盛苦)'라 하여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를, 혀로 맛보고, 몸에서 느껴지는 대로 자제하지 못하고 감각적인 대상에게 오감(五感)이 끌려 다니며 애태우는 괴로움"까지 합해서 팔고(八苦)라고 가르쳐 주셨다. 어느 것 하나라도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있는지. 나는 정말로 되는 것 없어 오기가 생겼다. 발버둥 칠수록 더 괴로워서 병이 났다. 두 손을 들고 무조건 항복했다. 내가 살아야 했으므로.


'내려놓는다'는 말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한다. 나는 단순하게 그리고 붓다의 가르침대로 실천했다. 그렇게 무겁던 어깨가 가벼워지면서 살맛이 났다. 관절 마디마디가 아팠으나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달라졌다. 근래는 아픔이 밀려오면 '아, 어디가 불편하구나. sati(알아차림)하여서 긍정적인 사고를 하자'라고 생각을 돌린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자식이나 남편, 부모의 성정이 그러한데 어찌 바꾸려고 그랬는지. 내가 바뀌는 것이 빨랐다. 코로나도 마찬가지다. 개신교도인 선생님이 운명으로 받아들인다는 말은 순순히 인정하겠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아갈 것이다. 병이 내 몸으로 침투하는 것을, 코로나 세균을 이겨내지 못해 극한 상황에 처해져도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럼 받아들이는 수밖에. 내가 겸허히 받아들여서 가족을 편안히 대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래야만 내 가족과 지인들의 힘이 덜 들 것 같다.


다른 분들은 각자 알아서 판단할 일이고.





사진: 정 혜


대문 사진은 보라빛이 감도는 연분홍의 목련 꽃,


아래 사진은 딸이 살고 있는 아파트 전경.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이라 좋아하는 장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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