좆같은 새끼

by 정 혜


법당에 있던 난로가 없었다. 이런 일은 군 법당에서 왕왕 있던 터라 애 태우지 않아도 된다. 병사들이 오면 알 일이다 싶어 법당 문을 닫았다. 그리고 법당 옆 숲 속으로 갔다. 지난해는 키 큰 나무들 틈새로 부끄럽게 고개를 내밀고 있던 보라 빛 꽃이 있었다. 이름은 모르지만 그 야생화가 나를 기다릴 것 같아 은근히 기대되었다. 시기가 이른 지, 내가 못 찾았는지 꽃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눈에 뜨이는 취나물을 열심히 뜯었다. 나는 잎을 뜯을 때마다 풍겨 나오는 쌉싸름한 향내를 참 좋아한다. 나의 옆을 스치며 지나가는 어떤 사람의 향수보다 더 상긋하면서 신선했다.


오늘 법문은 무엇이 좋을까. 나물을 뜯으며 궁리했다. 얼른 2주 전 식당에서 피자를 먹으며 병사들의 대화가 생각났다. 내가 듣기 거북할 정도로 욕을 숱하게 하며 웃고 떠들었다. 맛있게 먹고 있는 장소에서 분위기를 깰 수 없어서 조용히 있었다.


먼저 한 병사에게 질문했다. “자네들이 말을 적마다 '존나, 또는 졸나' 를 계속 사용하더라, 그것이 무슨 의미이지?” “어떤 뜻인지 모릅니다. 그냥 쓰는 대요.” 그렇다면 어른인 내가 아주 예민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상스러운 욕이다. 나의 견해로 그 욕의 어원을 병사들에게 풀어보겠다고 했다.


'존나‘ 나 ’졸나'의 근원은 '좆같은 새끼'의 '좆'이다. 다시 '좆'이 무엇이냐고 병사들에게 물었다. 정확한 답 대신 뜻은 안다고 대답했다. “좆은 여러분들의 '음경(陰莖)'이고, 영어로 'penis'. 우리나라는 어른들의 음경은 '물건' 또는 '양물'이라고 점잖게 말하며, 어린아이들은 ‘꼬추’”라고 했더니 쑥스러워서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부끄러워할 부정적인 단어가 아니라 긍정적으로 표현하며 드러내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왜, 우리 조상님들은 남녀 생식기와 성행위를 비하하여 사용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병사들 책임이 아니라, 어른들이 잘못 인식한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입에 올리는 욕을 예로 들었다.


"좆같은 새끼", "개새끼", 우리나라 대부분의 영화는 거침없이 욕을 하는 장면이 많아 보기가 싫다. 중고등학생은 이미 익숙하게 사용하면서 오히려 욕을 하지 않는 것이 되려 이상할 정도로 여긴다. 그리고 초등학생들도 모방했다. 공공연히 하는 말이 욕이다. “장가가서 sex 안 할래? 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물었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6.25 이후 미국의 자본주의가 물밀듯 들어오면서 'play boy, penth house'가 우리의 정신을 혼란하게 만드는 주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춘화(春畵)'가 있지만 공공연히 가판대에서 팔지 않고 암암리에 팔았다. 나는 호화찬란한 화보가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성윤리가 퇴락한 것도 사실이니까.


붓다는 sex를 '자식을 만드는 성스러운 일'이라고 가르쳤다. 재가자나 범부 중생들은 성스러운 일에 ‘쾌감을 곁들여 즐길’ 수 있지만, 출가자는 절대 금욕할 것을 계율로 못을 박았다.


나는 불교를 공부하면서 '욕은 저주'라고 파악했다. 내가 50년 전에는 전라북도 깊은 산골자기에서 몇 년간 살았다. 그때 집안 이모가 돼지우리를 치우면서 돼지에게 무지막지하게 욕을 퍼붓는 것을 들었다. 나는 욕인 줄도 모르고 방 안에서 배를 쥐고 웃었다. 잊히지 않는 말, 오래전 전라도에서 들었던 욕을 말해주었다. 지금은 나이 많은 어른들이 사용하는 것 같았고, 젊은 세대들은 거의 사용하지 않아 병사들은 몰랐다.


'벼락 맞을 놈아', '염병하네', '급살 할 놈', '오살할 꺼', '육시랄'. 조선시대는 사화가 잦았던 탓에 사대부들이 전라도나 다른 지역 오지(奧地)로 귀양을 많이 갔다. 오살(五殺)은 ‘죄인의 머리를 찍어 죽인 다음 팔다리를 베는 사형 방법’이고, 육시(戮屍)는 ‘이미 죽은 사람의 시체를 머리, 두 팔, 두 다리, 몸을 찢어 여섯 개로 나누어 소금에 절여서 각처에 돌렸다’는 형벌이다. 멀쩡한 사람을 오살이니, 육시 한다는 것은 저주이지 무엇이겠나.


나주시에 사는 50 후반 지인에게 욕하는 것에 대해 말했더니, 그도 역시 뜻을 모르고 사용했다나. 그는 ‘염병하네‘를 잘 썼다. 차분히 설명을 해주니 모르는 것을 깨우쳐 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염병하네’의 염병(染病)은 ‘장티푸스‘를 말하며 ‘장질부사(腸窒扶斯)‘라고도 한다. 티프스 균이 장에 들어가 급성 법정 전염병을 일으킨다. 곧 전염병에 걸리라는 말이다. 서로 즐겁게 대화하면서 '벼락 맞아라' '급살(急煞) 하라'는 ‘갑자기 죽어라’는 뜻인데, 욕은 모르고 사용할 말이 확실히 아니다.


'새끼'도 그렇다. 내가 낳은 자식이나 짐승이 낳은 새끼를 '새끼'라고 부른다. 결코 부정적인 용어가 아니다. 나는 내 손자가 예뻐서 “이쁜 내 새끼”라고 한다. 그런데 "좆같은 새끼" 또는 "개새끼"라고 얕잡아 표현한다. "자네들은 개의 자식이니? 자네들 baby dog야? 자네들의 2세가 baby dog냐고?" 상대를 얕잡아 보거나 무시하는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모두가 성스러운 일의 결과로 세상과 인연을 맺은 자식들이고 부모다. 뜻 모르고 구업(口業) 쌓는 행위는 결코 해서 안 되겠다.


저주는 구업이라는 예금통장에 악업을 쌓는 것이다. 돈은 늘어나는 액수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악업은 고약한 습관이 되어 '하는 말마다 부정적인 말과 욕'을 끊임없이 사용하였다. 욕을 많이 사용하면 사람의 인상이 험악하게 바뀌어진다. 생각이 있는 사람은 그의 곁을 하나 둘 떠나게 된다.


말에도 품격이 있다. 품격은 평소에 좋은 생각을 하여야만 입에서 자연스럽게 말이 나온다. 품격 있는 말이나 고운 말을 하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다. 고품격의 말을 해야 행동도 고상해진다. 병사들에게 이런 어원을 가진 말을 모르고 계속 사용할 것이냐고 물었다. 상대가 나에게 욕을 하니 나도 약이 올라서 같이 욕을 퍼붓게 된다. 그런데 음경을 비하해서 상대를 욕하는 것은 결국 본인의 음경을 욕하는 것이고, 자신을 저주하는 것이다. 놀라는 빛이 확연히 보였다.


어제는 모임에서 나도 웃자고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며 생각지 않던 말이 입에서 나왔다. 어릴 적에 뜻 모르고 사용했던 욕이 불쑥, "문디이 가시나 지랄하고 있네" 나는 농담을 하면서 다 함께 재밌게 웃었지만 속으로 섬찟했다. 문둥이도 부족하여 간질병으로 발작하라니 이런 극악한 저주가 어디 있나. 우리 병사들은 문둥병을 거의 몰랐다.


법회 마치는 목탁을 치면서, 병사들이 '왜 나만 그래야 해요?'라는 질문이나 반발감이 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뒷정리하는 병사들에게 '왜 나만 그래야 해요?'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저주하는 악업은 욕하는 상대가 쌓는 것이냐, 듣는 내가 쌓느냐"라고 물었다.

당연히 상대방이라고 했다.

"그럼, 악업이 쌓인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욕하는데 계속 동참할까?"

"아니요."




사진: 정 혜.


대문 사진: 홍단풍의 열매

아래 사진: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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