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는 곳 마다 실력있는 트롯 가수들의 노래가 나왔다. 나는 '미스터 트롯'은 시청하지 않았다. 글 쓰기 바빠서 컴퓨터를 마주하고 있으면서 남편이 시청할 때 내 귀에 종종 들렸다. 가끔 지인들과 식사하러 식당에 가면 주인이 재방영을 시청하고 있어서 덩달아 보게 되었다. 얼마 전에는 성악가가 불렀던 '그대 향한 사랑'이 방에 있는 내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들었다. 명상을 본격적으로 하면서부터 가사가 있는 노래는 멀리 하고 있다. 가사와 곡이 머리에서 맴돌아 산란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해 5월, 지인이 출연하는 ‘가곡 발표회’에 나를 초대했다. 솔직히 내가 떼를 좀 썼다. 맨 앞줄 중앙에 앉았다. 지인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그와 함께 공부하는 분들의 노래부터 들었다. 연습생에서 시작하여 실력이 더 나은 수강생들로 이어졌다. 한 아마추어가 ‘그대 향한 사랑’을 불렀다. 나는 이 곡을 무척 아끼고 사랑한다.
2002년 KBS TV는 수목드라마로 ‘장희빈’을 방영했다. 김 혜수 씨가 장희빈으로 등장하여 말도 많았지만 훌륭히 소화해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주제곡은 대중가요지만 수준 높은 명곡이다. 구구절절 가슴에 와 닿는 가사와 성악가의 웅장하면서 화려한 음색을 듣는 순간 매료되고 말았다. 가사를 음미해보았더니 흠 잡을 데 없는 시였다. 그 이후 애창곡이 되어 반복해서 듣고 또 들었다. 지금도 변함없이 좋으며 작사, 작곡, 곡명이 다 잘 되었다고 생각하는‘불후의 명곡‘이다. 그런데 2016년 9월부터 수필을 배우면서 습작 중에 옥 의 티를 발견했다.
하룻밤의 꿈 이었던가/ 새벽안개 속에 사라진/ 나의 붉은 치마폭에 안기어/ 동정 끈 입에 물던 님 은/ 모두 나의 욕심이더냐/~~
‘동정’은 한복 용어이다. V 셔츠로 말하면 좌우 목 부분을 말한다. 하얀 천으로 빳빳한 종이를 감싸서 저고리 깃에 덧대어 꿰맨 것을 동정이라 부른다. 동정에 때가 타면 뜯어내고 새 동정으로 바꿔 달아 새옷처럼 입는다. 사전은 ‘깃 위에 조붓하게 덧대어 꾸미는 하얀 헝겊오리‘라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작사가는 ’동정 끈‘이라고 표현했고, 성악가들과 그 노래를 아는 사람들 모두 의심 한 번 하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 나 또한 몰랐으니까.
옷고름이 끈이다. 겉섶과 안섶에 길게 달려 있다. 옷고름은 겉섶과 안섶의 벌어진 품을 여미는 역할을 한다. 양쪽 끈을 아래위로 교차하면서 멋스럽게 묶으면 된다. 매듭지은 후 늘어뜨려진 옷고름을 ‘입에 물다’는 말이 되지만, 동정은 입으로 물고 싶어도 물 수가 없는 곳이다. 그래서 ’옷고름 입에 물던 님’으로 수정해야 맞다. 아마도 남자 작사가가 한복 용어를 정확히 모르고 쓴 것 같다.
우리가 모르고 남발하는 말 중에 ‘아빠’가 으뜸이다. 이것 참 마음에 안 든다. 아빠는 유아들이 처음 말을 배울 때 쓰는 단어다. 다음이나 네이버 국어사전을 검색하면 ‘어린이 말로, 아버지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로 정의하고 있다. 아빠는 1960년대 ‘아빠 안녕’이라는 영화에서 시작되었고, 영어식이기도 하다. 근래는 아빠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아버지’라 부르던 그 말조차 뒤로 밀려났다. 현재는 어른, 애 모두 아빠로 통한다. 심지어 자신의 남편을 부를 때도 ‘아빠’다. 하기야 영화에서 그렇게 불렀으니 따라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시절이 변해서 아빠라고 부르는 것은 좋다. 성인이 되었으면 다른 언어로 호칭해야지 혼인하여 2세를 낳았어도 그대로 부르는 것은 격이 맞지 않다. 남편은 내 아이 아빠이지 나의 아빠가 아니다. 아빠는 ‘격식을 갖추지 않아도 되는, 정답게 부르는 말’이라고 사전에는 표기하였다. 아버지는 격식을 갖추면 ‘아버님’이 되고, 부녀나 부자간에 사용해도 능히 다정하다. 편협한 추측은 어른이 되어도 변하지 않는 언어습관 탓이다.
말(言語)은 찰나의 생각이 입을 통해 나오는 것이다. 또 오랜 시간 사유가 있은 뒤 말로 의사(意思)를 표현하므로 본인의 주관이자 사상이다. ‘삼세 버릇이 여든을 간다. ‘는 속담도 있다. 나는 어릴 적 습관이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유치(幼稚)하다‘ 표현한다. 그런데 요즘 어른이면서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 수두룩하다. 나는 언어 습관에서 비롯되었다고 강하게 불평을 털어놓는다.
내 남편은 아버지라는 말을 싫어했다. 짐작컨대 성인이 된 자식을 받아들이기 어렵거나, 아니면 나이 드는 것이 거북하다는 뜻이리라. 나는 삼남매를 두었고, 아버지라 칭하는 교육을 철저히 시켰다. 지 아버지가 난색을 표명해 예전으로 돌아갔다. 결국 자식의 언어습관은 부모가 퇴보시키는 것이다. 나는 알면서도 어쩔 수 없어 엉거주춤 지나게 되었으며, 다른 이들은 정확한 의미도 모른 채 사용한다고 짐작한다.
한 번은 혼인한 딸에게 다시 아버지라 부르라고 시켰다. “내가 알아서 할 사안이니 간섭하지 마” 딸이 아주 맹랑하게 대답했다. 사위가 운전석에 앉았는데도 그리 나왔다. ‘나도 어른이니 배 놔라, 감 놓으라 하지 말라 이거지.’ “어머니가 말씀을 하면, 알겠다든가 아니면 생각해보겠다고 대답하면 될 일을 그렇게 뾰족하게 나서야 하니” 딸에게 일침을 놓으면서 가정교육도 어릴 때 하는 것이지 30 넘은 자식에게는 지켜보는 것이 마땅하다 느껴졌다. 웬만하면 조용히 기다리리라 마음먹으면서도 뜻대로 되지 않아 언성 올라가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생각난 김에 하나 더,
오빠는 남매(男妹) 간, 즉 여동생이 손 위 남자형제를 부를 때 쓰는 말이다. 남녀가 사귀면서 ‘오라버니’, 또는 ‘오빠‘로 통칭되고 있다. 이것 또한 인정한다. 그러나 부부의 연을 맺었으면 필히 상대방을 달리 호명해야 상식이다.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도 남편을 오빠라고 불렀다. 입에 배여서, 편하고 친근하다는 이유 등에서.
남편 여동생이나 누나는 ‘시누이’라고 한다. 몇 년 전 시누이 딸이 시집을 가서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와 있었다. 이 생질녀는 조카사위를 연애시절부터 혼인한 오늘날까지 오빠라고 계속 불렀다. 그런데 시누이 내외가 가타부타 딸의 말버릇에 대해 고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오히려 한 술 더 떠 외손녀가 있는데도 “오빠한테 얘기해라”고 대화를 이어갔다. 내가 넌지시 생질녀에게 “연애할 때는 오빠라 불러도 되지만, 혼인하면 미혼에서 기혼(旣婚), 처녀가 어른으로 신분이 상승되는 것이란다. 어른은 어른다운 용어를 써야 한단다. ‘여보, 당신’으로 바꾸도록 노력해봐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의 오빠를 내 자녀가 부를 때는 뭐라고 부르지? 외삼촌이야” 생질녀는 조용히 듣기만 했다. 현재 큰딸이 초등학교 5학년인데도 오빠라고 불렀다. 나만 별난 외숙모가 되어버렸다.
이뿐만 아니다. 방송국의 아나운서들조차 정확한 어법으로 어휘를 구사하지 않고, 문법에 맞는 글을 써서 낭독하는 것이 아니었다. 모를 땐 몰라서 넘어갔지만 조금 알고 나니 귀에 거슬리는 것이 한 둘이 아니다. 요즘은 나도 외손자를 키우면서 아빠와 엄마라는 용어 대신 아버지, 어머니라 하려니 입에서 얼른 나오지 않아 신중을 기하고 있다. 매번 아기에게 일러주는 어머니 아버지가 은근히 더듬거려 졌다. 나는 아버지와 아빠 두 단어가 다 입에 익었다. 그런데 근래에 쓰던 아빠가 먼저 튀어나왔다. 이러하듯 말은 습관에서 대를 이어가니 우리나라 전체가 들썩거릴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가 잘못된 언어를 사용하고 있어 나타나는 현상이라 여겨진다. 근래는 날조된 사자성어와 줄임말이 유행하고 있다.
나는 우리 국어 문법을 잘 모른다. 그러나 최대한 바르게 사용하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원칙을 알고 지키면서 변형된 언어를 사용하자는 말씀이다. 기본도 모르면서 어눌한 말장난은 한 마디로 유치하다. 물론 가볍게 듣고 무심히 넘어가면 될 일이지만, 그 결과는 무엇이 올바르고 그르다는 것을 알지 못하여 발생되는 고운 말, 좋은 말, 상대를 배려하는 말을 할 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글을 쓰는 작가들도 ‘동정을 입에 물다‘처럼 자칫 잘못 알고 쓸 수 있다는 결론이다.
12월 초, 또 초대장을 보내주었다. 2019년 마무리 발표회였다. 그는 동심초를 불렀고, 노래끝 부분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 가~" 힘겹게 산마루 꼭대기를 넘었다. 두 손 맞잡은 내 손바닥에서 땀이 고였다.
'그대 향한 사랑' 가사 전문
하루 밤의 꿈이 였던가 새벽 안개 속에 사라질
나의 붉은 치마폭에 안기어 동정끈 입에 물던 님은
모두 나의 욕심이더냐 달도 차면 기울어 지듯
기나긴 밤 모진 세월 참아낸 지난 내 눈물이 서러워
내가 온줄 아오 난 줄 아오그대 잠든 창가에 바람 불때면
사모했던 그대 그대 그리워 그대 품에 들고픈 숨결이라고
가지마다 그림자 지고 무명치마 노을 번지때에
칠보단장 설래이던 그날이 바로 어제 아침같은데
내가 온줄 아오 나인줄 아오 그대 잠든 창가에 바람 불때면
사모했던 그대 그대 그리워 그대 품에 들고픈 숨결이라고
천하를 가진들 무슨 소용있나 님의 눈속에 내가 살수 없다는 것을
오 내가 떠나가도 잊지는 마오 그대 향한 나의 사랑만은
나를 찾아주오 날 찾아 주오 눈물로 기다릴 다음 세상에는
사모했던 그대 그대 그리워 그대 품에 들고픈 숨결이라고
나 세상 떠나 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