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니 먼데 18번째
사위가 12시 40분쯤 아파트 출입구에 내려주었다. 요즘 내가 11층에서 내려다보며 벚꽃과 보라 빛을 띤 연분홍의 목련 봉오리가 활짝 피면 사진 찍을 연구를 했다. 지금이 적기였다. 나는 가방을 둘러맨 채 화단으로 들어갔다. 사진을 찍으며 제법 시간을 보냈나 보다.
"차에서 벌써 내렸는데 왜 이제 들어와" 딸이 내민 손톱이 새파랗다. 어멈은 손자를 업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이 역력했다. 어머니인 내게 말조심을 하려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나는 납작하니 꼬리를 땅에 댄 채 "얼른 손 씻고 아기 받아줄게" 말을 하면서 딸의 눈길을 피했다. "이유식 준비해야 하는데, 애는 울어대는데 혼자서 어떻게 하라고 늦게 들어와~. 됐으니까 빨리 샤워하고 나와" 코로나가 무섭긴 무섭다. 나는 알았다고 대답한 뒤 부리나케 옷을 벗었다.
나는 첫 아이가 쌍둥이다. 다들 힘이 들어서 어떻게 키웠느냐고 물었다. 내 자식이라서 엉겁결에 멋모르고 키웠다. 지금은 기억이 거의 없지만 다행히 아이들이 순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지금과 시대적 상황도 많이 달랐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전념하는 시절이었고, 또 나는 전업주부였다. 남편이 출근하면, 먼저 분유를 태워 누운 아기의 고개를 모로 돌려서 젖병을 입에 물렸다. 둘이라서 안으려고 애쓰지 않았다. 젖을 먹는 동안 기저귀부터 빨았다. 아이들이 누워 있는 곳으로 들랑날랑하며 일을 했다.
남편 근무지가 김포공항 경비부대였다. 관사에 이사하고 보니 수도꼭지는 있으나 배관이 매설되지 않아 물 구경을 할 수 없었다. 부대 수조차가 매일 물을 실어 날랐다. 세탁기에 물 공급은 내가 했다. 그래도 손으로 빠는 것보다 나았다. 그런 곳에서 둘을 키우며 일 년을 살았다. 고작 한 아이를 데리고 당황하는 내 딸을 보면서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말을 가두기 바빴다.
나는 과거에 어쩌고 저쩌고는 일절 하지 않는다. 어느 하루는 "엄마는 우리를 어떻게 키웠어? 나는 하나도 벅찬데. 많이 힘들었지?" 그제서 "네가 알아주니 고맙구나" 더 이상 긴 말을 하지 않았다. 종종 손자가 호강하는 모습을 보면 목이 멘다. 내가 풍족하게 키우지 못해서 지난 일에 가슴 아파하면 "우리를 잘 키웠기 때문에 연연할 것 없어" 나는 그래도 한구석에는 미진했다. 그러나 흘러간 물은 잡으려고 해도 잡을 수 없으니 매달릴 필요 없다.
현재와 과거는 물에 씻겨져 나갔다. 손자가 나를 보고 엎드려서 손과 발을 휘저으며 구원 요청을 마구 했다. 나의 세상 근심은 애초에 없었으니 해어화(解語花)와 즐겁게 놀 일만 남았다. 내 아이는 키우기 바빴고 살뜰히 돌보면서 애정표현을 못하였지만, 손자는 여유롭게 관찰하며 긍정적으로 대할 수 있는 큰 이점이 있었다. 손자는 내가 돼지의 킁, 킁 대는 소리를 흉내 내면 깔깔거리며 자지러진다. 손자가 좋아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행복함을 느끼며 깨닫는다. 엄마의 마음이 평안하면, 자식은 안정적이며 원만하게 자란다는 것을 배우면서.
사진: 정 혜
대문 사진은 자목련 꽃,
아래는 동백꽃. 비 오는 날 찍었더니 빗방울 머금은 모습이 함초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