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일 기념

코로나 19, 니 먼데 19

by 정 혜

딸이 새 아파트로 이사한 후 짜증의 강도와 빈도가 잦아졌다. 나의 말끝을 물고 늘어지고, 시비할 건수를 찾아 헤매는 배고픈 야수였다. 나 또한 개떡 같은 머시기로 인해 집에 붙들려서 옴짝 달싹을 못하니 죽을 맛이었다. 사위도 그랬을 것이고.


내가 선수를 쳤다. 아침 식사를 마치면 내가 손자를 볼 것이니, 두 사람은 이삿짐 정리를 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아기가 자면 나도 도울 테니 무얼 하면 되는지 알려 달라고. 한참 지났을까. 어느 구석에서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딸과 사위의 목소리가 상당히 조심하는 듯했다. 나는 호기심이 생겨서 손자를 안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화산이 폭발했다. 표출할 시기를 노리다 드디어 터져버렸다. 용암이 분출되니 산 아래 주민들은 대피하기 정신없었다. 불덩어리들이 끊임없이 방향을 가리지 않고 튀어나왔다. 용암들이 거대하게 파도처럼 밀려서 내려왔다. 몇 시간이나 계속 흘러내렸다.


딸이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 급히 달려왔다. 손자가 부부의 싸움 소리에 울음을 터트렸던 것이다. "어른이 옆에 있는데도 언성을 높이다니. 이런 모습 보고 싶지 않다! 당장 신천동으로 갈란다" 나는 평소에도 목소리가 크다. 어머니가 화났다는 표시로 강하게 힘주어 말했다. 딸은 "엄마, 미안해. 나 속 터져 죽겠어" 삐질삐질 운다.


난 딸을 두둔하지 않는다. 사위는 내 딸과 몇 번의 부딪히는 소리를 들어 봤을 때 변화하는 것을 무척 주저하였다. 혼인하기 전에 습득한 가정교육과 학교에서 배운 것, 짧은 기간 동안 직장을 다니면서 듣고 쌓은 것이 다였다. 요지부동이었다. 성질 급한 딸은 사위와 살면서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듯 녹아내리고 있었다. 내 딸이 인간으로 변모하는 것이 보였다.


사위는 조금이라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으면 견디지 못하고 몇 날 며칠 마음앓이를 했다. 딸이 물러설 수밖에 없는 요인이었다. 결이 고운 사위다. 결이 곱다는 것은 긍정적인 표현이며 부정적인 요소로 발전하면 머리가 아픈 사안이다. 결론을 내리면 딸은 한 번의 정리정돈으로 일주일을 간다, 사위는 매일 깔끔하고 네모 반듯한 환경을 요구했다. 대신 사위가 깨끗한 것을 유지하기 위해 몸을 많이 움직였다. 딸은 천천히 치우자는 주의이다.


딸은 혼인 전에도 정리정돈을 잘하지 않았다. 잘 치우는 남편 만나면 되니까 걱정은 붙들어 매라고 말대꾸를 했다. 사위는 그랬다. 하지만 사위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다. 지금은 코로나 여파로 집 안 일을 도와줄 수 있지만, 4월 초 어린이 집이 개원하면 일정이 빡빡하여 내심 도와주지 못할까 봐 조바심이 났던 모양이다. 꾀만 파는 아내가 예쁜 것도 경우에 따라 다를 것이다.


딸은 사위에게 '너의 마음 이해하니 너도 나의 깊은 생각을 헤아려 주지 못했다는 말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사위는 그 말을 끝내 하지 않았다. 실천하지 못하면 거짓말이 된다고. 고지식한 사위의 말을 거실에서 들었다. 나는 속으로 '에 라이~ 이 맹추야. 아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지 머시 중허냐고~. 결론 내리지 못한 싸움은 집안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다음 날 목요일은 손자 탄생 200일이었다. 딸은 사위에게 손자의 200일을 활용하는 것 같았다. 딸 부부는 낮에 화해를 했는지 사위가 케이크를 사서 들고 들어왔다. 내 딸은 직장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공무원이다. 그런데 육아와 고지식한 남편을 핑계 삼아 우울증이 와있었다. 특히 개떡 같은 역병 때문에 딸이 겁을 먹은 채 대문 밖을 나가지 못했다. 사람 많은 곳에 가면 죽는 줄 알아서 가구며, 봄옷 구입도, 아이쇼핑, 카페에 가서 수다조차 떨 수 없었다. 내가 산후우울증을 생각하지 못했다. 셋이 케이크를 먹으며 분위기가 쇄신되어서 나도 사위 대하기 아주 편해졌다. 사위가 빨리 평정심을 찾아서 정말 고맙다.


사위가 "당신의 깊은 마음을 이해 못해서 미안해"라고 딸에게 말을 하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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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정 혜



11층 거실에서 내려다본 아파트 입구.

벚꽃이 조금 전까지 내린 비로 바닥이 연분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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