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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Nov 27. 2021

첩보 명 : 걷어내기

  남자가 돌아섰다. 매장으로 나갔다. ‘기회다 ‘ 그는 이내 주방으로 왔다. ’실행불가다. 느긋하게 대비하여 서두르지 말자‘ 사장이 등을 보이는지 예의 주시하였다. 냉장고와 환풍기, 냉방기 소리만 요란스럽다.


  사장이 주방을 나가서 계산대 의자에 앉았다. ‘앞에 여자는 허옇게 떠있는 것을 그냥 사용했나 봐’ 혼자 구시렁거리며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이모, 그거 왜 버려요!” 사장이 벼락같이 고함을 질러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 얼마나 놀랐는지 얼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 겨우 잔뜩 주눅이 들은 채 ”이거 몸에 좋지 않아서…“ 을의 뒷말이 이어지기도 전에 ”두 말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하세요!“ 힘이 잔뜩 들어간 눈으로 명령했다. 그 사람은 갑이다.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을은 찍 소리도 못한다. ‘모두가 걷어내라는 것을 저 화상만 모르나, 아니면 알고도 주먹밥의 양을 늘리려고 꼼수를 부리는 건가…’ ‘며칠 전 TV에서도 요리하기 전이나 조리한 후 식었을 때 떼 내라고 하더구먼’ 옳은 일은 갑의 눈치 봐가며 해결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곳은 2~3일 간격으로 주먹밥용 쇠고기 장조림을 만든다. 을이 조리할 땐 사장의 눈을 피해 웬만한 기름기는 다 잘라낸다. 간장이 끓어오르면서 위에 뜨는 부유물은 수저로 퍼내기도 하지만, 냉장고에 두었다 꺼내서 빙산 같은 기름을 제거하면 된다. 사장은 그 빙산을 그대로 두라는 것이다. 쇠고기나 돼지기름은 포화지방이라서 몸 밖으로 배출이 되지 않는다. 체내에 남아서 혈관이나 내장에 응고되어 쌓이면 뇌혈관, 심혈관계 질환의 원인이 된다. 을이 이런 사실을 알면서 모른 척할 수 없어서 팔을 걷어붙였다.


  007 영화를 방불케 하는 작전을 자주 감행했다. 주방에는 숀 코네리가 북극 상공에서 빙산을 내려 보듯 긴장감이 감돌았다. 을의 상황 설정은 어떤 음모를 획책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영화 배경음악만 없다. 빙산 제거는 악당 소굴을 쳐부수는 007과 같아서 매번 을은 전쟁터의 긴장된 북소리가 들렸다. 사장이 느닷없이 소리를 질러대면 힘없는 을은 속수무책이므로 번갯불에 콩 구워 먹 듯 서둘렀다. 걷어내려는 순간 주문을 받으면 슬그머니 냉장고에 도로 집어넣었다 빼냈다 여러 차례 반복하며 잰걸음을 걸었다. 쇠고기 장조림은 하얗게 얼어붙은 빙산이었다.


  사장이 손님 없는 매장을 지키고 있다. 전광석화 같은 속력으로 하얀 고형물을 없앨 기회다. 힐끔 매장을 쳐다봤다. 그는 셀 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안심이다. 작업대 냉장고에서 용기를 꺼낸 후 구석진 곳부터 납작한 것으로 찔러 넣어 최대한 넓게 떠냈다. 자잘하게 부서진 조각은 따로 얼려서 걷어내면 된다. 쓰레기통에 폐기한 것도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아래위를 뒤적여 두었다.


  저거 뭐지. 구정물이 하수도를 덮은 스탠 뚜껑 위로 꾸역꾸역 올라왔다. 갑 왈, 튀김기름이 굳어져 하수도를 막아서 그렇다고 조용히 말했다. 처음 시간제 일을 배울 때도 역류하여 물었더니 ‘기름을 버렸다 ‘는 사장의 말이 이해되지 않아 예사로 넘겼다. 얼마 전 사장이 업무를 마감할 즈음 개수대로 뭔가 잽싸게 쏟았다. 그제야 감이 잡혔다. '아, 업자들이 오 폐물을 몰래 버린다더니 그 소리가 정말이었네' 고약한 사람 같으니라고… 


  네 살배기 자식을 키우는 아버지가 우선 먹기 곶감이 달다고 눈앞의 이익만 챙기다니. 나중에 다 버려진 이 국토를 아들에게 물려주려고 저러는 거야, 나만 아니면 된다는 뜻이야 뭐야. 을은 조심스럽게 폐유를 비누 만드는 공장에 주면 된다는 말에 언제 그 짓 하느냐고. 을은 당장 고발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러나 ’일자리 구하기 힘든 여건에 60 중반을 넘긴 을을 채용할까’에 생각이 미치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돈이 긴히 필요했던 때라 비겁했지만 두 눈을 감고 입맛을 다시며 돌아섰다.


  오전 일을 하는 분은 그 허연 조각들을 뜨거운 밥에 마구 투하하여 비볐다. 그녀가 퇴근한 후 장조림 그릇을 보면 북극 바다였다. 을도 007이 악의 무리와 맞서듯 사장과 오전 이모 모르게 기름덩어리를 쓰레기통으로 직행시켰다. 007 영화는 거의 악당에게 붙잡혀 곤욕을 치르다 반전하는 묘미가 있다. 사장이 을에게 마음대로 버린다고 눈을 부릅뜨면 되받아칠 대사까지 준비했다. 가게가 번창하려면 고객에게 신뢰감이 드는 음식을 판매해야 한다며 도덕적인 윤리를 앞세워 강변하리라 단단히 별렀다. 그런 일은 없었다. 을이 환경호르몬이 넘쳐나는 주방에서 만든 장조림 간장만이라도 안전하게 지키려면 들키지 않는 것이 최상이다.


  을은 빙산 덩어리나 음식찌꺼기, 주문서나 일회 용기를 최대한 분리했다. 사장은 을이 철저히 가린다는 것을 간파한 눈치였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떡볶이, 라면, 어묵 국물 등을 무조건 개수대로 부어야 해서 빨간 떡볶이 빛깔처럼 가슴이 쓰리고 따가웠다. 작은 실개천이 죽어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오폐수를 마구 버리기 때문이다. 또 일회용품들이 쌓여서 하천의 흐름을 막고, 물은 흐르지 못하고 고여서 썩기 때문에 생수를 사 먹게 된다. 안전할 것 같은 생수에서도 소독약 냄새가 난다. 을은 알면서도 쏟아야 했기에 혼잣말로 ‘미안합니다 ‘를 수없이 되뇌었다. 솔직히 시간제 일을 하고 싶지 않은 가장 큰 원인이다. 007이 간악한 무리들을 몰아내듯 해야만 했으나 그럴 수 없는 입장이 견디기 힘들었다.


  지하에 파묻어도 썩지 않는 것들이 많다. 을이 분리해 준 쓰레기 봉지에 사장은 일회용 용기와 비닐도 넣어서 밖에 드러냈다. 을의 분리수거는 소용없었다. 퇴근하면서 옆의 가게들을 눈여겨보면 역시 똑같았다. 언제 적에는 이탈리아 로마시대 군화가 쓰레기 매립장으로 추측되는 곳에서 발굴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천 년 이상 지났어도 가죽이 썩지 않았다는 것은 깊이 사고해야 할 문제이다. 


  자연은 인과응보가 분명하다. 인(因)과 연(緣)을 따라 발생했다 소멸하기를 반복하며 우리에게 주는 결과가 심각 그 이상이다. 포화지방이 많은 음식을 탐했던 인(因)은, 성인병이라는 과(果)를 초래하여 병마와 싸우는 응보(應報)를 겪는 것이다.


   을은 자연을 사랑하며 아끼려고 노력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을의 자식에게는 더럽혀진 산하를 넘겨주고 싶지 않아서다. 거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가전 신제품류를 사용하지 않아 부끄러운 것보다 지구온난화를 더디게 한다는 자부심으로 산다. 뚜껑 있는 그릇을 사용한다. 아주 얇고 가벼운 주머니를 들고 다니며 비닐을 멀리하려고 애쓴다. 음식찌꺼기는 국물이나 쉽게 으스러지는 것, 큰 덩이는 잘게 부수어 변기에 붓고, 화단에 구덩이를 파서 넣고 거름으로 활용한다. 을 한 사람이라도 후손들을 위하여 조심하자 싶어 버텨내는 것도 힘겹다. 작금의 현실은 을의 노력이 빙산의 일각이라 많이 속상하다.



                        사진: 정 혜.



대문 사진: 2020년 7월 24일 오전 8시 30분에 찍은 금호강의 모습이다. 

비가 잦았던 작년에는 사진에 보이는 잠수교가 몇 차례 잠겼다. 그때 부유물이 강가로 무수히 몰려다니는 것을 보며 속이 참 많이 상했다. 평소에는 물길이 흐르지 않던 넓은 갈대밭이 파괴되어서 가을에 갈대를 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버렸다.


아래 사진: 금년 한 나무에서 무려 세 차례나 피었는 목련 꽃.

9월 14일 세 번째 봉오리가 서서히 펼쳐지는 것을 관찰하였다. 내년 봄에 목련 꽃이 제대로 필 지 의문이다. 

   


https://blog.naver.com/jsp081454/222580415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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