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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Nov 20. 2021

밥 쫌 해무라

   "엄마, 안 가면 안 돼?" 11월 셋째 목요일 밤 무조건 선동이의 아파트 현관문을 닫았다. 금요일 오후 서울역에서 4호선 지하철을 타려고 두리번거렸다. 역사는 몇 개월 전보다 더 복잡해져 내면에서 잠자는 짜증을 불러냈다. 어디로 발길을 떼야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후동이는 약속시간이 늦는다고 전화가 왔다. 겨울이 봄 같아서 추우리라 예상하고 입은 겉옷은 타오르기 시작하는 불길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마중 나온 후동이를 보자 노트북을 멘 가방이 가벼워졌다. 모녀는 18000보가 넘도록 맛집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미륵반가사유상을 관람하며 '감상하는 중생'이 되었다. 늦은 밤 아들 원룸으로 갔다. 아들은 모처럼 방문한 엄마와 누나를 위하여 '투움바 파스타, 쪽파를 돼지고기 앞다리 살로 감싸서 오븐에 익히고, 샐러드, 치아바타 빵을 아점으로 대접했다. 이번 여행에서 아들의 대접이 가장 인상에 남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아들은 땀을 유달리 많이 흘린다. 마주 앉아 식사를 하며 연신 땀을 닦아냈다. 두 아이의 사회생활 이야기가 주로 오고 갔으며, 지난날 서로에게 상처 주었던 말을 하며 얼어붙은 툰드라 지역의 일부를 녹이기도 했다. 또 의욕적으로 일을 하고 싶어도 꼰대 행세를 하며 일의 성과를 떨어트리는 중간간부들 흉도 보았다. 남매의 대화를 들으며 문득 몇 년 전 시간제 일을 하던 곳의 사장이 생각났다.


  그때 썼던 글이 떠올라서 노트북을 펼쳤다. 글을 읽으며 아들이 재취업하려 하였던 것도 알게 되었다. 일 년간 마음고생하며 좋은 직장에 취업하더니 오늘은 땀을 흘리면서 손님 대우에 최선을 다했다. 자식들에게 바르게 사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했던 지난날이 보람차게 느껴진 아점이었다.  

                              

  추운 겨울이었건만 후덥지근했다. 짜증이 밀려왔다. 참으려니 가슴에서 울화가 치밀었다. 더운 이유를 알 수 없어서 좌우 주위를 살피다 천정을 올려다봤다. 냉방기에서 바람 나오는 문이 닫혀 있다.


  "띠리링 띠리링 띠리리링" '소녀의 기도'에 맞춘 주문 신호가 들리면 ‘슥, 슥, 스윽’ 기계는 주문서를 밀어냈다. 오늘도 음식 배달 주문서가 줄줄이 밀려 나와서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만든다. 뿐만 아니다. 매장에도 고객들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떡볶이와 튀김이 만들어지는 화기로, 인산인해의 열기로 목까지 채웠던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주방 실내 온도가 불기운으로 높아져 추운 날임에도 매일 내가 냉방기를 가동했다. 나는 한 여름 선풍기나 냉방기 찬바람이 싫어서 피해 다닌다. 또 긴 면 옷을 입고 뜨거운 물로 몸을 씻는다. 이곳에서 일을 하며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을 하고 있다. 빈틈이 보였는지 사장의 다그침이 귓불에 송곳을 꽂았다.


  25센티 편수 양은 냄비에 1센티 남짓 물을 담아 어묵을 넣고 가스레인지에 올렸다. ‘어묵 탕‘이 끓을 동안 탕 담을 용기에 미리 썰어 둔 파를 담아 놓고, 맞은편 나의 작업대로 재빠르게 돌아왔다. ’ 꼬마 양념 김밥‘과 ’ 꼬마 고추김밥‘을 6개씩 12개를 싸야 했다. 양푼에 양념해 둔 밑밥이 부족하여 전기밥솥에서 뜨거운 밥을 퍼내 김밥 재료들을 혼합하였다. 두 손은 벌겋게 익었고, 땀으로 손바닥과 등이 비닐장갑에 짝 달라붙었다. 비벼 논 밥에 매운 고추 다진 것을 넣어 뒤섞는 중 난데없는 아들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이 녀석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취업문이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운 시국이다. 아들은 조금 더 참아보라는 나의 말에 충분히 생각하여 내린 결론이라고 했다. 오죽 힘들었으면 그런 결정을 했을까. 실은 나도 시간제 일 하는 것이 정말 싫다. 사장의 잔소리와 채근은 일 하고 싶은 의욕을 떨어뜨렸다. 다른 일을 찾아보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게 되었고, 매일 구인 광고를 찾으며 길을 걸었다. 그만둘 수 없었던 것은 연령에서 제동이 걸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너도나도 말하면서 고령자라며 채용을 거부했다. 다행히 경력, 나이 불문인 사장은 일을 더 빨리 하라고 해서 탈이지 크게 나무랄 점 없는 사람이다. 아들에게 뭐라고 해야 하나. 하긴 나도 아들이 싫다는 회사를 다니라며 강요하고 싶지 않다. 아들은 윗사람과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나의 사장도 일방적인 지시를 따르라고만 했다. 5개월이 지났지만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시간제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막무가내로 우겨댔겠지. 어미라고.


  “이모, 뭐 하고 있어요!” 서슬 시퍼런 목소리에서 튀김 냄새가 진동했다. 밥을 다 비빈 뒤 비닐 위생장갑을 벗으려니 딱 들어붙어 끝이 잡히지 않았다. 손가락이 하나씩 제대로 빠져야 다음번에 끼기 수월하다. 게다가 참기름이 묻어서 만지려면 미끈거려져 맨손으로는 찝찝하다. 마음은 끓으며 들썩이는 냄비로 달려가고 있건만 도무지 손이 나오지 않아 내 속이 후끈 달아올랐다. 냉방기가 돌아가기나 하나. 헛손질을 연거푸 했다.  “A~~ EC”


  주문 기계 소리가 쇄도했다. 머릿속은 이미 백지가 되었고, 몸은 그동안 익혀진 행동으로 기계처럼 작업대와 가스레인지 앞을 오갈 뿐이었다. “테이블에 나갈 것을 포장하면 어떻게 해요!” 사장이 쇳소리를 내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힐끗 시계를 쳐다보니 5시간 근무에 아직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사장은 서 너 가지를, 어떤 때는 내가 처리하지 못하는 것 까지 해결했다. 빠르게 움직이며 주방일과 매장까지 진두지휘 하느라 나를 길게 나무랄 여유조차 없었다. “사장님, 손님이 얼큰 라면 간이 맞지 않는다고 다시 해 달래요” 접수받는 아이가 라면 그릇을 들어 보인다. 분명히 맛을 보았다. 물 양도 계량컵으로 맞추었다. 화가 난 사장은 밀린 일 하라며 긴 말 하지 않았지만 뭐 씹은 표정이다.


  어느 조용한 시간, 뜨거운 물을 마시려고 매장으로 나갔다. 한 모녀가 식탁에 음식을 마주하고 있다. 엄마는 다리를 꼬아서 뒤로 젖히고 앉아 모바일 폰 확인하는지 엄지손가락이 분주했다. 딸은 탁자에 닿을 만큼 구부정한 자세로 떡 볶기와 주먹밥을 먹으면서 모바일 폰 게임하느라 정신이 없다. 모녀에게 주먹밥이 먹을 만하냐고 물었더니 "딸이 여기 주먹밥을 매우 좋아해요" 자랑스럽게 대답하며 눈동자는 셀 폰 액정을 따라 움직였다. 맛있게 먹으라며 웃으면서 돌아섰으나 그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내가 만들어 준 주먹밥을 맛있게 먹는 것은 좋지만 단골 고객으로 자주 앉아 있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곳에 오는 고객들은 ‘엄마 표 손맛'을 알고나 있을까. 나는 어쩌다 외식을 하면 한 나절이 지나도록 위가 더부룩하다. 나도 남편과 둘이 먹는 끼니라서 밖으로 나가고 싶은 생각이 한두 번 아니다. 근래는 음식점마다 한 조미료를 모든 음식에 첨가하여 각 재료의 고유한 맛을 느끼기 어렵다. 게다가 음식점 조리과정을 어설프게 아는 현재의 나로서는 못 미더워서 문 밖 나서기 싫어졌다.


  내 자식들이 어릴 적엔 집에서 간식을 만들어 먹였다. 아들은 종종 그때를 추억했다. 가끔 집 밥을 먹으면 ‘역시 엄마표가 최고다’ 엄지를 치켜세워 밥하기 싫은 나를 주방으로 내몬다. 김치도 맛을 식별하여 엄마 맛을 알아냈다. 고령 엄마들이 주방에 서는 이유 중 하나는 ‘엄마 표’ 때문 아닐까. 음식이 내 가족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느껴지는 희열감, 그것이 행복이다. 무릎이 불편하여 절룩거리면서도 주방으로 향하는 원동력이다.


  주문전화는 바리바리 이어지고 있다. "띠리링 띠리링 띠리리링" "슥, 쓱 스윽" 기계도 여러 번 토해냈다. “이모, 손 빨리 움직이라고 분명히 말했어요!” 사장은 반 협박이다. “이모, ‘퀵‘ 배달이 와서 기다리고 있어요. 테이블에 주먹밥도 빨리 주시고요.” 접수받는 아이가 아예 나만 바라보고 있다. 함지박에는 주먹밥 만들 조미된 밥이 없다. 갑자기 긴장되어 가슴은 벌렁댔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얼른 밥솥을 열어 뜨거운 밥을 떠냈다. 잽싸게 기본재료를 집어넣고 손으로 버무렸다. 건너편에서는 좀 전에 올려둔 냄비가 빨리 오라고 풀썩풀썩… 완성된 주먹밥을 포장용기에 담고, 비닐 랩으로 고정시키려면 위생장갑을 벗어야 했다. 마음만 앞서 손이 벌벌 떨렸다. 두 손을 코앞에 가까이 대고 한 개씩 빼내려니 돋보기 눈이 어름어름하여서 빠지지 않고 발만 앞서 나갔다. 접수된 주문들은 차곡차곡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내 입술은 바싹바싹 탔다. 침을 억지로 삼키면서 “제발 집에서 밥 쫌 해무라.”


사진: 정 혜.


대문 사진: 아들이 만든 음식을 누나와 함께 식탁에 근사하게 차렸다. 맛이 좋아서 거의 다 먹었다.

  

아래 사진: 살림 사는 솜씨가 나보다 낫다고 여겨져서 상당히 흐뭇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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