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 혜 Nov 13. 2021

낭만을 위하여

  현재 은행나무 가로수들이 녹황색에서 노란색으로 변색 중이다. 이른 오전 햇살에 반사된 은행잎은 간밤의 냉기 탓으로 차가운 느낌이 든다. 은행잎은 해가 중천으로 향하면서 따사로운 온기로 화사하게 빛을 발하여 화려하기 그지없다. 한편 다양한 초록의 일행들도 겨울여행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노란색의 가로수 길은 이미 여행 준비를 마쳐서 황금빛 천지다. 은행 단풍은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한 날 하늘을 배경 삼아 올려다보는 것이 최고의 매력이다. 오늘도 아예 하늘을 보며 걸었다. 황금덩어리를 안고 하늘 천(川)으로 깊숙이 빠져들면서.


  92년 12월 말, 충주 목행동 관사에 이삿짐을 풀었다. 대구를 떠나면서 우연히 함께 살게 된 강아지는 주변 답사부터 하고 들어왔다. 넓은 집에는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화단 한쪽에 서 있었다. 시퍼렇던 은행나무는 처음부터 우리 가족에게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어느 날부터 노란 은행잎들이 시멘트 마당에 한 잎, 두 잎 떨어지기 시작했다. 은행잎은 본래 게을러 마당 청소 잘하지 않는 내게 좋은 구실 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하루가 다르게 낙엽은 마당을 샛노랗게 물들였다. 


  온통 노랑 잎 천지여서 눈처럼 밟혔다. 학교 다녀온 쌍둥이 딸과 어린 아들과 은행잎을 두 손 가득 집어서 하늘을 향해 높이 흩날렸다. 은행잎이 펄펄 날리며 아이들 얼굴에 떨어지기 전에 또 집어서 던져 올리며 환호성을 질렀다. 즐겁게 놀 수 있는 최고의 장난감이었다. 어른조차 동심으로 돌아가 삼 남매와 어우러져서  하나가 되었던 자연 교육장이 새삼 그리워진다. 특별나게 뾰족한 일도 없었건만 낭만이라는 단어를 실감 나게 느껴보았던 나날이다. 세 자녀는 은행 단풍잎을 보면 목행동 관사 이야기를 가끔 한다. 노랑 빛이 강렬했던 만큼 기억은 빛바래지지 않고 더 선명해지는 것 같다.


   하루는 연대장 관사라고 중대장이 찾아왔다. 은행잎으로 덮여 있는 마당을 보더니 질색을 하며 돌아갔다. 한참 뒤 군용 트럭에 병사들을 태워서 다시 오더니 20여 평 마당을 쓸기 시작하였다. 병사들은 생각 없이 무자비하게 수북하게 쌓였던 은행잎을 포대에 거둬들였다. 집 안에서 차를 준비하다 말고 맨 발로 달려 나가다시피 하여 중대장을 붙잡았다. 낭만을 즐기려고 일부러 쓸지 않았으니 제발 쓸지 말라고 하였다. 중대장은 그래도 쓸어내야 한다며 벅벅 우겼다. 저지하다 하다 더 말릴 수 없어서 안으로 들어가 따끈한 차를 마시고 가도록 준비했다.


  중대장 일행이 돌아간 후 멀끔한 마당을 둘러봤다. 회색 시멘트 마당만 보여서 못내 아쉬워 구석구석 돌아봤다. 은행나무 아래 낙엽의 높이가 한 뼘 남짓 두툼한 요를 깔아놓은 듯 네모 반듯하게 펼쳐놓은 것이 보였다. 실실 웃음이 나오면서 섭섭했던 기분이 맑아졌다. 연대장 부인의 '낭만을 위하여' 다 버리고 가지 않은 것만으로 만족하였다. 중대장은 그래도 멋을 아는 남자였던 모양이다. 소복한 요를 이불 삼아 그 위에 눕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중대장은 병사들에게 사진보다 더 두툼하고 네모 반듯하게 쓸어 모으라고 지시하였을 것이다. 




   은행잎이 움트는 모습이 어느 시부터 눈에 들어왔다. 나뭇가지에 녹두 빛으로 올록볼록 잎 봉오리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내 녹두 콩은 움켜쥐고 있던 손이 펴졌다. 여리고 부드러운 연두 빛으로. 연두색은 점점 짙어져 초록으로 바뀌었다. 짙푸른 초록으로 여름을 대신했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녹색에 노란색 물감을 한 방울씩 매일 떨어뜨렸다. 초록에서 연두 빛으로 미묘하게 서서히 변해갔다. 노랑 물감이 점점 더해지면서 밝은 연두색, 봄빛으로 다시 돌아갔다. 잠시 머무는 가 했더니 알게 모르게 어느 순간 샛노랗게 되었다. 은행잎의 황금기가 도래했다. 지극한 아름다움은 겨울을 맞이하는 은행나무의 화려한 금혼식이었다.


   이즈음 좋아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석양에 단풍 든 감나무를 바라보는 것도 좋아한다. 지는 햇살에 반사되어 나오는 홍 엽의 빛들은 많아서 천해 보일 것 같은데 오히려 신비하면서도 환상적이다. 은자(隱者)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감추려는 듯하다. 미당 서정주 시인은 초록이 지쳐서 단풍 든다고 표현하였다.


  감나무 짓 푸른 잎은 서슬이 시퍼랬다. 어쩌면 초록이 지쳐 단풍 든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잎 하나하나가 시푸르딩딩 하다 붉으락푸르락으로 변한다. 결국 주홍 잎으로 물들 것을 초록이라는 기득권에서 물러나지 않으려고 붉으락푸르락한 것일까. 은행잎은 초록에서 노란빛으로 집착을 내려놓기 힘이 들어 연두 빛으로 에둘렀을까. 집착을 내려놓았던 가을 나뭇잎들은 단풍이라는 최고의 걸작을 인간들이 만끽하도록 했다.


   그네는 부모가 마음에서 자식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것을 천륜이라 하였다. 천륜이란 부모가 자식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또는 형제간이 해야 할 도리다. 부모는 자식을 키워주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자식은 부모가 자식에게 공을 들인 만큼 갚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네는 자식들을 키워준 것에 머물지 않았다. 사람의 도리를 다 못하는 자식 앞에 천륜이라는 옥새를 내밀었다. 그 옥새를 이젠 거두어도 좋을 때가 지났다. 감나무의 초록이 지쳐서 단풍이 들 때가 훨씬 지났건만 아직도 붉으락푸르락이다.


   자연을 닮아가고자 노력한다. 노란 은행 빛을 더 닮고 싶다. 다 주고, 마지막 샛노랗게 황금빛이 되어 나도 걸작을 선물로 주고 싶다. 낙엽이 대지로 다 돌아가 듯 민들레 갓 털처럼 보내려 한다. 자식은 바람에 날려 내려앉는 그곳에서 더 번영하고 풍성하면 된다. 아마 내 아이들은 손자, 손녀에게 나 보다 더 바르고 현명한 어머니와 아버지가 될 것이다. 나는 나에게 잘 살은 삶이라고 자족하면 된다.


   다 자란 아이들이 한 번씩 충주 관사의 은행 단풍 얘기를 한다. 나도 93년, 한 해 살았던 그곳이 잊히지 않아 가을이면 주요 화젯거리다. 그 당시 충주는 아파트 열기가 일어나 여기저기 논밭을 메워서 고층 아파트를 짓던 기억이 새롭다. 내 아이에게도 어릴 적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뿌듯하다.




사진: 정 혜.



대문 사진: 비 온 뒷 날 오전 9시 21분에 찍은 은행 단풍. 


아래 사진: 

딸의 아파트에서 내 집으로 돌아오던 초저녁. 은행나무 잎이 떨어져 버려서 구름 사이로 흰 구름과 반 달이 한 멋을 더했다. 

단풍이 들기 전에 누렇게 익은 은행 열매가 아래로 무수히 떨어졌다. 얼마나 많이 열렸는지 잎은 다 떨어지다시피 하였건만, 열매는 아직도 조롱조롱하다.



https://blog.naver.com/jsp081454/222567306051

작가의 이전글 외로워, 외로워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