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이소."
'어? 잘못 들었나.'
"수원 역으로 좀 빨리 갔으면 좋겠어요."
"어디 가시는데요?"
"동대구."
"몇 시 기차예요?"
"9시 23분요."
"20분 겨우 남았는데 이거 문제네요…" 기사는 곤란한 듯 말을 하더니 곧 "그렇다면 다 방법이 있지예."
그는 자동차가 밀리는 대로에서 주택이 밀집한 사잇길로 빠졌다. 그가 신호를 받으려고 기다리는 것보다 나도 마음이 훨씬 편했다. 기사는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갔다. 그리고 어느 큰길에서 몰려오는 차들 속으로 파고들어갔다. 그런대로 얼마간 순조롭게 주행하는 듯했다. 기사가 부산 출신이라고 먼저 말했다.
"어쩐지 아까 탈 때 갱상도 말 같아서 귀를 의심했거든예."
기사는 있는 집안 자식으로 대학까지 졸업하고, 군대까지 제대하자, 부모님 슬하를 떠나서 독립하여 멋대로 살겠다고 선언을 했단다. 부모님이 호적을 파내라고 하여서 그랬다고 한다. 상속 재산도 포기하고 수원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단칸방에서 시작했다고. 택시가 잘 달리는가 하였더니 사방 10차선 사거리에서 거북이걸음으로 미적거렸다.
수원역은 우회전해야 한다. 기사가 우회전 길에서 슬그머니 좌회전 차선으로 옮겨갔다. 다행히 좌회전하려는 차들이 없었고, 내가 탄 택시 뒤로 달려오는 차 또한 없었던 것 같다. 때 맞추어서 좌회전 불빛이 깜빡였다. 기사는 그걸 계산했는지 좌회전하면서 과감하게 유턴까지 순식간에 해버렸다. 그리고는 직진 신호를 기다리면 된다고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우회전하여 역으로 가는 것보다 더 빠를 수 있다면서.
나는 장롱 운전 면허증이 있었다. 세 번째 갱신하라고 연락이 왔을 때 미련 없이 폐기해버렸다. 녹색 운전면허증만 소지하고 있다가 운전대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완전히 이별을 고한 사람이다. 그런 나였으므로 자동차 관련 상식은 일자무식이다. 기사는 불법을 펼치고도 여유만만했다. 나는 한순간에 휙 도는 차 안에서 중심도 겨우 잡을 정도로 놀랐다. 기사가 마구잡이 운전을 해도 되는지 걱정이 되어서. 그리고 그는 수원에서 30년 이상 운전기사를 하다 보니 지리에 밝음을 자랑질하였다.
언젠가 지인이 스님을 모신 차에 내가 타게 되었다. 왜 타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없다. 단지 그가 불법 유턴을 하고, 교통 신호를 무시하며 운전하던 것만 기억이 난다. 지인이 거리낌 없이 운전을 하자 옆에 앉았던 스님 왈,
"우와! 여기도 불법을 펼치는 분이 계시네~. 나만 불법을 펼치는 줄 알았더니…"
듣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스님이 한자를 가지고 놀았다. 불법(不法)과 불법(佛法)의 차이는 한자로만 구분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 기사가 그러하였다.
기사는 직진신호를 기다렸다. 시내버스 한 대가 좌회전을 하려다 못하고 어중간하게 차선을 막고 서버렸다. 내가 있는 쪽으로 직진하려던 차들을 지나면서 좌회전을 못했다. 급하기는 매한가지인 좌회전 차량들이 버스 뒤를 따라 줄줄이 출발하였다. 시내버스가 더 옴짝달싹할 수 없는 광경이 눈 앞에 전개되었다. 10차선 도로 중앙에서 좌회전하려던 시내버스와 승용차 및 다른 차들이 바람개비처럼 가로막았다. 소통불능이 이럴 때 쓰는 용어 같았다. 삽시간에 차곡차곡 승용차와 버스가 중첩된 형국이었다.
우회전할 버스가 경적을 요란하게 울렸다. 곧 출발할 듯 부르릉대면서. 나는 그 뒤를 이은 차량들도 빵, 빵 대는 아수라장을 보며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이내 '못 타면 다음 기차 타야지 별 수가 없네…'라며 천연덕스럽게 생각을 바꿨다. 이 사거리만 지나면 수원 역에 금방 도착한다는 기사의 말이 귀를 스쳐 지났다.
좌회전하려던 시내버스가 간신히 차를 돌렸다. 그제야 우왕좌왕하던 차들의 운행이 수월해지기 시작했다. 기사가 나의 기차 출발 시각을 맞추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참으로 고마웠다. 그래서 그에게 약간의 팁을 주고 싶었다. 내가 기사에게 표현했더니, 그는
"저는 그저 승객이 안전하고 제시간에 열차를 타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승객에게 이렇게 멋진 말로 화답하는 기사는 생전 처음이다. 이런 기사에게 '팁을 얼마를 준다고 해야 하지…' 나는 '천원은 부족할까, 이천 원 아니면 삼천 원?' 머릿속이 분주한데, 기사가 코 앞이 수원 역이라며 덜 바쁠 때 요금부터 먼저 계산하자고 했다.
딱 5분 남았다. 기차 출발시간이. 기사가 영수증은 주지 않고 카드만 내게 돌려주었다. 금액이 얼마인지도 말을 하지 않고. 내가 영수증을 달라고 하자 그는 운전사 용이라면서 자기 옷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수원 역 택시 승강장에 도착했다. 기사가 차에서 내리는 내게
"믿어도 됩니더. 받을 만큼 받았으니 신경 쓰지 말고 잘 가시이소오." 이어서 그는
"조 앞에 보이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역으로 빨리 올라가시소~"
그렇게 나는 기차를 탔다. 나는 그가 상당히 믿음직스러웠다. 택시 안에서 영수증을 주지 않았어도 '통 큰 사람이 널 장사한다카더라. 나를 속여봤자 만 원 넘겼을라고. 아니면 KTX 요금이야 넘기겠어' 아주 간이 큰 척했다. 그러나 찝찝하여 견디기 쪼금 거북스러웠다. 지정좌석에 앉아서 모바일 폰을 펼쳤다. 내가 사용한 내역을 확인하니 뜨지 않았다. 기차요금은 보이는데… 그렇지만 나는 '믿으라고 했으니 믿어야지 공연한 의심은 번뇌 거리야…' 그리고 이내 잊었다. 그러나 시원하지 않았다.
거래은행으로 가서 확인요청을 했다. 그를 못 믿어서라기보다 왜 사용내역이 뜨지 않는지 미심쩍었고, 또 택시요금도 궁금했다. 9600원이 택시 요금으로 결제되었다. 나는 사용내역서에 나오지 않는 이유를 질문했다. 카드회사 직원은 택시회사마다 카드 결제하는 기계가 다르게 설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짐작컨대 내가 탔던 개인택시는 더 멋대로 조작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서울 경기지역은 교통 요금이 후불제여서 그럴 수도 있다고. 아무튼 사기는 당하지 않았다.
나는 사람을 잘 믿는다. 내가 타인을 속일 의사가 전혀 없으므로. 또 상대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속이면, 그가 악업을 쌓는 것이다. 내가 속을 끓여가며 택시기사를 의심하지 않았던 이유다. 그러나 택시요금 사용내역이 보이지 않아서 의문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 택시 요금은 후불로 결제되어도 사용한 내역은 즉시 나타나는 줄 알았다. 카드결제기의 문제점을 모르는 나로서는 기사를 잠시 의심도 해봤다. 그렇지만 그가 나에게 '믿으라'라고 하였기에 의심하지 않았다. 간 큰 척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잠깐이지만 의심의 화염(火炎)이 나의 문전에서 일렁이다 사라졌다.
사진: 정 혜
대문사진:
구름이 금호강변을 산책하며 평소와 다르게 특이했다. 마치 믿으라고 한 말을 잠시라도 믿지 못했던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듯 사진처럼 홍색 구름이 일어났다. 바람이 부는 대로 구름은 흘러갔다. 홍빛을 띤 구름 색 또한 흩어져버렸다.
아래 사진:
금호강 안심교 너머로 석양빛이 어둠과 기싸움을 하는 것 같다.
석양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은 진리다. 택시기사의 말을 믿지 못하였던 나를 어둠 속에 슬그머니 던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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