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와 산책을 하다 보면 길냥이를 자주 보게 된다. 지난해 3월 즈음엔 어미 고양이가 새끼 3마리를 건사하는 것이 보였다. 손자에게 고양이라는 동물을 알려주려고 가깝게 다가섰다. 어미는 나의 눈치를 보면서 어슬렁거리며 모습을 감추고, 새끼들은 얼른 어미 곁으로 몸을 숨겼다. 얘네들은 오전에 산책을 하면 만날 수 있었다.
아이들은 학교를 마친 후 몇몇이 짓궂게 고양이를 찾았다. 새끼들은 적응이 되었는지 놀라지도 않았으며 아이들과 잘 지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유모차를 밀며 아이들 뒤를 따랐다. 나는 그 녀석들의 커가는 과정을 손자와 지켜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나의 집 지하에서 살다 새끼를 멀리 떠나보낸 고양이 어미가 잊히지 않았다.
어느 지난날 어린 고양이가 애처롭게 울어댔다. 한 삼 일을 밤낮으로 울어 댄 것 같다. 그 몇 년 전까지 고양들이 밤마다 고성방가 하며 밤 골목을 누볐다. 내가 잠을 다 설칠 정도였다. 큰 아기 울음 같은 소리로 으르양 대던 시절이었지만 그러려니 하기 참으로 괴로웠다. 그런데 대낮에도 내가 자는 방 모퉁이에서 앵앵거려서 이상하게 여겼다. 외출하려 현관문을 잠그고 돌아서니 어미 고양이가 대문 앞에서 꿈쩍도 않고 앉아 있다. 내가 가까이 가자 그제 서야 슬그머니 대문 틈새로 사라졌다. 양이가 앉았던 자리에서 나도 그쪽을 쳐다봤다. 새끼가 모퉁이에서 어정거리고 있었다. '아, 어미의 영역에서 떠나라는 엄명에 서성대고 있구나'
어미는 냉정했다. 새끼는 가지 않겠다고 그동안 울고불고 앙탈을 부린 것이다. 어미는 새끼가 독립할 시기에 사막이나 다름없는 도심지 골목으로 무조건 내몰았다. 새끼가 떠나지 않으려고 울어대는 소리가 아주 애처로웠다. 나는 새끼의 독립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다 큰 자식의 독립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최선을 다해 키우고 대학 다닐 때 홀로 설 수 있도록 분가시키는 것이 현명한 방법임을 배웠다.
이웃 여인이 대문 틈새로 뭔가 엿보고 있다. 나는 궁금하여서 뭐 하느냐고 물으며 들여다봤다. 어미 고양이가 새끼를 데리고 엎드린 채 나를 경계하였다. 그녀는 십 년 넘게 양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옆집과 건너 집이 주지 말라면서 무척 싫어했다는 말까지 해주었다. 그래도 꾸준히 먹을 것을 주었고, 사랑으로 품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쥐약을 놓아서 죽도록 만들었다고 했다. 아무튼 그녀는 길냥이의 초상도 많이 치렀다며, 소중한 생명인데 함부로 다루어서 안 된다는 모범적인 말을 들었다.
나는 단독주택에서 살고 있다. 재건축이다, 신축한다는 등 말이 나온 지가 20년이 넘은 것 같다. 2021년 현재는 주민들이 70% 정도 동의했다고 현수막에서 읽었다. 우리 동네 중간에는 집집마다 텅 텅 비어있다. 빈 집들은 폐허가 되었고, 들냥이가 숨어 살았으며 검은 손들에게 납치되었다가 풀려난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하나 같이 꼬리를 꽁무니에 끼운 채 사람들을 피해 다녔고, 꾀 죄 죄 한 몰골이었다. 그렇게 소란스럽던 마을이 적막강산으로 변하다시피 했다.
2021년 4월 초 유모차에 손자를 태웠다. 한동안 다 자란 새끼 고양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이상하게 여기던 중 자주 만났던 새끼가 나를 피하며 숨었다. 그리고 한 중년 남자가 나타나 고양이를 살폈다. 그는 중성화 수술을 시켰다고 자랑스레 떠벌렸다. 나는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저승사자가 내 옆에 서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마을 정자 밑에서 비실대는 들양이 상황을 살폈다. 아마 잡아다가 고환을 제거하고 며칠 경과를 지켜본 후 원래 자리에 풀어주었던 모양이다.
한 번은 티브이 채널을 무심코 돌렸다. 고양이를 강제로 붙들어서 자궁적출이나 고환을 제거한 후 본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는 영상을 마주했다. 가만히 쳐다보니 어미가 없어졌던 새끼가 나타나자 반갑게 핥아주면서 안부를 묻는 것처럼 보였다. 참으로 가슴 아픈 장면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만 하는 현실 또한 안타까웠다. 그래서 나는 들냥이들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또 언젠가 밤마다 들양이들의 짝꿍 찾는 소리, 영역을 넘보는 것에 대한 방어 괴성이 참으로 기분 나빴다. 어쩔 수 없어서 대구시청 민원실로 문의를 했다. 각 구청에 담당하는 곳이 있다며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가을이 되면 어느 시에 잡으러 오겠다는 어떤 목사 님의 전화를 받았다. 여름에는 수술 부위가 잘 아물지 않아서 가을에 다시 전화를 하겠다고. 전화 온 날 나는 들냥이의 적출이나 제거를 반대하니 오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후회가 되기도 했지만 귀를 막고 살았다. 지금도 잘했다고 여겨진다.
사진: 정 혜
대문 사진: 고양이의 으르양 대는 소리가 들렸다. 이 글에 적합한 사진이 필요했던 터라 무조건 사진부터 찍었다. 두 고양이는 가까이서 경계하는 소리가 아닌 저음으로 서로를 탐색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가던 길을 멈추고 누런 색 고양이를 관찰을 하니 고환이 아주 작았다. 늦은 봄 날 고양이로서의 본성은 지워지지 않았으나, 수컷의 기능을 상실하였으므로 암컷을 봐도 심드렁하게 구는 것이 아닌가 짐작했다.
아래 사진: 두 녀석이 서로 바라보며 탐색을 하고 있다.
아파트 담장을 지나서 정문으로 들어가 두 녀석에게 접근했다. 흑백 얼룩이가 나를 경계하며 슬슬 꽁무니를 뺐다. 그런데 이 녀석도 고환이 보일 랑 말 랑.
나는 두 녀석이
"너 여자 아니지?"
"나?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르는데…"
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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