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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Apr 24. 2021

매화 비가 내리네

영화 더 파더를 보고

  휴가 이틀 째. 목요일 오후 딸의 추천으로 CGV 영화관으로 향했다. 영화관으로 가기 전 딸에게 어떤 내용인지 물었다. 첨엔 약간 머뭇거리더니 결심한 듯 입을 뗐다. "엄마, 역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어. 그런데 왜 알고 싶어?" 나는 외화의 경우 대충 줄거리를 알고 관람을 하면, 세부적인 장면 묘사와 자막을 눈여겨볼 수 있었고 이해가 빨랐다. 


  중년 남자가 창을 내다보는 포스터를 얼핏 봤다. 주인공이 누구인지 돋보기를 써야만 정확히 알 수 있는 나의 눈이었기에 이 영화를 본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영화관 입구에는 우리 모녀만 보였고, 지정좌석을 찾느라 더듬거리면서 힐끗 좌우를 바라보니 꼴랑 네 명이다. 객석은 텅 빈 채, 간격을 유지하여 앉으면서 코로나의 위력을 실감했다. 앉자마자 도입부부터 빠져버렸다. 자막 읽어야지, 배우들의 표정 볼랴 정신을 한가로이 둘 수 없었다. 또 치매를 다루는 것인지, 주인공이 창문으로 길을 건너는 딸을 쳐다볼 때는 어떤 음모를 획책하는 것 같았다. 전반부는 어떤 내용이 전개될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다.


  치매 환자의 정신상태를 섬세하게 표현한 영화였다.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 또한 뛰어났다. 인공의 이름을 안소니로 한 이유라고 한다. 그리고 딸과 사위가 겪는 정신적인 고통도 간간이 그렸다. 특히 치매가 진행되는 과정을 밀도 높게 세밀히 묘사하여 치매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내 딸은 '스릴러(Thiler, 긴장감을 일으키게 하는 장르)'라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고 했다. 치매가 혼란스럽게 진행되는 과정이 당자나 가족에게는 공포나 다름없었다.  


  안소니 딸의 심정도 잘 표현하였다. 아버지의 치매를 인정하고 싶지 않으나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이해되었다. 치매는 가족이 이해하기 힘들고 감당해내기 어려운 병이다. 내가 어설픈 나이에 사회복지사가 되려고 한 요양원에 실습을 나갔다. 내게는 세월의 온갖 병이 문신처럼 그려져 있는 노모가 저승사자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치매 환자와 보호자들을 굉장히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내 노모인 양 최선을 다해서 그들을 모셨다. 보호자는 나이 많은 아들과 며느리가 대부분이었다.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딸은 치매 걸린 노모나 노부를 가까이하기엔 참으로 먼 당신이었다. 제삼자의 눈으로도 상당히 벅차다는 것이 느껴졌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속담이 있다. 나 또한 친정어머니께서 노환으로 한 해에 입퇴원을 네다섯 번  반복하니 병원비가 가장 걱정되었다. 돌아가시기 두 달 전에는 고관절이 부서져 또 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수술 후에 나타나는 섬망 증세는 치매까지 의심될 정도였다. 그리고 병원에서는 2주간 입원시킨 뒤 무조건 요양병원으로 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요양 병원비는 천차만별이었다. 마음은 좋은 곳으로 모시고 싶었다. 간병은 형제들이 번갈아 했지만 병원비가 만만치 않았다. 


  안소니는 치매가 급속히 진전되면서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안소니 또한 걷잡을 수 없는 자신의 변화에 당황해하였다. 아니라고 부정하면서 빠르게 감퇴하는 기억력으로 그도 어쩔 줄 몰라했다. 입원하기 전에 윗 옷을 입지 못하는 장면이 있었다. 치매환자들의 특징적인 증상을 연기하는 안소니가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기억력이 두드러지게 감소했다. 그는 엔지니어였으며 뇌의 회전이 빨랐다고 자부하였다. 그런데도

치매가 왔다. 치매는 대뇌 신경 세포의 손상 따위로 말미암아 지능, 의지, 기억 따위가 지속적 · 본질적으로 상실되는 병이라고 네이버 사전은 정의하고 있다. 주로 노인에게서 나타난다고 했지만, 근래는 젊은 사람들도 발병한다고 들었다.


  가슴 졸이며 영화에 몰입했다. 내게는 양가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다.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도 답답했다. 붓다는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는 괴로움이라고 하셨다. 네 가지 고통이라 하여 사고(四苦)라고 한다. 안소니는 인간으로 태어나서(生) 나이(老)가 들었다. 아마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이 들어가면서 불치병이나 오래 앓아서 고치기 어려운 병(病)에 걸리기를 바라는 사람 또한 없다. 그런데 이런 병이 슬며시 또는 불시에 사람을 쓰러뜨리고, 서서히 망가지게 한다. 이렇게 죽거나 죽어가는 것(死)을 아무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노년기 중증 이상의 치매는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실습하며 목격한 것은 살아 있지만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느 한 분은 매일 거의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식사 때마다 입을 앙다물었다. 요양사들이 입을 벌리지 않는 그녀의 입을 억지로 벌려서 밥과 갖가지 약을 쑤셔 넣었다. 그리고 양치를 시키고 다시 자리로 이동시키는 것이 일상이었다. 가족들도 실습동안 못 봤다. 그녀는 뽀얀 살결에 인물이 참으로 고왔다. 치매는 죽음을 선택할 수 없었다. 치매 당자는 그러한 것조차도 알지 못하니 가족이 견디기 지독스럽다. 이것이 내가 전율하는 부분이다. 


  사람은 태어나면 죽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리다. 그러나 치매는 생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다. 치매가 무엇 때문에 나무 위에 입이 올라가서(呆) 어리석은(癡) 형상이 되어 당자를 짓누르는지… 나는 '곡기(穀氣)를 끊었다'는 말을 종종 생각한다. 가끔 주위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내 노모도 건강할 때 말씀하셨다. 정작 가실 무렵에는 "배가 고파서 못하겠더라"고 하였다. 강단이 있는 분이라서 선택할 수 있으리라 짐작해왔다. 이 방법도 온전한 정신일 때 가능하였다. 


  나는 어머니의 선택을 존중하고 싶었다. 어머니의 사전 연명 치료에 대해서도 피력했다. 그러나 병원이나 요양원으로 들어가면 그 의지가 박탈되었다. 그리고 본인 또한  살아야 한다는 본능에 충실하였다. 어떤 입소자는 치매 증세가 있어서 강제로 들어와 있었다. 잠시만 하던 세월은 생에 대한 의지가 사라지게 했고, 우울증이 오히려 기억을 감퇴시켰다. 또 요양 차원에서 입원하였다가 치매 진행속도가 더 빨라지기도 했다. 치매는 '내가 없는' 참으로 무서운 업보였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또 사유하고, 매일 명상수행을 30~50분씩 하는 것도 그렇다. 그리고 더 나은 내생을 위한 예비 노력이다. 모를 땐 몰라서 못 했지만, 지금은 정견(正見: 바른 견해를 가진다), 정사(正思: 바른 견해로 생각한다), 정어(正語: 바른 견해로 생각하면서 말을 해야 바르게 말을 할 수 있다), 정업(正業: 바른 견해로 생각하면서 바르게 말을 해야만 행동 또한 바르다)을 남에게 베푸는 일과 함께 실천하고 있다. 오로지 나를 위해서지만, 자식을 배려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즐기면서 하고 있다.  


  

사진: 정 혜


대문 사진: 녹악매(綠萼梅:꽃받침이 푸르다).

매화 봉오리, 꽃이 반개(半開)하여 남은 꽃잎마저 펼치려는 모습, 봉오리의 꽃잎이 겨우 벌어지는 순간이 참으로 예쁘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내리면 암술만 남기고 꽃잎은 미련없이 떨어진다. 우리네 삶도 저 매화와 다르지 않은 듯하다.


아래 사진: 홍매(紅梅: 꽃잎이 연분홍).

연분홍 꽃잎이 시들어서 분홍색을 띤 채 매실을 보호하고 있다. 매실이 팥알만 하게 커지면서 시들은 꽃잎(생명이 없다)수술과 함께 서서히 빠져나갔다. 치매가 깊은 한 환자는 어릴 적의 자식만 기억했다. 

4월 하순인 지금은 매실만 남아서 몸집을 키우고 있다. 어쩌면 시들은 꽃잎이 매실을 기억하려고 매달려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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