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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May 15. 2021

주제는 배달하고, 화소는 적절하게

글쓰기는 김밥 싸 듯

   기본 화소는 어묵조림. 단무지. 청방 배추. 맛살. 밥. 참기름. 김. 전기밥솥에서 뜨거운 밥을 가달박에 퍼내어 다섯 가지 화소와 버무려서 김밥 김 사분의 일 조각에 싸면 꼬마양념김밥이 된다. 제목인 꼬마양념김밥에 새로운 주제 청양고추를 다져 넣어서 매큼한 맛을 더해주면 꼬마고추김밥이 된다.


   시간제 일 처음 배울 때는 사장이 전표를 불러주는 대로 했다. 서서히 일이 손에 익으면서 불러주는 것을 외우지 못하면 주문서를 봐가며 사장과 속도를 맞추었다. 주문서도 주로 내가 만드는 양념김밥만 보였다. 다른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글씨가 보여도 어른거려서 뭐가 뭔지 몰랐다.


   “이거 양념김밥 아니고 고추김밥 맞지요?” 심문하듯 끝말을 올렸다. 사장이 완성된 음식들을 배달 보내기 전 내게 꼭 확인하는 말이다. 내가 만들었지만 물으면 얼른 대답을 못했다. 겨우 한다는 말이 “불러주는 대로 했고, 뭐냐고 물으면 경황이 없어서 기억 못 해요”라고 대답할 뿐이다. 내가 그러면 사장은 집요하게 “고추김밥 맞아요?” 확인하는 그 말에 내 귀는 거슬리고,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지면서 얼굴마저 붉어졌다. ‘하라는 대로 해주었는데 기분 나쁘게 말하네~, 거 좀 듣기 좋게 말하면 어디가 덧나나’ 속으로 투덜대다 곧바로 생각을 바꿔서 매사 정확히 하려는 의도로 짐작했다. 그렇지만 들을 적마다 떨떠름했다.


   시간제 일을 한 지 8개월이 지날 즈음에는 아장거리던 걸음마에서 가고 싶은 대로 걸을 수 있었다. 나는 사장이 묻기 전에 입막음용 대응책을 궁리했다. 사장 앞에 완성품을 놓으면서 ‘고추김밥 입니데이~’ 하며 선수를 쳤다. 내 작전이 효과가 있었는지 사장은 덜 추궁했으며, 나도 손이 빨라지고 기억할 여유가 생겼다.


   고추김밥과 양념김밥 12 상자 배달 주문 전화가 왔다. 나는 12 상자를 만들려니 앞이 캄캄하였다. 사장은  작년까지만 해도 40~50 상자를 예사로 만들었다고 하면서 12 상자에 떠는 나를 우습게 여겼다. 그리고 매장에 손님이 들어오는지 봐가면서 김밥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출입문은 열리면서 ‘딸랑‘ 종소리가 들려 그때 봐도 늦지 않다. 그런데 사장은 소리도 없이 들어온다면서 꼭 지켜보라고 강조했다. 한 귀로 들으며 매장은 쳐다보는 둥 마는 둥 이내 김밥 쌀 동작을 취했다.


  자잘하게 다져서 조려낸 어묵. 얄팍하고 조그맣게 칼질하여 네모난  단무지. 납작한 맛살과 잘게 썬 청방 배추. 조리된 화소들과 밥이라는 소재에 참기름을 첨가하여 맛있게 비볐다. 1차 소재들이 조합을 이루었다. 김밥 김 사분 일 조각이 든 봉지는 손을 내밀면 닿기 좋은 곳에 있고, 완성된 김밥 담을 종이상자 12개를 가까이 두니 2차 구성요소도 완비되었다.


  오른손은 비벼놓은 밥을 가늠하여 한 주먹 쥐었다. 밥과 어우러진 화소들이 알맞게 잡혔다. 왼 손바닥에 놓인 김 화소 위로 오른손을 올려 살그머니 양념 밥을 놓는다. 동시에 왼 엄지가 움직이며 김 크기만큼 밥을 펴면서 얄찍하게 다듬는다. 오른손 옆구리를 세워서 중심축 삼아 왼 손바닥에 있는 밥을 손목 쪽으로 말아 올려서 단단하게 오므린 뒤 오른 엄지를 김 아래로 밀어 넣으면서 김밥을 말아준다. '조금 굵은가? 가는가?'


   내 글쓰기가 꼬마김밥을 닮았다. 굵었다, 가늘었다, 처음에는 종잡을 수 없었다.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지면 풀어서 다시 채워야 하듯 꼬마김밥 역시 시작이 중요했다. 왼 손바닥에 얹힌 김 위로 오른손이 잘 어우러진 소재 덩이를 놓는다. 밥이 많으면 왼 엄지가 살살 다지며 밀어내어 굵기를 조절하고, 알맞은 양이면 오른손 옆구리로 하나가 된 화소들을 둥글게 결속력을 키우며 주제를 향하여 말아간다. 김밥 한 줄이 완성되어 종이상자에 담았다. 한 단락이 놓였다. 그리고 새 단락이 시작되었다.


   왼 손으로 김을 집어 엄지 사이에 끼우듯 올려놓는다. 배달 주문전화 소리가 여러 번 들리고 사장은 바람이다. 나는 김밥 글쓰기에 여념이 없다. 한 줄씩 반듯하게 놓이면 글이 잘 쓰인 것 같아 흐뭇했다. ‘이러다가 김밥 달인 될 것 같다’는 생뚱맞은 상상에 빠졌을 때, 스텐 양푼이 시멘트 바닥에 떨어져서 뒹굴어대는 사장의 목소리가 설핏 들렸다.  “이모, 튀김이 타기 직전이에요!” 또는 “납작 만두가 타서 다시 만들어야 해요!” 라던가 “매장에 나가면 제발 저가 하던 것들 좀 보세요. 쪼옴~” 김밥 글쓰기를 계속해야 하는 나도 조급해진다. 하지만 나는 이미 능구렁이가 되었는지 오래다. 사장의 마음은 바쁘고, 속이 터지는지 몰라도 나의 대답은 빨랫줄 쳐지 듯 늘어지면서 길게 “예에~”


  글은 머릿속에서 줄줄 나왔다. 상자 바닥에 가로로 6줄 채우고, 그 위에 사이마다 6줄 또 올려서 뚜껑을 덮으면 김밥 한 통.  12 단락의 글 한 편이 탄생되었다. 꼬마김밥 열 두 상자가 완성되어 눈 앞에 가지런하다. 김밥은 균일한 굵기로 단락마다 반질반질 윤기가 났다. 조화로운 비유와 주제의 의미화가 함축적인 묘사로 맛깔스러운 글이 되었다. 사유와 경험이 알맞은 비율로 배치되어 구성도 탄탄해 보였다. ‘김밥 싸듯 글을 쓰고 싶다. 김밥처럼 글이 쓰였으면 좋겠다’ 김밥을 바라보며 ‘김밥 같은 좋은 글 한편 썼으면…‘ 손은 놀리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글을 가다르고 있었다.


  “이모, 고추김밥인데 왜 양념김밥 싸요?” 고성(高聲)이 무심한 나를 일깨웠다. 나는 돋보기를 사용하여야만 훤히 보인다. 밀려있는 주문서를 최대한 멀리하여 인상을 찌푸리지 않으면 ‘꼬마고추김밥‘도 ’꼬마양념김밥’으로 보였다. 사장의 잔소리 듣지 않으려면 고추인지 양념인지 눈을 최대한 찡그리고 미간도 좁혀서 똑바로 확인해야만 했다. 아니, 주제를 의미화하는데 사유와 은유를 적절하게 구사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덧:

1. 가달박: 매우 큰 바가지.

2. 가다르다: 논밭을 갈아서 고르다.



 

사진: 정 혜


아래 사진: 3월 초순 해가 질 때 남은 빛으로 찍은 목련 꽃.



https://blog.naver.com/jsp081454/222352193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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