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9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소개해 주세요.
나의 선지식 아들에게
오늘 아침 해돋이가 다른 날과 달리 무척 아름답게 보이더라. 얼른 선우를 데리고 세탁기가 있는 앞 베란다로 가서 창을 열었단다. 네가 선물한 노트 9으로 위의 대문 사진을 찍었어. 유달리 해넘이 같은 느낌이 들면서 옅은 하늘색 바탕에 연분홍 빛 구름은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은 거야. 노트 9 덕분에 사진 실력이 많이 늘었는 것 너도 잘 알지? 며칠 전 파노라마 기능 이용하는 것을 배워서 해돋이 사진에 활용해봤단다. 나는 아주 멋지게 느껴지더라. 너의 마음씀이 정말 고맙다, 아들아.
오전에 노트북 잘 받았어. 얘, 상자에서 노트북을 꺼내며 좋으면서도 부끄럽더라. 변변하지 못한 엄마에게 뒤에서 든든한 버팀목으로 힘이 되어주니 말이다. 네가 유치원 졸업하던 날 늦게 찾아간 엄마에게 속이 상하여 울면서 떼쓰던 기억나니? 내가 뭘 한다고 그렇게 늦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지난 목요일인가 나랑 통화할 때였어. 이모가 사촌에게 불교 캠프 가는 가방을 챙겨주던 것이 부러웠다고. 또 일 학년 땐가 자전거 타다가 넘어져서 검지 피부가 찢어진 너를 혼자 수술실에 들여보낸 거… 그때는 어머니가 '따주기' 침 배우러 다니느라 너 혼자 두고 나갔다가 그런 사고가 있었어.
얘야, 어머니가 엄마 노릇 제대로 못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더구나. 요즘 너의 조카를 키우면서 마치 너를 앞에 두고 있는 듯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생각이 떠오르더구나. 네가 말한 것처럼 크게 잘못한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섭섭했다는 말. 내가 너와 번짓수는 다르겠지만, 선우가 나를 깨우쳐 주고 있단다. 내가 선우에게 지성으로 자신감과 자존감을 키워주려 애를 쓰거든. 그러면서 너를 떠올렸어. 내 자식을 이렇게 키워야 했다고 넋두리를 한단다.
초등학교 다닐 때 가족신문 만들어 오라고 했던 일. 낮에 이 글을 쓰려고 곰곰이 따져보니 가족신문이면 적어도 이 엄마만큼은 함께 했어야 하는 것을 네가 해야 하는 것이라며 하나도 도와주지 않았지. 학교에서 바이올린 방과 후 수업을 받을 때도 열심히 복습하지 않으려면 그만두라고 하면서 중도포기시킨 일. 네가 학교에서 집으로 전화를 하여 준비물 안 갖고 갔다며 가져다 달라고 했을 때, 선생님에게 혼이 나야 정신 차린 다면서 어머니는 가져다주지 않았어. 참으로 매몰차고 무식한 엄마였어.
내가 생각이 나지 않아서 그렇지 다 잘못한 것뿐이더라. 그래서 너를 볼 면목이 없구나. 어머니도 너희 삼 남매를 키우면서 나름대로 바른 가정교육을 시키려고 노력한 것은 사실이야. 누나들 고등학교 다닐 때 어머니가 심적으로,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시절이었어. 그때 너는 기억나는지 몰라도 몇 년간 불경(佛經)을 한자(漢字) 사경 하면서 어머니의 마음을 다잡았단다. 너희들에게 심한 말과 잔소리를 하지 않으려고 사경을 하면서 분풀이까지 곁들여 하였단다.
초등학교 다니는 너에게 아들이 하나라는 이유로 독립심과 자립심을 강조하며 무조건 하라고 내몰았지. 내가 몰라서 실수투성이였다는 거. '왜 나는 그렇게 몰랐을까'를 또 사유하지 않았겠니. 외할머니가 어릴 적 어머니 곁에 언제나 안 계셨어. 외할아버지께서 어머니 다니는 국민학교 선생님이셨거든. 그러니 할아버지 계시는데 할머니는 오시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그때는 몰랐어. 근데 중학교 시절 소풍을 가서 확연히 느꼈지. 어머니가 하숙을 하였는데 김밥 싸 달라는 말을 못 하겠더라. 친구들은 다 싸가지고 왔는데… 눈물이 핑 돌더라.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 나는 혼자야.
어머니는 고등학교 시절에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 조나단' 책을 읽었어. 굉장히 감명 깊은 책이었어. 늘 혼자인 나는 갈매기 조나단의 삶을 배우기는 했지만, 실천할 용기와 지혜가 없었단다. 그래서 무척 방황을 했어. 그런다고 열심히 공부를 한 것도 아니었어. 항상 남과 비교하면서 내게 없는 것만 불평하고 눈에 불을 켜고 악착스럽게 해 본 것이 없더구나. 그리고는 신세타령만 했던 나야. 여전히 나는 혼자였고, 모두가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더라. 그렇게 외로울 수 없었어.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연구는 꿈도 못 꾸고 그저 나에게 다가오기만을 기다렸지.
불교 공부를 하던 중 보왕삼매론이란 글을 접하게 되었단다. 다른 사람이 내 곁으로 오지 않는다고, 너희들이, 외할머니, 아버지가 어머니의 마음을 몰라준다고 소화제를 달아놓고 살던 나에게 눈이 번쩍 뜨이게 하더라. 그리고 갈매기 조나단이 높은 하늘을 날고,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서 혼자만이 느낄 수 있는 희열을 깨닫고 즐기는 것을 나도 하기로 한 거야.
어머니는 사십이 넘어서 흔들리지 않더라. 가끔 '누군가가 힘이 되어주었다면'라고 종종 생각을 해봐. 물론 도움이 되었겠지. 그러나 말에게 물을 먹이려고 물 가로 데려갈 수 있어도 먹일 수 없다는 속담이 있어. 내가 스스로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되더구나. 그러던 차 너에게 잔소리를 한다던가 강요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걸 누나를 통해서 체득하게 되더라. 누나들을 보면서 스스로 하겠거니 하고 있었던 것이 나의 불찰이었어. 어른들이 그러더구나. 동생들은 손 위의 형이나 누나를 보고 따라 한다고. 그래서 누나들과 싸울 때 너희들끼리 해결한다길래 그냥 두었지.
네가 대학교 다니며 무료라서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고 했지? 어머니는 그때 충격이었어. 가정교육 잘했다는 자부심이 좀 있었거든 그때까지는. 완전히 내가 무너지기 시작하더구나. 너와 나의 시간들을 떠올렸지만 기억이 나야 말이지. 그런데 선우를 키우면서 되살릴 수 있었어. 선우가 자식에게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알지 못해서 너에게 무지하게 굴었다는 것을 알려주더라.
나의 선지식인 아들아, 사랑이라는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란다. 사람의 마음은 수시로 변하는 것 너도 느끼지? 변하는 것이 사람을 괴롭게 만들더구나. 사람은 변해야 발전이 있단다. 초등학교 다니던 너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지금의 너의 사고는 지난 시간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변하는 것은 괴로운 거야. 네가 행복한 그 순간에서 머물러 주면 좋겠지만 그렇지가 않단다.
혹시 심리 상담받을 때 '내면의 아이'라는 용어 들어봤니? 네가 너의 '내면의 아이'를 떠나보낼 경계에 서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구나. 사랑은 어떻게 보면 집착일 수도 있어. 이젠 사랑했던 내면의 아이를 떠나보내고 그 사랑에서 자유로워져 보려무나. 내가 너를 선지식이라 부르는 이유는 사랑이라는 굴레에서 초월하여 네가 오래도록 지닐 수 있는 보석이기 때문이야.
보석은 자존감이야. 불교에서 선지식은 '지혜와 덕망이 있고 사람들을 교화할 만한 능력이 있는 스님'을 일컫는 용어라고 네이버가 친절히 알려주네. 충분히 너는 나에게 '지혜와 덕망이 있고 나를 교화할 만한 능력이 있는 아들'이었어. 이제 30대 초반이야. 충분히 원석을 갈고 다듬으면 보석이 될 수 있어. 그 경계를 벗어나면 현재 지니고 있는 잠재력들이 가만히 있지 못할 것이다.
나의 선지식 아들아, 노트북 선물 진심으로 고맙다. 그리고 해가 떠 올랐으니 중천을 향할 것이다. 중천으로 가는 길은 바람이 변수를 부리겠지. 사진의 해넘이나 해돋이도 그 영향이겠지? 바람의 속성은 알고 있을 것이리라. 바람이 뭔 수작을 부리건 어머니는 무조건 네 편이야. 힘들면 책상 휘떡 엎어버리고 집으로 내려와라. 개떡 같은 인성으로 윗사람 노릇하는 것들은 안 봐도 된다. 알았냐, 나의 선지식아!
사진: 정 혜.
대문 사진: 11월 5일 오전 6시 53분의 해돋이.
아래 사진: 11월 일 오후 5시 23분의 해넘이.
댓글4 공감 22
gogogo Nov 06. 2020
심리상담은 문제있어서 받는건아니예요
요즘은 누구나가 원하면심리상담을 받지요
그리고 내면아이 중요하지요
살면서 울고있는 내면아이 하나하나 떠나보내는것도
아주 훌륭한 일이지요.
아들 잘피우셨네요
잘읽었어요 정혜작가님
혜나무 Nov 06. 2020
저도 어쩌다 딸아이가 엄마 그때 너무 서운했어..라는 말을 하면 마음이 아프더라구요.
그래서 미안했다. 엄마가 서툴러서 그랬다 하며 뒤늦은 용서를 구했어요. ㅜㅜ
아드님이 자상하시네요. 어머니 핸드폰이며 노트북을 챙겨주시고, 특히 결혼 전이시라 더욱 마음이 쓰이실 것 같아요. 바람이 수작부리면 책상 뒤집어 엎어버리고 집으로 오라는 말씀에 아드님이 멋적게 웃으며 '엄마는 차암~' 하면서도 큰 위로를 받으실 것 같아요.
제가 얼마전 작가님이 적어주신 댓글 읽고 '아들, 엄만 무조건 네편이다'라고 얘기해줬어요. 녀석이 씨익 웃더군요 ㅎㅎ.
아드님은 반드시 보석이 되실거예요. 제 아들두요! ^^
@gogogo Nov 08. 2020
글고님,
칭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러고보니 심리상담가 앞에서 요령을 흔들어 댄 것 같습니다. ㅎㅎㅎ
글고님이 옆에 계셔서 든든합니다.
교회에 가셨을 시간이네요.
초겨울 하늘을 얼마나 맑은지요.
좋은 시간 되시기를!
정 혜 Nov 08. 2020
마침 금요일 밤 대구에 내려 왔어요.
토요일 이른 오전에는 손자와 셋이서 단풍진 가로수 길을 걸으며 사진을 찍으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저는 창공을 배경으로 단풍잎이 흔들리는 모습도 아름다운데 아들의 눈에는 집에서 누울 생각과 손전화기 볼 연구만 하는 것 같았어요.
'품 안의 자식'이며, 이젠 어엿한 한 개인이었어요.
혜나무님 내외를 닮았을 아드님은 두 분이 든든한 울타리여서 아주 행복할 것 같습니다.
공감해주는 혜나무님,
정말 고맙습니다.
조금 전 옥상에서 블루베리 분갈이 하고 내려 왔어요.
두 분은 아름다운 시간 엮어가실 날 입니다.
Nov 06. 2020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