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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Sep 26. 2021

빈대떡? 먼저 앞치마부터 하시지요

더 도 덜 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생색내면서 빈대떡 만들 필요 없다고? 일 하지 말라면 나야 더 좋지. 하지 말라고 윽박지르면 겁낼 줄 알고. 살아생전 막내며느리가 쌍둥이 데리고 오르락내리락했는 거 그 양반들이 다 알아, 이거 왜 이래. 죽은 후 정성스럽게 차렸더니 떡이 나왔니, 밥이 나왔냐? 그리고 흔적도 없는 조상님네가 장군 진급이라도 시켜줬어? 모처럼 생일 상을 차려서 자식들에게 위신 세워주고, 기분 좋게 해 주려는 진심은 모르고 알량한 자존심 세우려고 십 원짜리 동원하며 눈에 쌍심지를 돋우어. 댁의 자존심이 소중하면, 나의 개인사도 중요하다고! 빈대떡? 능력 있는 댁이 알아서 해결해. 나는 공차 탈 테니까.  


  시부모가 평안도 출신이다. 내가 만드는 빈대떡은 이북 식이며 시어른의 맛의 대물림이다. 칠 남매의 아들 오 형제 중 막내인 남편은 큰 동서 혼자서 고생한다며 나를 시가로 내몰았다. 음력 8월 14일은 그네 생일이다. 신혼부터 생일 상은 차리지 못했다. 대신 근무하는 부대에서 해결하는 눈치였다. 그러다 10여 년 전 작은 시누이가 차례 음식 도와주러 왔다가 오빠의 생일 상을 차리자고 제안했다. 작은 시누이도 막내 오빠 등살에 떠밀려서 친정 나들이를 하는 입장이지만 케이크를 사서 축하해주었다. 동서도 무척 좋아하면서 모이는 형제, 조카목소리를 높여서 축가를 부르도록 격려했다. 행사도 동서가 타계하면서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빈대떡은 거피한 녹두가 주 재료다. 고사리, 숙주, 김치, 돼지고기, 쪽파, 다진 마늘, 후춧가루, 참기름, 소금. 큰 동서가 하는 것을 보니 하루 전 날 밤 넓은 그릇에 녹두부터 불렸다. 동서는 아침에 녹두의 물을 갈아주며 거피한 찌꺼기들을 마저 흘려보냈다. 불린 쌀도 한 컵 정도 넣어서 녹두와 함께 믹서기에 아주 곱게 간다. 묵은 김치는 속을 털어내고 깨끗이 씻은 후 잘게 썰어서 물기를 짜낸다. 쪽파는 5센티 길이로 자르고, 돼지고기는 갈아서 소금, 자잘하게 썬 파, 다진 마늘, 후춧가루, 참기름으로 양념을 하여서 조물조물 주물러 간이 배이도록 둔다. 숙주는 삶아서 찬 물에 헹구어 물기를 없앤 뒤 나물 무치 듯 무쳐둔다. 삶은 고사리 또한 숙주와 마찬가지다. 모든 재료를 합해서 녹두와 고루 어우러지도록 섞는다. 김치, 숙주, 고사리에 물이 많으면 기본 재료가 질어져서 전 부치기 거북했다. 재료마다 물기 제거에 신경 써야 하며 반죽이 되직하면 적당하다. 다른 집은 김치 대신 통배추를 쓰기도 했다.


  빈대떡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다른 음식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는 식구가 많고, 다들 좋아하여서 양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꼬박 두 시간 앉아서 부쳐야 일이 끝났다. 일 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큰 동서와 질부, 나와 두 딸, 나중에는 아들까지 동원되었다. 작은 시누이와 가끔 조카들이 도와주는 정도여서 우리 아이들은 아버지의 독재에 무언의 시위를 하였다. 빈대떡은 부치는 옆에서 뜨거울 때 후, 후 불어가며 먹는 그 맛이 최고다. 상을 벌여놓고 완성되대로 더 갖다 달라며 재촉하는 예쁜이가 영광스럽게도 옆에서 잔다.


  동서가 떠나던 해 나는 추간판 탈출증으로 고생했다. 남편은 그동안 간소화하지 못했던 제사 상과 음식 숫자 줄이기 개혁하는 최일선에 섰다. 중국에서 파견근무 중이던 장조카의 짐을 덜어주고, 질부가 얼굴도 모르는 시조부모의 제사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면서. 아마 그해부터 백화점, 시장으로 빈대떡과 삼색 나물을 찾아서 헤맸다.


  그런데 이번 추석에는 생일 상을 받겠다며 나더러 미역국은 걱정도 하지 말라고 했다. 반면 빈대떡과 나물 세 가지만 해달라고 주문했다. 남편의 말을 단순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남편이 손주 보는 나를 생각해서 말은 그리했지만, 나는 빈대떡 하는 김에 갈비찜과 잡채도 계산했다. 내 몸은 쉬고 싶은 생각뿐이었으나 모처럼 기분 좋게 해주고 싶었다.  


  화요일이 한가위다. 차례는 앞당겨 토요일 오전 강원도 횡성군 선산에서 하기로 했다. 우리 내외는 금요일 밤 빈대떡은커녕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다. 남편이 목요일 밤 녹두를 불리려고 물에 넣어 냉장 보관해두었던 것을 꺼냈다. 비록 말다툼은 했지만. 준비된 녹두는 매끄럽게 갈고, 김치는 소를 털어내고 맑은 물에 헹궜다. 빈대떡이라도 만들어야 할 것 같아서. 확인을 겸해서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돼지고기, 숙주와 참기름을 사다 달라고 남편에게 주문했더니 "시끄럽게 만든 음식을 상님에게 올릴 생각 없어!"  돌아서서 웃었다. 일 하지 않도록 쐐기를 박아주니 신이 절로 났다.


  산소로 출발하기 전 즐거운 운행을 위하여 먼저 사과하려고 작정했다. 그러나 둘이는 산소에 도달해서도 한마디 말이 없었다. 남편이  횡성군 시장에서 떡을 사고, 전 부치는 가게로 옮겨갔다. 한 남자가 전을 부치는 옆 계단에 걸터앉아서 통배추 낱장을 신나게 칼질을 했다. 쓰이는 용도가 궁금하여 눈여겨 바라보면서 빈대떡의 용도로 짐작되었다. 배추는 씻지 않은 채 두어 장을 포개서 숭숭 썰어댔다. 넓은 함지박에는 그득히 쌓여 있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대목에 과연 배추를 씻어서 다른 재료와 혼합할지 의심이 생겼다. 음복할 때 형제들과 조카는 빈대떡은 뒤로 밀어냈다.  


  2박 3일 여행을 마치고 음력 열나흘 날 고생 끝에 집으로 기다시피 왔다. 냉장고에서 잠자는 미완성의 빈대떡이 생각난 남편은 돼지고기를 사다 주면서 만들라고 명령했다. 어릴 적 듬성듬성 들어있던 돼지고기 비계가 그립다면서 손수 칼 질을 해주겠다고. 그냥 두고 본다면 밤 10시가 되어도 빈대떡 맛보기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었다. 궁여지책으로 냉동실에서 한참 얼렸다 갈았더니 손쉽게 빨리 반죽을 완성할 수 있었다. 맛있게 먹는 눈치가 "빈대떡은 바로 이 맛이야."라는 것 같아서 흐뭇하였다.


  집안의 어른이 되니 시절 풍속도 달라졌다. 세대교체가 된 우리 집안의 또래는 손주를 돌보는 처지가 되었다. 빈대떡의 맛은 시장으로  가는 것이 빠르다. 일하기 쉽게 간단명료하면서 저렴한 가격의 빈대떡이 되었다. 송편은 손으로 치대고 치대기를 힘겹게 했다. 내 아이나 조카들은 씹으면 씹을수록 쫄깃하다며 좋아했으나, 이가 시원찮은 사람도 잘 먹을 만큼 부드러운 것이 요즘 송편이다. 


  먹는 음식이야 시류를 따른들 어떠랴. 여자가 남자의 집 즉 시가(媤家)로 들어오면, 그날부터 남편 집안의 미풍양속을 따르는 것이 가부장제도 기본이다. 제사나 차례 준비는 시집왔다는 이유로 여자들이 무조건 하였다. 지금도 그러하여서 소동이 가라앉지 않고 부글거리고 있다. 이젠 남자들이 생각을 많이, 과감히 바꾸어야 집안이 조용하다는 것을 제발 숙지하였으면 좋겠다. 알면서도 용기 부족하여 아내를 화나게 만들지 말라. '생색내지 말라'라고 고함 지르기 전에 나의 집 일이니 앞치마를 먼저 둘러라. 아이들이 오히려 아버지를 존중할 것이다. 한가위는 지났고, 설날은 다가오고 있다. 앞장서서 앞치마를 입으면 어떠리오.      


  사진: 정 혜.


대문 사진: 해뜰참의 노을은 세렝게티가 연상되었다.


아래 사진: 한낱 바람처럼 스쳐가는 여명은 세렝게티 초원으로 깊숙이 이끌었다. 구름발치 동녘은 한지 창에서 새어 나오는 빛으로 어둠을 밀어냈다. 검은 수면 위에도 은가비가 번져 갔다. 마치 빛길을 펼치는 듯하였다. 어제는 세렝게티 어디로 몸을 감추었다.   


해뜰참:해가 돋을 무렵.     구름발치: 구름과 맞닿아 뵈는 먼 곳.   빛길: 빛을 밝혀 세상을 이끄는 길. 

은가비(은은한 가운데 빛을 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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