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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Sep 18. 2021

호랑나비 배추흰나비도 떠나는데

  손주 없는 하루는 다붓하다. 그런 한 때 뜨락에 서서 다양한 초록을 무심하게 본다. 호랑나비가 아련나래를 나풀거리며 화단을 맴돈다. 화단은 쑥대머리 귀신형용이 되어버린지 이미 오래다. 안주인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봉두난발이다. 인동초, 마, 더덕, 나팔꽃 , 배풍등 등 덩굴식물이 주변의 가지를 휘감아서 뻗어나가고 있다. 생긴 대로 살고 있는 식물들 사이로 거미줄 또한 눈먼 곤충을 잡아채려 보이지 않는다. 나비는

난간에 놓인 화분들 주위로 휘돌아간다.  꽃에 앉아볼까, 잎에 내릴 듯 촐삭거린다. 어디 좋은 곳에 다녀왔나 까탈을 부리네. 거미줄은 용케 피하고. 유자나무에도 한쪽 눈을 깜짝이며 유혹하나…  


   며칠 전 비 오는 날 아침, 호랑나비 한 마리가 화단 낮게 앉아 있다. 갓 우화 하여서 날개를 말렸다. 천적이 많은 '나비'로서의 첫날이다. 인기척이 느껴지자 제대로 펴지지 않은 날개로 궁싯거렸다. 밤사이 고치를  날이 새기 전에 빠져나와서 날개를 말려야 하는 시급한 상황이다. 밤새 내리고 지금도 가랑비가 내린다. 맑은 날이면 햇살에 하루 종일 수분을 날리며 숨을 고른 뒤 가벼운 몸짓으로 나불나불할 텐데…  


12시 58분. 유카 잎에 겨우 올라앉은 모습이 중심을 잡지 못해서 불안정하다. 맥문동 잎에는 왼쪽 날개 끝이 떨어져 나간 일부가 붙어 있었다.


 

  8월 중순쯤 나비 애벌레가 유자나무에서 구물대고 있었다. 옆의 잔가지에는 누에고치까지 틀었다. 고치 색깔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런 광경은 해마다 되풀이하고 있다. 말이 유자나무지 애벌레들에게 잎이 갉히느라 가년스럽기 그지없다. 나무 높이가 불과 25센티 정도다. 지난해도 유자나무에는 애벌레가 드난살았다. 나뭇잎은 버성긴 채, 애벌레는 이파리 몇 장 안 되는 나무에서 몸집을 키우며 허물을 벗었다. 몇 년째 지켜보지만 나불나불 날비로서의 삶을 보장받지 못했다. 이번에는 성충으로 우화 하기를 간구하였다.


번데기를  트는 형태가 나무줄기에 꼬리를 붙이고 실을 토하여 복대를 하듯 몸 중앙을 둘러서 위로 향하는 '대용'이다.



   나비는 "나불나불 거리며 날다"에서 나온 말이며 '날비'가 어원이다. 나비의 한살이 과정에서 번데기 시기는 보통 닷새에서 길게 열흘 정도, 이 기간이 지나면 성충으로 우화 한다. 번데기는 고치 속에서 다양한 화학변화가 일어난다. 이때 몸 전체가 완전히 다른 형태로 바뀌면서 완전 탈바꿈을 한다. 완전히 탈바꿈을 하면서 애벌레일 때 없었던 날개나 더듬이가 생기며 점차 나비 형태의 몸이 만들어진다. 나비는 주간에 활동하며, 꽃의 꿀, 수액 등을 먹으며 살아간다. 나비의 일생은 20여 일이다.


  애벌레는 보통 식물의 잎을 먹고 자라며 허물을 벗으면서 성장한다. 애벌레가 허물을 벗는 횟수에 따라 ‘령’으로 구분한다. 최종적으로 5령(종령, 終齡)의 애벌레가 되면 번데기가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이때의 애벌레는 적절한 장소를 찾아 입에서 실을 뽑아내어 번데기를 고정할 장소를 찾는다. 몇 해를 나비 애벌레의 변화과정을 관찰해봤지만, 내 집에서 크는 애벌레들은 거의 꽃치자 나뭇잎에 알을 낳았다. 근래는 유자 나비를 의지하였다.


  봄이면 꽃치자 모종을 잘 샀다. 향기가 좋아서 샀지만, 꽃이 지고 잎이 세를 불릴 때면 어김없이 깨알만 한 애벌레가 꼬물거렸다. 그리고 모두 살아남을 수 없었다. 편식이 얼마나 심한지 오로지 서식하는 그 나무의 잎만 먹는다. 또 나비는 미물이라서 흘게가 늦다. 알을 낳는 초목을 보면 어린 나무라 잎이 푼푼하지 않았다. 나비 어미는 한마디로 해망쩍다고 나무라지 않을 수 없다.


  또 5년 전에는 옥상에서 배추 모종 몇 포기를 키웠다. 한 여름이라 매일 아침 올라가 보면 갉아먹힌 흔적이 늘어났다. 이삼일 후에 쪼그리고 앉아서 손바닥만 한 이파리를 죄 뒤집어서 살피니 흑임자만 한 벌레들이 꼬물거렸다. 살생을 피하려고 며칠을 두었더니 순식간에 배추 모종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면서 자멸하였다. 이미 몸이 굵어진 애벌레를 그냥 두고 볼 수 었다. 별 수 없이 염불을 외면서 손으로 집어 급히 바닥에 내던졌다. 살려고 발버둥 치는 느낌이 얼마나 징그러운지. 그렇게 명멸을 거듭하며 찬 서리가 내릴 때까지 몇 장 남지 않은 유자나무에서 방을 빼지 않았다.


  재력 있는 부모는 자식에게 유산을 남긴다. 나비는 희망을 낳았다. 결코 어미는 먹이가 풍부한 넓은 초목에서 살아갈 여건을 만들어주지 않았다. 어미는 미물이란 이름이 걸맞은 곳에 흔적을 남기고 떠났다. 알에서 부화하여 알의 껍질부터 먹고 서식하는 나무의 잎으로 옮겨간다. 재산이 적은 지 많은지 관심 없고 오로지 코 앞에 있는 잎만 쳐다볼 뿐이다. 내일도 모른다. 현재 먹을 것만 있으면 된다. 지금 없으면 잎을 찾아다니다 그대로 말라서 오그라들었다. 어미는 해망쩍지 않았고 투미하지 않았다.  


  우화 한 나비는 곁방살이부터 방부를 들이밀었다. 미래는 미래일 뿐 오로지 현재 이 순간에 전력하는 삶을 살았다. 어미는 여기저기 처처에 내일을 기약하였다. 만에 하나라도 날비가 될 확률에 충실하였다. 미래를 이어 줄 알을 낳는 것이 어미의 역할이자 몫이다. 알은 부화하여서 애벌레로 살다가 고치 속에서 완전히 탈바꿈하며 우화 하는 사명이 있다. 비록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였으나 연연해하지 않았다. 다른 성충이 그 사명을 이어갈 것이니까.  


  미물의 삶이라 하찮게 여겼다. 푼푼하지 않은 곳에서 알을 낳는 것이 각다분하다며 혀를 찼다. 부모가 자식에게 더 많은 것을 주지 않은 미물이 어리석다 비웃었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삶은 없다. 매 순간 정열적으로 사는 것이 최선의 하루임을 이제야 깨우치다니. 그것은 나의 잣대였고, 생각하는 사람의 계산법이었다.


  작자 미상인 시조가 생각난다. '나비야 청산(靑山) 가자 범나비야 너도 가자/ 가다가 날 저물면 꽃에 들어 자고 가자/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잎에서라도 자고 가자.'  경기민요이기도 한 이 가사는 읊을수록 은근한 맛이 느껴져서 애창한다. 지금 저 호랑나비가 날이 저물어가니 잠들 자리를 찾을 수도 있겠다. 꽃에서 푸대접하면 신세타령하지 말고 잎을 헤쳐서라도 자고 가자며 각박한 현실을 초월하였다. 나비만 그럴 수 있는 일일까.



다붓하다 = 호젓하다     가년스럽다:보기에 가난함, 매우 궁상스러워 보이다. 

아련나래: 예쁘고 아름다운 날개.   흘게가 늦다(야무지지 못함)  

해망쩍다 (영리하지 못하고 아둔하다.)      푼푼하다(넉넉하다)     

버성기다(벌어져 틈이 있다)            궁싯거린다. (어찌할 바 모르다)   

드난(임시로 남의 집에 거처하며 도움 줌)     각다분하다(일을 해 나가기 힘들고 고되다)

투미하다(어리석고 둔하다)


 사진: 정혜.           

                       오후 4시 50분. 비는 그쳤으나 습도가 높아서 날개가 완전히 마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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