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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Sep 11. 2021

층간소음의 단상(斷想)

아파트에 살아보니까요

    10층을 눌렀다. 안 보던 얼굴인데 몇 호지3호 일까. 4호는 젊은 부부이고, 5 호면 아래층인데 혹시? 체면 불구하고 늙수그레한 낯선 남성에게 입을 뗐다.

  "5호에 사시나요?"

  승강기 문을 향해서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올라가는 숫자만 바라보더니 얼핏 소리 나는 쪽으로 돌렸다.

  "예."

  "밤마다 신경 많이 쓰이시죠? 이 녀석이에요."

  손자를 가리켰다.

  "안녕!"

  아랫집 남자는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잘 가라고 인사하며 헤어졌지만, 아저씨는 더 말이 없었다.


  두 어달 전 밤마다 옆집 아이가 바락바락 몇 시간씩 울어댔다. 약 한 달 여 짜증이 나서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였다. 안방에서 손자를 재우느라 누워 있어 보니 예삿일이 아니었다. 낮에는 거실에서도 소리가 들리니 예민한 사람은 달려가든지 관리실로 전화할 것이 자명했다. 정말 어떤 날은 밤낮없이 아기를 울리는

집으로 쳐들어가고 싶었다. 아기가 울음 그칠 묘책을 함께 찾는 방법과 '육아 선배로서 경험을 들려주자

'라는 연구까지 했다. 딸에게 이 말을 했더니 펄쩍 뛰면서 자중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중년 여인이 10층을 누른다. 손주 때문에 찔리는 구석이 많아서 몇 호에 사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4호라면 틀림없이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으리라. 맞았다.

  "많이 시끄러우시죠?"

  넌지시 의중을 떠보았다. 옆집인데도 아기 울음이 들려서 불편하다며. 심기가 편하지 않다고 대답하면서 의외로 점잖게 표정관리를 했다. 승강기를 탈 적마다 10층의 5호 집을 만나기 바랐다. 살아가는 형태가 다르니 1년 이상 오르락내리락하면서도 그들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딸이 올 설에는 따로 선물을 준비하여서 아랫집에 주었다. 씹다달다 답이 없었다. 손자가 몇 달 뒤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시작하던 봄에, 남편에게 과일 상자를 들려서 내려보냈다. 얼굴이라도 알아야 체면치레를 할 것 같아서 사위를 따라 가봤다. 50대로 보이는 안주인이 얼굴을 내밀었다. 사위가 상자를 내밀며 아들이 들뛰어서 미안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하이고~ 그렇다꼬 자꾸 선물을 주마 우얍니꺼. 우리 아저씨가 잠잘 때만 조용하마 된다캅디더."

  '우리 집도 그 시간이마 손자가 자거등요.'

  "이해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더 조심할게요."

  빼꼼히 열린 문을 향해 고개를 조아려 알로 기면서 정중하게 굴었다.   


  손자가 두 돌이 가까워지니 달릴 때 느낌이 다르다. 어른은 조심하여 걸으라고 말을 하면 이내 잠깐이라도 살금살금 걷는다. 그런데 손자는 한 번씩 달릴 적마다 콩! 콩에서 쿵, 쿵! 수준으로 바뀌었다. 주의사항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동생 시샘하느라 밤 잠자는 시간이 9시에서 10 시대로 밀려나더니 잠을 이루지 못해 더 쿵당, 쿵쾅 거리며 돌아다닌다. 또 두 달 전부터 손녀까지 합세하였다. 손녀는 젖을 빨리 물리지 않으면 아래·위 층, 좌우 옆집 아랑곳없이 뻗대면서 새청 맞게 자지러진다. 다행히도 냉방기 덕분에 문을 닫고 있었지만, 아파트는 배수관을 통하여 마치 옆에서 우는 것처럼 들렸다. 이러니 잘 만나지지도 않는 아랫집에게 공연히 밑지는 기분이 든다. 옆집 또한 미안할 따름이다.    

 

   '층간소음'. 아파트 아래·위 층, 좌우의 집 벽을 응큼하게 넘어오는 소리를 이름이다. 딸의 아파트에서 살아본 즉 해결 대안이 없는 것 같다. 주민 모두가 이기적이다. '그럴 수 있다. 내가 더 조심하자.' 이런 마음보다 양보하면 나만 손해 본다는 생각이 가득하였다. 이웃과의 경쟁에서 지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 같았다. 


  층간소음은 뜨거운 화제이다. 앞으로 식을 줄 모르는 화두 될 것이다. 화두는 일념으로 오롯이 정신을 집중하면 언젠가 '아 하!' 하면서 풀린다. 그렇지만 한 건물에서 연일 벌어지는 '층간소음'이란 사건은 떠들썩하게 세인들의 이목을 한 곳으로 모으기만 했다. 뭐 별 다른 방법이 있나 싶어서 내용을 들여다보지만 뾰족한 별 수가 없었다. 어제는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다, 오늘은 승강기 안에서 별난 안내문을 보았다. 전혀 남의 이목을 개의치 않는 몰지각한 소행이었고, 약간의 힘듦을 참지 않겠다는 세태를 엿보았다.  





  지난 어느 날 12층 5호 두 아이와 엄마를 만났다. 내 손자가 예쁜 요즘은 남의 집 자식도 귀엽다. 승강기 안에서 서로 찐하게 아는 척 하며 아이들과도 인사를 하던 중,

  "즈그 집 애들이 마이 시끄럽지예?"

  "아 키우는 집이 다 그렇지 조용하마 아라캅니꺼? 마음 놓고 떠들어라 카이소. 갠이 아 기죽이지 말고

… 우리 집은 갠찬으끼네~"

  아주 시원하게, 인심 좋은 할머니 티를 냈다.

  "그리 말씀하신끼네 얼마나 고마븐지예. 고맙심데이~"

  유치원 가는 그네 아들은 내 손자처럼 품에 안아서 궁둥이도 툭 툭 쳐주며 귀에 살짝

  "할머니는 니만 최고로 사랑한데이~"

  이 녀석 입꼬리가 올라갔다. 여동생에게 기가 질렸는지 볼 적마다 주눅이 들어 있었다. 둘째는 밤마다 악을, 악을 쓰며 생떼를 부리니 우리는 귀가 따갑고 시끄러워서 쫓아가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 1년이 지났다. 나도 딸 덕분에 아파트 생활 3년 차가 되었다. 아파트가 깨끗하고 편리한 점이 많았다. 재건축 대상 1 순위인 단독주택 내 집으로 무조건 가기 싫다. 단지 편리하다는 이유 하나로. 그런데 조금만 마음 놓고 걸으면 퉁, 탕 거려져서 발끝에 신경이 모아지고, 손자가 들뛰면 입도 벙끗 않는 '아랫집 할배'를 들먹인다. 내 손자가 이 말뜻을 알아들으면 얼마나 좋을꼬. 밤늦게 화장실에서 물 내려가는 굉음, 바닥에 드러누우면 아래층에서 말하는 정경이 다 보일 정도의 잡음들, 윗 층의 슬리퍼 질 질 끌고 가는 것조차 기분 나쁠 때가 있다.


  이런 말이 있다. 선한 일을 한 끝은 있어도 악한 일의 뒤 끝은 없다고. 말인즉슨 좋은 일을 하면 최소한 칭찬이라도 듣지만, 악한 행위를 하면 아파트 단지 내에서 얼굴 붉힐 결과와 좋지 않은 소문만 나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발 뒤로 물러서면 한 수 밑지고 들어가는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내가 그렇지 않으니 남도 그래서 안 된다는 말은 억지다.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집집마다 주관과 삶의 방식이 모두 다르다. 내가 조금 지는 듯 양보하면, 이웃은 자신의 허물을 알고 있다. 단지 어떤 조건이나 말 못할 상황에 놓여 있을 수도 있고, 이것저것 안면 몰수하고 사는 몰염치한 이웃일지도 모른다. 


  양보와 이해는 자식 교육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타인을 배려하는 부모의 자식은 자라면서 자연스레 베푸는 것을 배운다. 나의 위층은 가끔씩 만나면 두 아이가 소란스러워도 양해해 달라며 더 웃는다. 그 집은 나날이 조용하여져 오히려 내가 이상할 때가 많다. 오늘 잠깐 만났을 때 절간 같다는 말을 했더니 아랫집 손녀 깨운다며 둘째를 철저히 교육한다고 했다. 아이 엄마는 조신하게 처신하였다.

 

  추석이다. 딸은 보나 마나 선물을 챙길 것이다. "안 줘도 되는 데예~" 하지 말고 "아이 별 다른 집 있심니꺼? 들고뛰어야 아이지예. 뛰 댕기는 거 아이라꼬 교육만 잘 시키마 됩니더. 철이 들마 쫌 안 나아지겠능교." 앞으로 나는 이렇게 말할 요량이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아이다. 그렇지 않으면 애늙은이다. 대신 어른들이 조용히 말하고, 살살 걸어 다니면서 신중하게 행동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런데 어려운 사안이다. 그렇지만 아파트에 사는 이상 실천해야 할 덕목이다. 단독주택에 살아도 이웃 간에 지켜야 할 예절이 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서로 암묵적으로 지키고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 공동규칙과 예의를 준수하여야 질서가 유지된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하는 곳이 아파트였다. 문 닫고 왕래하지 않으며 살지만, 나의 인품과 인격이 드러나는 곳이 아파트살이지 싶다. 밤이 되면 종종 관리실에서 방송을 한다. 층간소음으로 이웃에게 불편함을 끼치지 말자고. 또는 지금 누(累)가 되는 행동은 자제하고, 삼가 달라고 했다. 누군가가 관리실 직원이 대신 나서서 머리 아픈 일 해결하라며 압력을 넣었으리라. 정말 견디기 힘들 정도로 심한 가정도 있다. 이러한 집은 합세하여서 떠나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 이상 서로 양보하며, 인내하면서 배려하는 곳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덤으로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것은 복이라고 생각한다.  


  층간소음 못지않게 머리 아픈 것. 담배 피우지 말라면서 수시로 방송하고, 벽에 경고문을 붙여도 막무가내로 피우는 '여서 피우마 우짤낀데, 내 배 째라'. 하나 더, "여기는 화장실이 아닙니다. 자제해주세요. 관리사무소장" '보소! 그렁 거는 느그나 지키라, 내는 그런 거 모린데이~'.



사진: 정 혜.



대문 사진: 어제 계단을 오르다가 발견하였다. 술이 머리꼭지까지 취했어도 해서는 안될 일이 벌어졌던 모양이다.


아래 사진: 아파트 단지 내 화단에는 감이 익어가고 있다. 지난해는 아무도 주워가거나 따는 주민이 없었다. 관심조차 없는 것 같았다. 홍시가 떨어져서 아주 지저분하였다. 



https://blog.naver.com/jsp081454/222502515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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