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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Oct 09. 2021

2013년, 3000배

  

   만물이 잠들어 적요하다. 얼음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경내는 온통 시리도록 푸른빛이 적막을 더하고 있다. 전각 지붕 골골마다 눈이 하얗게 반짝거렸다. 서쪽 하늘에는 달조차 추워서 웅크린 채 넘어갔다. 요사채로 가는 눈길이 얼어붙어서 밟을 적마다 서걱서걱 소리를 내어 미끄러질까 조심스러웠다.


   언젠가 사는 것이 고달파서 3000배를 두 번 해봤다.  3000번 절 하는 시간은 평균 10시간. 보이지 않는 행복을 만나려는 희망의 절은 신이 났다. 서서히 몸은 무디어지고, 빨리 끝내려는 마음만 앞설 뿐. 엎드렸다 일어나려는 의지는 어서 숫자를 채우고 싶었다. 첫 번째 시도는 더 이상 무릎을 굽히고 펼치기가 원활하지 않았다. 결국 2000배에서 염주를 바닥에 내려놓았. 며칠 뒤 1000배를 하여서 마저 채웠다. 두 번째는 10시간을 훌쩍 넘기면서 주지스님과 법우들의 격려를 받으며 위태롭게 마쳤다.


  두 번의 3000배, 처해진 환경이나 살아가는 양상이 바뀌리라 기대했다. 또 평소 해오던 백일기도나 조상을 천도하는 의식이 힘겨운 내 삶을 윤택하게 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두 녀석이 300배를 하고 휴식 차 얼음덩어리를 뜨뜻한 이불속으로 들이밀었다. 섣불리 도전할 것이 아님을 감 잡은 듯했다. 말이 삼천 배지 아이들이 겁도 없이 덤볐다. 그 도전은 경험자인 나로서는 권하고 싶지 않은 방법이다. 나의 몸을 혹사시키는 고행(苦行)에 불과하다.


  벚꽃 길이 유명한 하동 칠불사를 간다. 두 딸의 권유에 군말하지 않고 짐부터 챙겼다.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카메라도 충전했다. 칠불사는 전설로만 들었던 사찰이라서 은근히 가슴 설레었다. 두 딸은 2013년 한 해를 마감하며 꿈도 야무지게 3,000배를 계획하였다.


  눈 소식이 들렸다. 대구 남쪽이라서 안일하게 여겼다. 눈님께서 오시면 오시는 대로 맞으리라 만용을 부리며 두 딸과 버스에 올랐다. 칠불사 가는 막차를 탈 때 눈발이 날리더니 잦아졌다. 기사는 오늘 겨우 버스가 다닌다면서 칠불사까지 가지 않고, 절 부근에서 회차(回車) 한다며 우리에게 돌아가자고 강권했다. 무모하게 부처님만 믿고 걸어서라도 가자며 아이들을 부추겼다. 큰 아이가 스님에게 손전화를 하니 눈이 와도 오라고 하신다나. 버스기사는 택시도 오지 않는다며 회차장에서 혼자 가버렸다.


  두 딸이 큰 일을 위해서 머리를 맞댔다. 명일 세 시에 일어나 새벽 예불 마치는 즉시 절을 시작하자며 쑥덕였다. 두 딸이 최대한 일찍 자고, 일어나자는 깜찍한 목표를 지켜보려고 한다.


    모녀가 새벽예불에 동참했다. 법당 바닥은 두꺼운 얼음을 깔아놓은 것 같고, 서서 훌쩍이던 콧물은 이내 얼어버릴 정도로 냉기류만 감돌았다. 예불하는 동안 두 발을 번갈아 포갰으며, 끝나자마자 장갑을 벗어서 발가락부터 감쌌다. 쌍둥이가 용기도 가상하게 3000배 시작하는 것을 보면서 대웅전 문을 닫았다. 발가락 끝과 뒤꿈치만 댓돌에 닿도록 발을 오므리고 섰다.


  깨달음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실천하면서 스스로 체득하며 얻어지는 삶의 지혜다. 지혜는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뭔가 하나씩 배우는 순간마다 고정관념이 닳아지고 점차 내가 커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끊임없이 나의 아집을 도려내는 긍정의 힘 또한 필요하다. 그동안 절만 하면 다 이루어진다는 어리석음에 빠져 있었다. 어리석은 사람이 셀 수 없을 만큼 모래 위에 수 백채의 집을 지어댔다.


   108배나 3000배는 부처님 당시에 없었다. 대승불교권인 우리나라에서 많이 성행하고 있다. 108배를 하는 18분여 나에 대한 작은 성찰이 가능하다. 하심(下心) 하는 것도 배우게 된다. 108배는 손바닥 및 발바닥을 동시에 자극하여서 심신의 기능이 강화된다. 과학적으로 검증이 되어서 의사들도 건강에 도움을 준다며 적극적으로 권유한다.


  이미 입적한 성철 종정스님은 찾아오는 신도들에게 3000배를 요구하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근래 스님을 친견하려면 3000배 하라는 정확한 의도를 법정스님과의 대화록에서 알게 되었다. 스님은 절을 하면서 무엇이든 작은 것 하나라도 깨우치거나 배우고 가라는 뜻이었다. 스님을 만나봐야 별 뾰족한 것이 없으니 절을 하며 본인의 내면을 성찰하라는 의미였다.


   내가 3000배를 하던 당시에는 불교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3000배가 유행하던 시절이라서 하면 무언가 막연히 ‘이루어주겠지' 또는 '이루어지겠지'라고 의지하는 구석이 컸다. 몸만 힘들었고 얻어지는 것,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3000 가지의 많은 욕심이 머릿속에 가득하였다. 두 딸에게 3000배를 하지 말라고 말릴 생각이 없어서 끝까지 해보라고 등을 떠밀었다. 108, 3000번의 절을 하면 느껴지는 것이 분명히 있다. 잠이 와서, 추워서 게으름 부리고 싶은 딸을 깨웠다. 아이들은 감았던 눈을 뜨면서 서로 가자고 재촉하였다. 그때까지는 웃으면서 방문을 닫았다.


   개개인마다 살아가며 어떤 형태든 괴로움은 다 있다. 나는 남의 탓만 했지 나를 돌아볼 줄 몰랐다. 그저 주위의 넉넉한 모습들만 눈에 들어왔다. 끝까지 붙잡고 늘어져서 한 우물을 진득이 파지 못했다. 돌아보면 염불에 공을 들이지 않고 잿밥에만 매달려 전전긍긍했던 것이다. 전도된 생각과 고정관념으로 앞뒤가 꽉 막혀있었다. 아이들과 대화의 벽도 높았다.


  어느 때부터 묵묵히 작은 가르침부터 실천했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가 무의미하였다. 내 그릇의 크기를 확연히 알 수 있어 알맞은 양을 담았다. 작은 용기에는 조금 담고 필요한 만큼만 담았다. 단호히 버리는 지혜가 생겼다. 비워두면 쉽게 채울 수 있다. 마음자리에는 자꾸 덜어내고 채웠다가 다시 비운다.


   과연 3000배를 해낼지 의문이 든다. 마라톤은 완주가 목표이지만 달리는 과정도 중요하다. 가는 길이 충실하면 당연히 결과도 좋으니까. 둘은 각자 인생역정에서 3000배라는 한 여정의 문턱을 넘어섰다. 正道로 가고 있는 내 아이들이 나는 더 대견하고 만족스럽다.



                                      https://blog.naver.com/jsp081454/222475423808

                      사진: 정 혜.


                  대문 사진: 칠불사 문수전에서 예불을 마치고 요사채로 가면서 대웅전과 아자방이 있는 쪽

                                 으로 돌아보니 달이 떨고 있는 듯


                  아래 사진: 절을 마치면서 고두례를 하고 있는 병사.

                  



https://blog.naver.com/jsp081454/22253197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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