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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Oct 23. 2021

만나면 반갑고, 가면 더 좋은

 오 년 전 수필을 배우면서 생각나는 대로 써둔 글이 참 많았다. 공모전에 던질 목적으로 썼지만 모조리 낙동강 오리알 신세였다. 그 때나 지금이나 글 재주도 없는 사람이 욕심을 엄청나게 부렸다. 굉장히 탐욕스러웠다며 퇴고할 적마다 기가 죽는다. 무엇보다 글에 대한 감각, 기발한 역발상이나 생각지도 못한 언어 유희라든가 사유적이지 못하여서 지금도 고민 중이다. 글 내용이 삭제하자니 아까워서 백결 선생님의 옷처럼 누덕누덕 다시 기워봤다. 


  2016년 12월 24일 오전 밴드에 동영상이 왔다.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여 시작을 눌렀더니 웃음부터 나왔다. 예닐곱 살 여아가 완전히 빠지게 만들었다. 할머니에게 노래를 배웠는지 목소리 꺾임이 아주 유연하고 구성졌다. 이 숙녀는 콧대가 낮은 코를 찡그려가며 능숙한 콧소리로 부르는 것도 매력이다. 꼬마 아가씨는 평화롭고 천진난만하게 노래를 불렀다. 그 모습이 귀엽고 예뻐서 여러 번 보았다. 눈을 감고 음미 하 듯 부르다 조용히 일어서서 고음처리하는 부분이 압권이다. 끝부분은 누구의 눈치를 보는지 힐끗 옆을 쳐다보는 것조차 앙증맞다. 내겐 그 어떤 것보다 훌륭했다. 모르긴 해도 수작이다. 내가 생각하는 평화와 행복이 다 표현되어 있다. 어른의 의도가 중간에 있었지만, 아이가 반전의 효과를 극대화시켰다고 해석했다.


   며칠 전 버스를 환승하려고 기다리던 중이었다. 돌을 갓 넘겼을 사내 녀석이 뒤뚱거리며 마구 걸음을 내디뎠다.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오그라들게 하는 천방지축이었다. 할머니가 아이를 붙잡았다. 손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내뺐다. 할머니는 그런 손자를 따라가지 못해서 안타까워했다. 할아버지가 손자를 덜렁 들어서 안으니 곧 조부의 모자를 벗기려고 손을 뻗었다. 아이의 손을 붙들자 바로 할아버지 품을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 할아버지도 손자가 힘에 부쳤다. 다행스럽게 부부는 건강해 보였다. 그나마 다행이다 싶어 말을 부쳐보니 아이가 나대면 뒤를 따라다니기도 어렵다고. 이런 장면을 예사롭게 보지 않았다. 혼인하지 않은 딸과 아들이 있으니 곧 닥쳐 올 준비된 상황인 것이다.


  큰 딸은 공무원이다. 내가 어려운 상황일 때 경제적으로 두 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무엇으로 딸들에게 보답할까 늘 이 생각을 하며 산다. 나로서는 손주를 키워주는 것 외 딱히 해줄 것이 없었다. 큰딸과 사위가 함께 있을 적에 나의 희망사항을 얘기했다. 만약 내가 아기를 키울 처지가 된다면 회임했을 때부터 외할머니의 목소리를 들려주자고. 


  외할머니가 미래의 손주에게 일주일의 일과표를 알려 준다. 월, 수, 금요일은 봉체조와 스포츠 댄스 하는 날이다. 손자는 유모차에 누워서 즐겁고 경쾌한 음악을 들으며 할머니를 기다려 줄 것. 화요일은 수필 강의를 들어야 한다, 조용히 유모차에서 할미와 함께 수필 공부를 하고. 목요일은 휴무이니 오롯이 집이나 야외로 나가서 자연학습하는 요일. 금요일 오후에는 할머니와 선원에 가서 수승한 법문을 경청한다. 토와 일요일은 부모님과 지내는 날이라고 들려주었다. 둘이 듣고 괜찮다며 박수를 쳤다. 계획대로 그렇게 할 것이다. 태교 중에 외할머니의 존재를 알려 줄 예정이다.


  두 달에 한 번 만나는 모임이 있다. 먼저 할머니가 된 친구들의 푸념을 자주 듣는다. 한 친구는 손자 두 녀석이 '몸서리가 쳐진다'라고 표현하였다. 심지어 "덧정 없다"라고 까지 불평을 늘어놓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친구는 손자에게 모바일 폰을 아예 맡긴다고 했다. 만화영화나 만화만 나오는 채널을 고정시켜 놓았다나. 우리 모녀가 가장 금기시하는 부분을 예사로 말하여서 속으로 상당히 놀랐다. 


  이 친구 저 친구의 푸념과 고생담을 들으며 종합적인 계획을 세워봤다. 더 중요한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면서 우리 어른들이 잘못 배운 지난날의 교육이 아주 심각한 것을 깨달았다. 그 가르침은 바른 견해로 올바른 생각을 하면 곱고, 단정한 언행(言行)을 할 수 있다. 꾸준히 실천하면서 변화하는 모습을 자식에게 말없이 보이며  특히 손주 교육은 철저히 배운 대로 하리라 결심했다.


  친구들의 하소연은 나의 가치관과 부딪히는 계기가 되었다. 부모가 인내와 사랑으로 보듬어 안고 바르지 못한 인성을 가르친다면 그 자식은 부모가 원하는 대로 클 것이다. 대부분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한다. 친구들이 자식이 아닌 손자도 그렇다며 한탄했다. 내 자식도 아닌 손주인데 참으로 어려운 난제다. 그 난제를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내가 먼저 바뀌려고 속을 끓여댄다.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히 하나씩 보여주면서 더 어른스럽게 나도 성숙해져 가리라고.


  나도 성숙해져 가리라고 꿈을 꾸었다. 현재는 실행하는 과정을 보이고 있지만, 가는 경로가 험난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손주를 돌보면서 '자식은 이길 없다'며 흑백논리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부모와 자식은 이기고 지는 문제로 풀어나가는 관계가 아니었다. 손자를 돌보며 제삼자의 눈으로 부모인 딸의 태도를 관망하면서 배운 사실이다. 자식에 대한 이해가 선행(先行) 되어야만 한다. 특히 요즘 같은 세대들은 더욱더 가슴을 열어둔 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렇게 자라지 못했던 부모는 자식과의 대립이 클 수밖에 없다. 열린 마음이라는 말은 쉽지만 열기 쉽지 않은 철옹성이 내면에 성을 쌓고 있기 때문이다.


  일곱 살이라고 해도 정확하게는 다섯 돌을 겨우 넘겼을 수도 있다. 기껏 5년 남짓 산 녀석과 30년 이상 살았는 부모, 또는 조부모가 이기고 진다는 말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말이다. 또 사춘기나 대학생, 그 이상도 마찬가지다. 살았는 햇수만큼의 그릇 크기를 가진다. 큰 그릇이 작은 대접을 수용하 듯 인내와 자비, 관용으로 품어야 하는 것이 부모더라. 웬만한 생선은 소금 뿌려서 몇 년 간 숙성하면 젓갈로 탈바꿈한다. 진정한 부모가 된다는 것은 젓갈로 변화하는 것과 다름없지 싶다. 부모와 자식이 다 함께 승자가 되려면 부모는 무조건 기다려 주어야 하는 것을 배우고 있다. 참다운 부모 되기도 정말 어렵다. 아니 내가 사람다운 사람 되기가 쉽지 않다. 


  2019년 9월에 손자가 태어났고, 코로나 19 님께서 우리들을 회오리바람 속으로 초대했다. 손자를 유모차에 눕혀서 스포츠 댄스 강당으로 갈 꿈은 철새처럼 날아가버렸다. 2020년 2월부터 스포츠 댄스도 무한정 폐관되었다. 설령 강당이 안전하여서 출발하고 싶어도 어멈이 결사반대다. 딸 님께서 코 님을 어떻게 믿으며, 사람 많은 곳에 무조건 가지 말라는 금족령을 내렸다. 아직까지 회오리바람 속에 휩쓸려서 숨 가쁘게 회전하고 있다.



사진: 정 혜.


대문 사진: 만개한 연꽃.

 연꽃은 중앙에 노란 씨방, 결과를 안은 채 핀다. 어쩌면 결과가 원인(原因)이 될 수도 있다. 꽃이 피는 인(因)은 시절이라는 상황(연,緣)이 도래해야 핀다. 원인과 결과가 한 눈에 드러나는 꽃이 연꽃이다. 


아래 사진: 5월 전후에는 연잎이 활짝 펼쳐지면서 꽃을 피울 준비를 한다. 연잎은 그 어떤 티끌이나 물을 품지 않는다. 왼쪽 이파리처럼 먼지를 품은 물방울이 있을지라도 바람이 불어 흔들면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연(蓮)처럼 살아야 하는 것을 배운다. 바른 견해로, 올바른 생각을 하면 곱고, 단정한 언행(言行)을 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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