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의 휴가

by 정 혜

Day 35 당신에게 단 하루의 휴가가 주어졌어요. 휴가를 어떻게 보내는 게 좋을까요?



따뜻한 침상에서 부족한 잠을 잘 것이다. 잠이 쉬 드는 형이 아니니 필시 머리맡에 펼쳐진 책부터 읽을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스멀스멀 잠이 밀려와서 돋보기를 벗고 엎드린다. 이번 주는 목과 코감기까지 함께 하여서 약 기운으로 눈꺼풀이 더 내려온다. 땀을 내기 위해서라도 푹 자야만 한다.


한 숨 자고 나면 엎드린 채 손전화기로 브런치를 들여다볼 것이다. 아니면 펼쳐진 '위빳사나 수행 입문'

책을 읽다가 일어나 그 자리에서 허리를 곧추 세우고 위빳사나 명상수행을 할 것이다. 50분 동안 나를 알아차림 하면서 오롯이 통찰하는 시간이 된다. 딸의 아파트에서는 새벽 3시에 일어나 명상하고 글을 쓸 계획을 세웠으나 전 날 늦게 자면 3시에 일어날 수 없었다. 설령 일어나도 명상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계획했던 일정이 손자와 관련되어 순조롭지 못했다. 마음 놓고 수행을 할 수 있어 제일 좋은 시간이다.


아점 삼아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먹든지, 누룽지를 끓여서 먹을 것이다. 나는 뜨거운 음식을 좋아하여 속이 뜨끈해지는 누룽지를 잘 먹는다. 위에 부담도 적어서.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기에 세수는 생략한다. 양치만 하고 바로 컴퓨터 의자에 앉아서 밀린 답글과 댓글부터 써야 한다. 그리고 밀린 글을 써서 인증까지 해야만 일주일의 임무가 완수된다.


남편이 데리러 오겠다는 전화가 없으면 불교 블로그에 올릴 글을 타자 필사한다. 그러나 대부분 남편이 집에 언제 올 거냐며 전화를 해서 타자할 시간은 없다. 필사를 마쳤거나, 남편의 전화가 없으면 안온한 내 잠자리로 다시 들어가서 낮잠을 즐긴다. 손자가 없는 날이므로 부담감이 없어서 정말 편안하다. 유유자적 홀로 자유를 만끽하느라 혼자 있는 것만으로도 평화롭다. 나만 행복을 누리는 기분이다.


아파트 주변의 경관이 뛰어나서 산천경개 구경하러 나서지 않아도 된다. 평소 손자를 데리고 산책할 때 가을의 절정을 가까이서 느끼며 사진을 찍었다. 휴가라는 명목으로 단풍구경 가지 않아도 만족스럽다. 오로지 방콕에서 컴퓨터와 글을 쓰며 놀아도 하루 휴가로 충분하다.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이 나의 휴가다. 특히 뜨뜻한 자리에 누워서 뒹굴거리는 게으름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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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정 혜.


대문 사진: 가을 창공(蒼空)을 닮고 싶어서 가던 길 멈추고 자주 올려다본다. 노란 은행나무 아래서는 꼭 올려다본다. 목을 뒤로 젖힌 채 하늘과 단풍진 은행잎과 내가 하나 되는 기쁨도 짧은 나의 휴가다.


아래 사진: 몇 박 며칠 떠나야만 휴가가 아니다. 잠시 잠깐 단풍잎 사이로 내다 보이는 창공은 지극한 아름다움에 빠져드는 휴식시간이기도 하다.




댓글 7 공감 7


박유신

손자로부터 떨어져 하루를 온전히 정혜님을 위해 보내셨네요. ^^ 2020.11.12.


답글

정 혜 블로그주인


네. 일요일인 오늘 아주 느긋이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금요일 밤이 기다려집니다.
저의 집으로 돌아와서 책임감 없는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지 깨닫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2020.11.15.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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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제가 사는 곳에도 예쁜 곳이 참 많은데 정혜님 계신곳도 사진만 봐도 황홀합니다. 잠시 이런 나만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느껴요..^^ 소소한 행복이지요. 2020.11.12. 13:06


답글

정 혜 블로그주인


석류 잎이 단풍 드니 저리 고우네요.

석류 나무는 곳곳에 많이 있으니까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좋은 시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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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5. 15:25



공대생의 심야서재

참으로 평화로운 하루의 시작이네요~ 2020.11.12. 17:09


답글

정 혜 블로그주인

예. 혼자서 보내는 이 시간이 평화롭기 그지 없습니다.

남편요?
70이 되기 전에 지리산 종주 하자면서 동기생들끼리 의기투합하여 오늘 아침에 떠났습니다.
참으로 평화롭습니다.

공심님이 이 맛을 아실 랑가 모르겠네요. 2020.11.15. 15:27


캘리고

정말 평온한 하루네요

정혜작ㅈ가님 갈수록 멋진분이셔요
닮고싶어요. 2020.11.13. 07:19



nov.11.2020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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