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윤의 해금이야기
木
활대
해금의 활대는 대나무로 만들어진다. 40cm 가량의 활대는 양 끝에 금속 처리가 되어 있다. 왼쪽 끝에 말총을 끼우고 오른쪽 끝은 활 잡는 손을 얹는 가죽을 끼운다. 활대는 옛날 회초리를 떠올리는 모양새다. 활대는 적당한 탄성이 있는 것이 좋다. 활을 잡은 오른손의 힘을 능청하게 말총으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활의 무게가 왼쪽 끝이나 오른 쪽 끝으로 쏠리지 않고 전체적인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활 끝이 무거우면 핸들링이 잘 되지 않아 연주하기 버겁다. 너무 가벼워도 활대가 힘을 받아주지 못 해 말총으로 전달되지 않고 소리도 가벼워진다.
정악은 느리고 차분한 무드의 음악이므로 무게감 있고 진중해 보이는 활대를 고르면 좋다. 민속악이나 창작음악은 리드미컬하고 악상의 표현이 다양하므로 활의 움직임도 변화무쌍하다. 이때는 탄성이 좋고 비교적 가벼운 활을 고르면 좋다.
말총
말총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말의 꼬리로 만들어진 말총. 말총의 컨디션에 따라 소리의 색깔도 달라진다. 숱이 많은 말총을 좋아한다. 수 백 겹의 말총에 송진 가루가 듬뿍 발라져 있는 상태가 최적의 컨디션이다. 송진을 골고루 겹겹이 입고 뽀송해진 상태, 결이 잘 정리된 말총을 보면 마음도 한껏 부풀어 오른다. 말총의 컨디션에 따라 해금소리는 윤이 나기도 하고 화려해지기도 한다. 송진을 맨 위에서 아래까지, 안쪽 면과 뒤쪽 면 모두 골고루 잘 발라주면 얼굴에 분칠을 한 듯 뽀샤시 해진다. 송진이 발라져 있지 않으면 빈약한 소리를 낸다. 이때 말총의 상태는 반딱반딱한 빛을 내는데 마치 며칠 머리를 안감아 기름이 낀 듯 사랑 받지 못 하고 방치된 느낌이다. 송진 칠이 지나치면 거친 음색을 내기도 하지만 적당히 거친 상태를 좋아하기 때문에 송진가루를 듬뿍 발라주는 편이다. 주자에 따라 다르지만 나는 화려하고 우렁찬 소리를 낼 줄 아는, 풀 메이크업 상태를 좋아한다.
바이올린·비올라·첼로의 활을 익숙히 보던 사람들은 해금의 말총을 보고 깜짝 놀라곤 한다. 바이올린족의 말총은 한 올의 이탈도 없이 팽팽하게 묶여 있다. 다림질을 해놓은 듯 반듯하다. 해금의 말총은 느슨하게 엮여 있다. 무리에서 이탈하고 정전기에 부스스하게 일어서 있는 가닥도 있다. 느슨하게 엮여있기에 말총이 여러 방향으로 겹을 이루고 있다. 마치 패스츄리 빵의 겹처럼 어느 부분은 많이 부풀어 있고 어느 부분은 가지런하다.
자유분방하고 제멋대로 엮여 있는 해금의 말총. 여기서 해금의 개성적인 음색이 발생한다. 해금 음색에 대해 깔깔하다, 카랑카랑하다, 쇳소리가 난다, 쉭쉭거리는 바람소리가 난다 등의 다양한 표현을 하는 이유도 이러한 말총의 특징이 한 몫 한다. 해금의 느슨한 말총은 신비로운 소리를 낼 수 있다. 극도로 작은 볼륨의 소리를 낼 때에 햇빛에 반짝이는 모래알 같다. 때로 이 말총이 하모닉스 효과를 내며 명상의 세계로 인도하기도 한다. 즉흥 연주에서 즐겨 쓰는 신묘한 음향적인 효과는 느슨한 말총의 특징을 이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