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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윤 May 30. 2021

말총과 송진_해금에 관하여

천지윤의 해금이야기

말총과 송진


연습에 들어가기에 앞서 말총에 송진을 바르며 마음을 고른다. 송진은 소나무에서 채취한 진액을 고체로 굳힌 것이다. 송진을 말총에 바르면 가루 형태로 스미면서 활과 줄의 마찰을 돕는다.


해금과 송진. 바이올린이나 첼로의 송진과 같다. 

 

해금이란 악기를 만나 고생도 많이 했지만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도 많다. 햇볕이 잘 드는 공간에 앉아 말총에 송진을 바르는 것을 좋아한다. 햇볕이 따스하게 드는 공간, 포근한 방석 위에 앉아 송진을 바르면 빛줄기를 따라 분분히 날리는 송진가루가 보인다. 뽀얀 송진가루가 빛의 움직임 속에 느리게 흐른다. 송진가루가 듬뿍 칠해진 활대를 휘두르면 입자들이 말총에서 이탈해 빠른 춤을 춘다. 송진의 소나무향이 코에 와 닿는 순간, 소나무 숲을 거니는 마음이 된다. 작은 연습실 안에서 펼쳐지는 송진가루에 의한 빛과 공기, 향기의 향연. 고요하고 평화롭다. 이런 것이야말로 해금연주가로서 누리는 작고도 확실한 행복이다.       


      




송진 

송진가루는 나를 소나무 숲으로 이끌기도 하지만 때로 흙 구렁텅이로 이끌기도 한다. 송진은 소나무가 흘리는 눈물, 즉 진액이기에 끈끈하다. 이 끈끈함 때문에 발레리나들은 토슈즈에 송진가루를 빻아 바르기도 한다. 미끄러짐을 방지하는 것이다. 송진이 말총이 아닌 왼손에 묻으면 끈적이가 붙은 것처럼 움직임을 방해한다. 

해금연주가는 왼손을 자유자재로 써야 하는데, 오른손에 활대를 쥐고 왼손으로 송진을 발라야한다. 이때 필연적으로 왼손에 송진 가루가 묻게 마련이다. 송진칠 뿐이 아니다. 악기를 접고 펴는 동안 악기 본체에 묻은 송진이 왼손에 묻어나기도 한다. 무대에 오르기 전 손을 씻어도 송진의 끈끈함이 지워지지 않는 날이 있다. 아마도 습도가 높은 날이거나 유난히 손에서 땀이 많이 나는 날일테다. 연주 전 긴장감과 더불어 불쾌지수 까지 높아진다. 


해금에 앉은 송진 가루 


무대 오르기 전 손을 씻는 것으로 해결이 안 될 때가 있다. 연주 도중 활질을 하다보면 말총에 있던 송진가루가 울림통과 원산 가까운 줄의 아랫부분에 많이도 묻어난다. 고음역을 낼 때 줄에 묻은 끈끈한 송진이 손으로 옮겨 붙을 때가 있다.  포지션 이동을 하며 왼손을 유연하게 움직여야 하는 순간에 이 송진가루가 끈끈이 식물처럼 손을 놓아주지 않는다. 부드럽게 흐르던 영상에 버퍼링이 걸린 것처럼 버벅댄다. 찰나의 순간일지 모르지만 무대 위에서 이 순간은 억겁으로 느껴진다. 이 상황에 공포가 느껴지는 순간 손에서 땀이 나면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이 끈끈함, 이 버벅임. 송진의 저주. 어서 깨어나고 싶은 악몽의 순간이다.            



나의 해금 수건들, 송진가루를 닦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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