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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윤 May 18. 2021

竹 입죽, 竹+土 울림통 | 해금에 관하여

천지윤의 해금이야기

입죽      


해금, 그리고 입죽. 울림통으로 연결된 긴 대나무.

입죽(立竹)은 문자 그대로 ‘서있는 대나무’다. 대나무를 지름 5cm 가량으로 가공해 울림통 위에 세운다. 입죽은 왼손이 줄을 당기고 펴는 행위를 받쳐주는 부분이다. 왼손 매뉴얼은 다음과 같다.      


1. 왼손을 악수할 때와 같은 모양을 만든다.

2. 엄지와 검지가 손바닥 안쪽에서 만나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을 중심으로 입죽에 걸친다.

3. 엄지에서 일직선으로 손바닥을 가로질러 입죽에 의지하여 손을 살포시 얹는다.      


줄을 잡고 음정을 만드는 것과 더불어 농현을 만들어내는 것은 연주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왼손을 전적으로 입죽에 의지하는 만큼 입죽과 손의 궁합은 중요하다. 이때 입죽의 적당한 탄성과 두께, 길이가 좋은 입죽의 기준이 된다. 입죽이 너무 두껍거나 뻣뻣하게 버티고만 있으면 연주하기 어렵다. 악기사에서 다양한 악기를 구경하고 만지다보면 유난히 우둔하고 미련한 입죽이 있다. 두껍고 탄성이 없는 입죽이다. 굽힘이 없으면 부러진다는 말이 있듯 굽힘이 없는 입죽은 연주자의 손을 상하게 한다. 이런 것이야말로 반드시 피해야 하는 입죽이다.


해금은 손을 쥐락펴락하며 줄을 당기고 푸는 것을 반복한다. 때문에 손의 강한 악력을 필요로 한다. 이것을 힘으로만 제압하려 해서는 안 된다. 여유롭게 장(長) 시간, 긴 세월을 연주하려면 내 몸과 호흡이 움직이는 자연스러운 원리를 알아야 한다. 탄력과 유연함을 기반으로 근력을 사용해야 부상을 피할 수 있다. 그러려면 줄과 입죽이 적당한 탄성(彈性)으로 왼손에 호응해줘야 한다. 적절한 탄성과 두께를 갖춘 입죽을 만질 때 해금연주가들은 ‘손에 앵긴다.’라고 한다. 찰떡처럼 손에 앵기는 동시에 적당한 강도가 있어야 좋은 입죽이다.   


입죽의 길이는 음역을 책임진다. 전통 해금은 입죽이 그리 길지 않았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창작음악과 더불어 서양음악과 크로스오버의 비중이 커지면서 해금의 음역대 또한 확장되었다. 입죽의 길이가 길어지면 현의 길이 또한 길어질 수 있다. 고음역대를 내기에도 수월하다. 이러한 이유로 길이감이 있고 탄력적으로 잘 뻗은 입죽을 선호한다. 정직한 1자의 입죽 보다 살짝 곡선을 이룬 것이 손의 품안으로 잘 들어온다.


울림통의 크기와 입죽의 길이가 균형을 이루어야 아름다운 해금이다. 나무의 뿌리와 기둥, 가지가 조화로운 비율을 이루듯 말이다. 입죽은 울림통만큼이나 중요하다. 내 손의 모양과 잘 맞는지, ‘손에 잘 앵기는지!’ 수차례 만져보고 연주해보며 까다롭게 골라야 한다. 악기사 사장님의 눈치가 보이더라도 버텨야 한다. 그러다 운명처럼 착 앵기는 해금을 만난다면 더 없는 행운이라 여기고 집으로 데려오자.   







竹+土

울림통


해금, 울림통

해금의 울림통은 원통형으로 생겼다. 오른쪽 구멍을 나무로 막고 여기에 원산과 현을 얹는다. 울림통은 크기와 모양에 따라 다른 음색을 내게 마련이다. 현에서 울림을 생성하면 울림통에서 소리를 증폭한다. 몸으로 치면 심장에 해당한다. 심장에서 온몸으로 피를 원활하게 공급해야 하는 것처럼 울림통에서 튼튼한 울림과 진동을 만들어야 소리를 악기 바깥으로 시원스레 뽑아낼 수 있다.


울림통은 대나무와 흙으로 만들어진다. 대나무 뿌리를 채취해서 적절한 크기로 절단한다. 바닷바람에 말리고 비와 바람, 햇빛에 단련시킨 후 황토칠과 옻칠을 몇차례 한다. 숙성의 과정이 길수록 오랜 세월을 버티는 악기가 된다.  


울림통은 악기의 본질인 음색과 볼륨을 결정한다. 원산과 말총, 줄 등의 부품으로 세세한 변화를 줄 수는 있다. 울림통은 ‘원판 불변의 법칙’ 중 ‘원판’에 해당한다. 악기를 고를 때는 울림통의 외형을 살펴보고 울림통 속살을 만져보는 것이 우선이다.

스승님께 배운 바로는 울림통의 속살이 두텁고 손으로 깎아 만든 것이어야 한다. 원의 모양으로는 가로가 긴 타원형이 좋다고 한다. 정확한 원형을 위에서 은근히 눌러 못나진 타원형. 여기서 좋은 소리가 나는 이유가 뭘까. ‘물리적 연구 결과 타원형 안에서의 울림이 좋다.’라고 밝혀진 것은 아닐 테다. 긴 세월 해금을 대하며 다양한 해금을 만나본 결과 알게 된 부분일 것이다.


현에서 전달된 소리의 진동이 울림통 내부에서 비정형성을 갖고 속살 여기저기 부딪혀 울림을 생성할 것이다. 완벽한 원형에서 나는 반듯하고 흠결 없는 소리 보다는 투박하고 거친 소리. 때로 어둡기까지 한 울림을 포함한 것을 매력적인 소리라 느낀다. 속살의 두께는 소리의 단단한 무게감과 강한 밀도를 만들어낼 것이다.

‘소리에는 그늘이 있어야 한다.’ 라고 스승님은 말씀하셨다. 이십대에는 ‘그늘의 미학’을 알지 못 했다. 지금은 어떤 존재와 현상이든 그 안에 밝음만큼의 어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삶에 매끄러움과 평탄함만 있기 어렵고, 완벽한 질서와 계획 속에서만 살아가기 어렵다. 찌그러진 원통의 울림통은 부족한 채로, 결핍을 갖고 태어난 인간의 삶을 반영한다. 스승님께서  좋은 울림통이라 꼽아 주신 몇 개의 기준은 겹겹의 나이테와 굳은 속살을 장착하고 있는 대나무 뿌리다. 이것은 소리를 이리저리 부딪히게 하고 진동하게 하여 오묘한 소리를 생성해낸다. 좋은 울림통은 성숙한 인간미를 보여주는 사람의 형상 그리고 목소리와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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